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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세기의 담판(5) 제갈량, 오나라에 가다] 아쉬운 처지 숨기고 상대 자존심 흔들어 

 

조조 대군의 공격 앞두고 손권 만나… 저자세 아닌 당당한 자세로 감성적 접근

▎일러스트 김회룡
일찍이 제갈량은 수많은 명장면을 남겼다. 유비를 삼고초려하게 만들고, 적벽에서 조조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며,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에 나서는 등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유비와 손권의 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나라로 찾아간 손권과 담판을 지은 것이다. 물론 제갈량에게는 이보다 더 극적이고 놀라운 업적이 많다. 하지만 바로 이 사건이 제갈량을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각인시킨 데뷔전이었다.

제갈량을 국제무대에 각인시킨 데뷔전

자, 그렇다면 제갈량은 왜 오나라로 갔을까? 당시 제갈량의 주군 유비는 곤궁한 처지였다. 몸을 의탁했던 형주의 주인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유비는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 조조의 대군이 신야성에 있는 유비를 향해 물밀 듯 쳐들어온 것이다. 얼마 전 유비 진영에 합류한 제갈량의 활약으로 조조군을 격퇴하긴 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맞상대를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유비는 피난길에 나섰는데 그를 따르는 백성이 10여 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도망에는 속도가 생명인 법이다. 군인도 아닌 백성들이, 그것도 10만 명이나 긴 행렬을 이루었다면 속도가 빠를 리 없다. 결국 얼마 지나지 못해 조조가 보낸 추격 부대에 붙잡힌다. 조운이 “내가 바로 상산의 조자룡이다”라고 외치며 조조군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고, 장비가 장판교에서 홀로 조조군을 물리치는 등 활약했지만 좁혀 오는 포위망 속에서 유비군은 전멸 직전에 놓였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구원병이 나타난다. 제갈량과 관우가 유표의 큰아들 유기로부터 군사를 빌어 당도한 것이다. 덕분에 한숨을 돌린 유비는 유기의 주둔지인 강하로 들어갔다.

형주 땅의 상당수가 조조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유비마저 가까스로 살아남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오나라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오의 책사 노숙은 손권에게 이렇게 진언한다. “형주는 우리와 인접해 있는데다 그 땅이 견고하고도 풍요롭습니다. 만약 우리가 형주를 차지할 수 있다면 대업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지금 유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유비도 조조에게 패해 어려운 처지입니다. 저를 보내주신다면 유표의 장수들을 위로하고 유비를 설득해 힘을 합쳐 조조를 격파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주는 오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땅이다. 조조가 (오의 서쪽) 형주에 거점을 확보해 기존의 북쪽과 더불어 북서 양면에서 오나라를 공격할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형주에서 조조를 몰아내야 한다. 또 형주는 천혜의 요새이자 비옥한 땅이다. 형주를 얻을 수 있다면 오의 국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나라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형주의 민심을 얻고 아직도 형주 곳곳에 건재한 유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형주에서 명망이 높은 유비가 효용가치가 있다. 더욱이 유비는 유표가 아우라며 아꼈고, 유표의 장자 유기가 숙부로 모신다.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서 조조에 대항하는 이미지도 갖고 있다. 대의명분을 쥐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런 유비가 지금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니 자신들이 손을 내밀면 얼른 고마워하며 붙잡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노숙의 생각은 제갈량의 구상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조조와 맞서 싸울 힘이 없고 그렇다고 조조에게 항복할 수도 없다면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각 지역을 호령하던 원소, 원술, 여포, 유표, 공손찬 등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남은 세력이라고는 손권의 오나라뿐. 유비로서도 손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문제는 누가 먼저 아쉬운 티를 내냐는 것. 제갈량은 유비 진영을 찾아온 노숙에게 오와 연대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연출해 조바심이 나도록 했고, 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나라로 방문해달라고 요청하게 만들었다. 유비의 생존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띤 것이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노숙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오나라를 찾아가는 형식이 됐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때마침 조조가 보낸 격문이 손권에게 날라 온 것이다. 조조는 “내가 정예병 백만과 장수 천명을 이끌고 장군과 함께 강하에서 사냥을 즐기며 유비를 정벌하려 하오. 그 땅은 똑같이 나누어 영원한 동맹의 징표로 삼을 것이오. 관망만 하지 말고 신속히 답변을 주기 바라오”라고 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백만 대군의 창검이 오나라를 향할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이와 같은 조조의 메시지에 오나라 조정은 공포에 휩싸였다. 문신의 우두머리인 장소를 비롯해 상당수 신하들이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주장했다. 머리가 아파진 손권은 마침 오나라를 방문한 제갈량에게 먼저 이들을 만나보도록 한다. 오와 힘을 합치고 싶다면 어디 한번 반대론을 잠재워보라는 것이다. 담판 전 기세싸움의 성격도 있었다. 그리하여 장소, 고옹, 우번, 보즐, 엄준, 육적 등 오의 난다 긴다 하는 정치가, 학자들이 모두 집결한 가운데 제갈량과의 대면이 이루어진다.

제갈량을 향한 오나라 신하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하지만 제갈량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반박해 낸다. 그 내용을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조조에게 대패해 오나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하냐는 힐난이 있자 제갈량이 받아친다. 우리는 1000명도 안 되는 군사로 조조군을 낭패하게 만들었으며 지금도 끝까지 싸우려 하고 있는데 오나라는 정예병과 험준한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벌벌 떨며 역적에게 항복하려 하니 부끄럽지 않느냐는 것. 물론 이 설전은 연의가 만들어낸 허구이지만 상대방 말의 허점을 찾아내고, 의표를 찔러 역공하고, 대의명분을 내세워 입을 막는 등 논쟁에서 필요한 기술을 잘 보여준다.

공포에 휩싸인 오나라 조정 대신과 설전


▎중국 쓰촨성 청두의 무후사에 있는 제갈량의 상.
아무튼 이렇게 제갈량이 오나라의 명사들을 현란한 말솜씨로 각개격파하고 있을 때 원로장군 황개가 들어왔다. 좌중을 둘러보며 “조조의 대군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을 물리칠 계책은 생각하지 않고 쓸데없이 입씨름만 벌이고 있소?”라고 꾸짖은 황개는 제갈량을 손권에게로 안내한다. 아마도 손권이 시킨 일이었을 것이다. 논쟁을 지켜본 후 쓸 만하다 싶으면 데려오라고. 손권의 집무실로 향하는 제갈량에게 노숙은 간곡히 당부했는데, 절대 조조의 군대가 많다고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손권이 두려워서 주저할까봐 걱정됐던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조의 군대가 얼마나 되느냐는 손권의 물음에 “기병과 보병, 수군을 합쳐 대략 100만여 명 정도입니다”라고 답한다. 심지어 “조조가 이번에 또 형주의 군사 20~30만을 새로 얻었으니 계산해보면 150만 명이 넘을 것입니다. 제가 100만 명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강동의 선비들이 놀랄까봐 염려해서였습니다”라고까지 말한다. 사실 조조의 군대가 100만이라는 것은 과장이다. 주유의 분석에 따르면 22만~24만 정도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제갈량은 150만 대군이라고 크게 부풀린 것일까? 다음 제갈량의 답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제갈량은 “저들이 우리를 삼키려 한다면 우리는 싸워야 하겠소? 싸우지 말아야 하겠소?”라는 손권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장군께서 자신의 역량을 가늠하시어 대처하십시오. 오와 월의 군사(손권이 다스리는 지역이 옛날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땅이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로 능히 중원을 대적하실 수 있다면 일찌감치 조조와 단절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시다면 여러 책사들의 의견을 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신하가 되어 조조를 섬기셔야 합니다. 일이 급박한데 결단하지 못하신다면 머지않아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손권이 다시 물었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유예주(유비)께서는 어찌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으시오?” 제갈량이 답했다. “유예주께서는 황실의 후예로 지혜와 자질이 당대에 비교할 자가 없으니 모든 사람이 우러르며 사모하고 있습니다. 설령 일을 성공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그것을 이유로 몸을 굽혀 조조의 밑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손권은 신중하면서도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분명한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제갈량이 조조의 군세를 부풀려 말한 것은 조조와 대항하는 유비를 돋보이기 위해서다. 조조의 군대가 비록 150만으로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유비는 패배할지언정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권에게는 냉정히 따져보고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있거든 싸우고 아니면 항복하라 조언하고 있는데 얼핏 객관적인 조언으로 보이지만 손권의 자존심을 긁는 것이었다. 우리 주군은 어떤 경우에도 조조에게 굴종해 그 밑으로 들어갈 수 없는 분이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니까. 제갈량의 예상대로 손권은 “나를 너무 심하게 업신여기는구려! 나 역시 오나라 땅과 10만 군사를 거느린 몸으로 다른 사람의 제어를 당할 수 없소!”라며 분개했고, 손권은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와 전면전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손권이 확고한 의지를 밝히자 제갈량은 그제야 상세한 전략을 설명해 올렸다.

이런 제갈량과 손권의 담판은 연의가 아니라 엄연한 정사의 기록이다. 연의에서 제갈량의 활약은 좀 더 이어지는데, 오나라의 총사령관 주유를 찾아간 제갈량은 조조가 아들 조식에게 명해 지은 [동작대부(銅雀臺賦)]에 “‘이교’를 동남에서 데려옴이여 / 아침저녁으로 그들과 함께 즐기리라”는 대목이 있다며 조조가 작고한 손책의 아내 대교, 주유의 아내 소교를 탐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제갈량이 주유를 만나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동작대부]에도 저런 대목은 없다. 연의가 만들어낸 허구인데, 손권에 이어 주유의 자존심까지 건드렸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상대 마음 흔들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요컨대 제갈량이 손권과 담판을 벌이려던 시점에 더 아쉬운 쪽은 유비였다. 오나라의 형주 공략에 유비가 필요한 존재였다고는 하지만 조조에게 참패한 후 군세도 대폭 쪼그라들고 근거지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에 비해 오나라는 넓은 땅과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유비가 오나라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 오나라에게 유비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그 정도였을 것이다. 상황이 이와 같으면 유비측이 저자세여야 한다. 대등한 동맹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제갈량은 당당하게 담판을 벌이고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을 이끌어 냈다. 이성과 논리뿐 아니라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치밀하게 접근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든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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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7호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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