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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노사 재량근로제 합의할까] “업무 특수성 인정” VS “주 52시간 근무제 훼손”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증권 노조 7월 초 반대 입장 성명서 발표… 고용부, 9월 말까지 계도기간 두기로

7월 1일부터 금융권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면 시행됐다. 지난해 7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 시행이 도입됐지만 금융사는 업종의 특성상 특례업종으로 인정돼 1년간 유예됐다. 그동안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등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개인의 선택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와 지정시간이 되면 본사뿐 아니라 지점에 있는 모든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도록 하는 PC오프제 등을 도입하며 대비해왔다. 그러나 최근 고용노동부가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등 특수 직군에 대해 재량근로제를 허용키로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량근로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직무에 한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을 적용하지 않고,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는 제도다. 이들 직군에 대한 재량근로제 허용은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는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에 제한을 두기 어렵다는 업계의 건의를 당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는 업무의 성질상 근로의 양보다는 근로의 질, 성과에 따라 보수가 좌우되기 때문에 재량근로제 취지에 부합한다”며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인 일본의 경우에도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는 재량성이 인정되는 전문 직무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재량근로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1조에 따라 규정한 업무에 한한다. 현재 대상 업무는 신상품이나 신기술 연구개발업무, 정보처리시스템 설계와 분석업무, 신문과 방송 또는 출판사업에서 기사의 취재·편성·편집업무, 디자인 업무, 방송프로듀서나 감독 업무 등 12개다. 고용부는 조만간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재량근로 대상 업무에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고시를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들에 대한 재량근로 허용 결정을 반기고 있다. A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보통 오전부터 기업탐방, 세미나 등이 이어지고 관련 보고서나 남은 업무를 보면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잦다”며 “근로시간을 정해놓으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번 고용부의 결정으로 일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관건은 증권사 노사 간의 재량근로제 협의가 될 수 있느냐다. 재량근로제를 도입하려면 회사와 근로자 대표가 서면 합의로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야 한다. 서면합의 운영 과정에서 업무수행 수단, 시간배분 등에 관해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이를 준수해야 재량근무제가 인정될 수 있다. 여기에 재량근로제를 적용하더라도 연장·야간·휴일근로 및 휴가·휴일 등에 관한 규정은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증권사 노동조합은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의 재량근무제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취지를 훼손하고, 사측의 근로시간 단축 위반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절차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무금융노조 김호열 증권업종본부장은 “주 52시간 근무제는 과도한 노동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 고용을 늘리라는 취지인데 재량근무제를 허용하는 건 취지에 어긋하는 것”이라며 “애널리스트도 데일리, 시황, 기업분석 등 다양한 파트로 나뉘기 때문에 모든 직군이 연구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증권사들은 애널리스들의 주 52시간 안착을 위해 인력 충원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부터 전 부문에 52시간 제도를 적용한 KB증권은 해외 주식담당 부서는 3교대를 적용하고, 애널리스트는 시차출퇴근제로 분석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14개 증권사 1만여 명이 가입한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는 7월 초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의 재량근로체 허용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노조의 주장도 틀린 건 아니다. 노동자 입장에선 근로노동제를 허용하면 본인에게 부여된 업무를 원하는 시간에 재량껏 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업무가 과중되면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16년 9월 재량근로제를 적용받은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됐다. 국내에서도 지난 1997년 재량근로제를 도입할 당시 재량근로제 노사합의 때 사용자에게 “노동시간 상황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복지 확보를 위한 조처를 강구할 것”이라는 조항을 달아둔 것도 이런 이유다. 재량근로제의 장시간 노동 유발 가능성을 전제한 것이다.

반면 고용부는 증권사 노사 간의 재량근로제 협의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 간의 합의가 없으면 재량근로제 도입이 불가능하다”면서도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이 주 52시간 근무시간 적용이 어렵다는 견해를 듣고, 증권사 노사와 재량근로제 허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 끝에 결정한 만큼 원활한 협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재량근무 도입 때 별도 인사관리 시스템 마련해야

고용부는 재량근로제에 대해 노사 합의를 하지 못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9월 말까지 3개월간 계도기간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유연근로제 도입을 준비하는 기업에도 노동시간 위반 처벌을 3개월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뒀다. 재량근로제 계도기간 부여 대상 사업장은 6월 말까지 고용부에 재량근로제 도입을 위한 계획을 제출한 곳이다. 증권사들은 재량근무제를 도입하면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는 회사의 PC 오프제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등의 별도의 인사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1491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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