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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본 시카고, 시카고에서 본 미국] 계산원도, 현금도 필요 없어요 

 

시카고=김자영 통신원
아마존-고, 시카고에 4개 점포 열어... 현금 받지 않는 서비스에 제동거는 법안

▎시카고 일리노이센터 1층에 문을 연 아마존-고 매장. / 사진:김자영
“Today your total amount is $14.95.” 파니니와 과일 주스를 골라 들고 출구를 빠져 나오자 몇 초 후 휴대폰 화면에 이 푸시알람이 뜬다. 동시에 신용카드 결제 확인 문자도 도착한다. 머문 시간이 채 1분도 되지 않아 이날 점심이 내 손안에 들린다. 홀푸드마켓에서 10분이상 걸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다.

‘No line, No check-out(줄을 서지 않고, 계산도 필요 없는)’을 콘셉트로 지난 2016년에 첫 선을 보인 아마존-고는 시카고에서 5월 현재까지 4곳에 문을 열었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뉴욕에 있는 점포를 합치면 12개에 이른다. 아마존-고는 계산해주는 점원과 계산대가 따로 없는 편의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먼저 어플리케이션(앱)을 깔아야 한다. 이름, e메일, 신용카드 정보 등을 입력하면 아마존-고 출입 때 사용하는 QR코드를 만들 수 있다. 흡사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곳 상단 스캐너에 QR코드를 갖다 대면 출입통제 바가 열리면서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형마트 타겟, 셀프 계산대 확대


▎중국식 빵·만두를 파는 와우바오에서는 주문부터 계산, 음식 찾기까지 모두 기계로 처리한다. 조리된 음식은 스크린이 달린 박스에서 이름을 보고 찾을 수 있다. / 사진:김자영
점포에서 물건을 고르면 천정에 매달린 카메라가 손님들이 어떤 물건을 집어들었는지 파악한다. 이 정보는 바로 앱으로 전달되고 앱에서 즉시 계산된다. 아마존-고에서는 주로 ‘그랩앤고’로 불리는 한끼용 간단한 식사대용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각종 샌드위치와 스프, 스낵, 음료가 주요 판매 제품이다. 위치는 모두 회사 밀집 지역이다.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많이 들르고 있다. 계산하는 점원은 없지만 갖가지 도움을 주기 위한 직원은 상주하고 있다. 시카고 일리노이센터 1층에 위치한 아마존-고에는 출입구에서 도움을 주는 직원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아직 아마존-고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안내를 하기 위해서다. 안쪽 창고에서도 식품을 간단히 조리하는 직원들과 가드가 2~3명 근무 중이었다.

다른 곳들도 점차 캐셔리스(cashier-less: 계산원 없는) 서비스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오래된 유통체인인 월마트는 샘스클럽 등에서 적용에 들어갔다. 최근 미국 내 가장 대중적인 대형마트인 타겟도 셀프 계산대를 확대하며 유통점 중에서는 캐셔리스 트렌드 막차에 탔다. 자신이 구매한 제품을 직접 리더기로 바코드를 읽어 계산 및 포장까지 마치는 것이다. 시카고 메디슨 스트리트에 위치한 타겟의 경우 기존 계산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캐셔리스 계산대를 2~3배로 확대했다.

미국에서 중국식 빵과 만두를 파는 체인점인 와우바오(WOWBAO)는 주문부터 계산, 음식 찾기까지 모두 기계가 처리한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면 조리된 음식을 스크린이 달린 박스에서 본인의 이름을 보고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도 직원은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들뿐이다.

의류 렌털 회사로 미국에서 성공한 렌트어런웨이(Rent-a-runway)도 아마존-고를 벤치마킹했다. 렌트어런웨이는 다섯 번째 오프라인 지점을 샌프란시스코 파이낸셜 디스트릭에 열었다. 이 회사의 최대 규모 오프라인 숍인 이곳은 그 동안 도입하지 않았던 콘셉트를 더하면서 캐셔리스 방식을 택했다. 아마존-고와 마찬가지고 이 회사 앱을 다운받아 개인 숍에 방문해 QR코드로 본인 확인을 거치고 빌리려는 옷이나 가방 등의 아이템의 바코드를 스캔해 가방에 담아 나가기만 하면 알아서 앱에서 계산이 처리된다. 렌트어런웨이는 이 지점의 계산 방식을 캐셔리스로 바꾸면서 줄어든 인력 대신 전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패션 아이템을 빌리는 고객에게 더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많은 기업과 업계가 변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변화에 살짝 제동이 걸리고 있다. 아마존-고는 뉴욕에 처음 문을 열며 기존과는 다르게 현금을 받는 기존 계산 방식도 함께 적용했다. 현금을 받지 않는 유통점을 금지하는 도시가 늘면서 아마존은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현재 뉴욕, 뉴저지, 메사추세츠, 필라델피아 모두 유통업자들이 현금을 받지 않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이런 변화에 동참할 예정이다. 계산원 대신 앱이나 기계를 이용하면 신용카드나 데빗카드를 이용해 결제해야 한다. 때문에 캐셔리스 방식을 늘리게 되면 당연히 현금 지불 방식이 줄어들거나 아예 받지 않는 점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지 법안 때문에 많은 회사가 새로운 정책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

현금을 받지 않는 점포를 금지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종의 차별이라는 관점에서다. 연방정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6.5%가 은행을 포함한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추정된다. 즉 신용이 없어 신용카드가 없거나 은행계좌조차 없어 데빗카드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미연방예금보험회사 조사에서는 흑인 가정의 17%, 라틴계 가정의 15%가 은행계좌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뉴스는 페이스북과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 등 주요 IT기업에 다니는 고소득 연봉자가 많은 샌프란시스코를 예로 들며 이 도시에는 4000명 수준의 노숙자와 그 숫자 이상의 저소득자들이 계좌를 유지할 현금이 없어 캐셔리스 또는 노캐시(현금을 받지 않는) 점포를 이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늙고 장애가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캐셔리스 트렌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차별 여론이 들끓고 있다.

현금을 받지 않는 것이 금지된 도시의 일부 자영업자들은 금지 조항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강도와 같은 안전 문제 때문에 현금을 받지 않거나 효율성을 이유로 현금을 받지 않았던 점포도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스타벅스가 업무효율성을 이유로 현금 없는 매장을 여러 곳에서 시범운영하고 있다. 현금을 받지 않으면 그만큼 직원들의 업무로드가 줄고 결국에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없는 저소득층 많아

경제 잡지 포브스는 계산원을 두지 않는 트렌드가 생각보다 빠르게 오고 있고 다양한 유통채널들이 점차 완벽한 자동화로 캐셔리스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에서의 캐셔리스 트렌드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 논쟁과 방식의 보완이 계속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1491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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