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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다극화된 경제 갈등과 환율] 원·달러 환율 1200원 넘어도 이상하지 않아 

 

미중 환율전쟁, 한일 경제전쟁 치열…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력, 약달러 선호가 변수

지난 5월 1200원을 목전에 두고 미끄러졌던 원·달러 환율이 8월 초에 다시 급등하며 1200원 문턱을 넘어섰다. 6월 말 G20 회의 이후 봉합되는 듯하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8월 1일을 기점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미국은 3000억 달러 규모의 잔여 미관세 중국 수입품목에 9월 1일부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금융시장은 요동쳤고, 이 과정에서 위안·달러 환율이 7위안을 상향 돌파했다. 미국은 곧바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응수했다.

트럼프 재선 실패 부추기려는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미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위안화 약세와 달러화 강세를 저지하는 것이지만, 이 조치는 미국과 중국의 지난한 무역협상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순조로워 보였던 양국의 무역협상은 중국이 기존의 유연한 자세를 버리고 5월부터 완강한 저항 모드로 태세를 전환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5월 이후 협상에 뚜렷한 진전 없이 양국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관세를 추가 부과한 데 이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일련의 사태의 본질은 결국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 미국이 국제사회 주도권과 차세대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트럼프 정부의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중국의 저항에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객관적인 힘에서 미국에 열세인 중국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중국은 트럼프의 재선 실패에 초점을 맞추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내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시간을 벌어보자는 계산일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해 다른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견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여야를 떠나 초당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타격을 입히고 낙선까지 성공시킨다면, 차기 지도자도 중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 지도자로서는 피해를 감수하고 모험할 가치가 있다. 중국의 공격적인 방어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과거 사례와 비슷하다. 당시에도 중국은 객관적 전력에서 미국에 크게 열세였지만, 미국의 예상을 깨고 참전했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약한 고리를 노출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미국은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중 갈등이 확대됐고, 미국 증시가 급락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금리 인상 기조를 취하던 미국 연준에 연일 맹공을 퍼부었다. 결국 미국 증시가 전고점 대비 20% 하락하는 약세장에 진입했다. 미국으로서는 협상의 문턱을 낮춰야 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경제와 금융시장의 성과가 트럼프 대통령 재선에 중요한 변수임을 감안할 때, 중국으로서는 강대강(强對强) 대결을 감수하며 최대한 버텨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고 트럼프 대통령의 낙선을 유도하겠다는 포석인 듯하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향후 환율에 어떻게 작용할까. 양국의 갈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만 보면, 부정적 경제 환경에서 강세를 보이는 달러화 가치가 쉽게 하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의 1200원 돌파에 기여한 위안화 약세가 심화된다면 2015~2016년과 같이 중국에서 자본유출이 나타나며 금융위기론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 당국은 위안화 약세를 방관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이다.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도 억제될 것이다.

원화 약세와 달러화 강세를 동반하는 위안화 약세가 심화된다면, 강한 달러가 불편한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두고만 볼지 의문이다. 7월 중에 백악관 차원에서 아예 재무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릴지 공론화한 적이 있다. 물론 개입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라면, 위안화 약세와 이에 동반된 원화 약세, 달러 강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외환시장에 전격 개입해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수위를 높이는 것은 미국 경제에도 부담이 된다. 따라서 미국의 연준도 금리 추가 인하의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이 또한 달러화 강세를 일정 부분 누그러뜨릴 변수다.

일본의 경제보복 문제는 어떤가.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평행선을 달리고 한국이 객관적인 경제력이나 기술력, 생산 분업구조에서 열세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가 효과적이고 치밀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화이트국가로 불리는 안보 우호국 명단에서 한국을 아예 제외하는 2차 보복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제 한국에 수출하는 1100여 개 품목에 대해, 개별 수출 허가를 득해야 하는 절차가 적용되기 시작한다.

이런 일본의 조치에 따라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이다. 먼저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한국에 대한 수출 승인 절차가 강화되고 초기 정책 적용 때 소요되는 심사 기간 동안, 한국 기업의 원재료 재고 부족으로 일부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핵심 품목에 수출 불허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서, 정책 변화 과정의 마찰적 조정 수준으로 충격이 제한되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개별 허가를 위한 심사기간 90일이 경과되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심사를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편법적인 방식을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기 조치였던 반도체 소재 수출에 따른 심사기간은 10월 초까지다. 하지만 일본의 주장대로 한국에 취한 조치들이 경제보복이 아니라 중국·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동일한 수준의 대우로 특혜를 되돌린 것뿐이라면 우리 기업들에게 유의미한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정적 시나리오는 일본의 수출 심사 과정에서 상당수 품목에 수출 불허 결정이 내려지면서 한국 주요 산업이 심각한 생산 차질에 직면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에도 개별 허가를 위한 심사기간 90일 경과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다. 실제로 수출 불허 결정이 속출한다면 시장의 우려는 커지고 원·달러 환율도 기본 시나리오에 비해 추가 상승하면서 1200원 대에서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양국이 갈등의 단초가 된 사안들에서 외교적 실마리를 끝내 찾지 못한다면 사태가 확대될 우려도 있다.

지난 10년 사이 원·달러 환율 4차례 1200원 돌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지난 10년간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이상에서 형성된 것은 모두 4차례다. 이 가운데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는 1주일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와 달리 2010년과 2016년에는 두달 가량 지속됐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만약 2.0% 내외에 그친다면 1980년 석유파동,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하면 최악의 성장률이 된다. 한국 경제의 현실만 보면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이상에서 두달 남짓 머무르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재무부와 연준 등 정책당국은 달러화 강세가 단지 7위안, 1200원을 넘긴 데 그치지 않고 더욱 심화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498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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