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회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 경제에 불안한 먹구름이 걷힐 날이 없다. 안으로는 고비용·저효율을 낳는 제도와 정책의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누적되고 있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 한일 무역분쟁까지 겹치면서 수출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우리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금처럼 내우외환(內憂外患)의 빅 이슈가 넘쳐나면서 기업이 힘들고 국민이 불안한 시기는 최근 20년 동안 유례가 없었던 듯하다.

이런 와중에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작지만 중요한 사안이 한국과 미국에서 각기 발생, 진행 중이다. 하나는 미국 BRT(Business Roundtable)에서 지난 8월 19일 발표한 ‘회사의 목적에 관한 선언’이다. 다른 하나는 9월 6일, 금융위에서 공고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다. 이 둘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해도 자세히 뜯어보면, 펀드 자본주의(fund capitalism)에 대해 서로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BRT는 기관투자자 행동주의가 회사의 중장기 가치를 저해한다고 보는 반면, 한국 정부는 연기금 행동주의가 바람직하다며 이를 촉진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BRT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자. BRT는 우리말로 미국 기업가 원탁회의쯤 될 것이다. 1972년에 설립했고 회원 자격은 회사가 아니라 CEO에게 부여된다. 회원사의 시가총액이 미국 시장의 20%에 이를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경제단체이다. 그런 BRT에서 회사의 목적을 주주 자본주의 전통과 다르게 선언한 것은 뜻밖이다. 선언문은 300단어로 분량은 짧으나 주주 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중시하겠다는 내용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선언문에 아마존(제프 베조스)·애플(팀 쿡)을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CEO 181명이 서명했다.

BRT는 구체적으로 소비자에게는 고객의 기대를 넘는 가치를, 종업원에게는 공정보상 및 교육훈련 투자를, 협력사에게는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를, 지역사회에 대해서는 공동체 가치와 환경 보호를 회사의 목적에 명시했다. 반면에 그동안 최우선해왔던 주주가치 창출은 맨 마지막에, 그것도 ‘장기적’이라는 표현으로 제한해서 언급하고 있다. 문장만 보면 미국 경영계가 앞으로는 주주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향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BRT 선언이 놀랄 내용이 아닐 수 있다. 예컨대 B2C 회사는 고객감동 경영을, B2B 회사는 상생경영·동반성장을, 팀 성과가 중요한 회사는 근로자를 가족으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미국은 다르다. 대표적 사례가 포드(Henry Ford, 1863~1947)이다. 포드는 자동차 생산에 최초로 컨베이어 분업 시스템을 도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큰 돈을 벌자, 포드는 자본금의 60%에 이르는 배당을 통 크게 한 후에 더 이상의 배당은 없다고 했다. 회사 안에 자본금 대비 29배나 많은 이익금이 있음에도 회사는 돈 버는 게 전부가 아니라 다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며 무기한 배당 중지를 선언했다. 이에 반발한 주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1919년, 미시간주 대법원은 포드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한 활동 목적으로 조직된 것이며, 회사의 이사는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선임되고 재량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사가 회사의 목적을 변경하거나 주주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판시의 요지였다.

미국은 어떤 나라보다 주주 우선주의를 견지해왔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고, 경영자는 주인을 위해 충실의무가 있는 대리인이다. 기업의 유일무이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프리드만 독트린(Friedman Doctrine)’이 함축하듯이 회사가치는 주주가치와 동일하며, 주주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이기 때문에 주주 우선주의는 고객, 종업원, 협력사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조화된다고 여겨왔다. 따라서 2019년 BRT 선언은 미국 기업지배 원칙의 전통에 반하는 한편, 심하게 말하면 대리인(CEO)이 담합해서 주인(주주)에게 반기를 든 격이다.

정말로 그런가? 아직은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BRT 선언은 주주 자본주의 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간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펀드 자본주의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강하지만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하면 연기금·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경영 관여 활동이 늘면서 회사의 중장기 가치 지향 투자와 전략의 실행이 어렵게 되자, 회사의 목적은 ‘장기적 가치의 창출’에 있음을 새삼 강조하기 위해 선언문 형태로 발표한 것이다.

펀드 자본주의는 연기금·펀드·기관투자자가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본시장과 회사 경영에 깊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펀드 자본주의는 세계적 현상이다. 문제는 이들의 이익 실현 주기가 갈수록 단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기관투자자 비중은 70%대로 큰 반면, 주식 보유 기간은 평균 6개월 미만으로 짧다. 단기 주주는 시간할인율이 높고 미래 지향 투자보다는 당장의 수익 실현을 선호한다. 그래서 기관투자자가 자사주 매입·소각, 유상감자, 자산매각·특별배당 등의 요구로 회사를 압박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2014년 조사에서 미국 CEO 65%는 기관투자자 행동주의 때문에 중장기 전략 추진이 어렵다고 할 만큼 펀드 자본주의는 이미 미국 기업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때문에 BRT는 ‘2016년 기업지배 원칙’에서 기관투자자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강하게 촉구한 바 있다. 즉 ‘주주는 모든 주주를 위해 장기적 가치 창출의 목표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하며, 이러한 책임감 없이 추가 권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은 2010년 영국에서 시작했던 ‘스튜어드십 책임(stewardship responsibility)’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스튜어드십 책임은 회사와 경제의 지속 발전을 위해 기관투자자는 단기주의에서 벗어나 회사의 중장기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BRT 선언 역시도 회사가 본연의 목적인 장기적 가치창출 활동을 할 수 있게 기관주주는 단기주의 압력을 자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10년 영국의 스튜어드십 책임론부터 2019년 BTR 선언에 이르기까지 그 배경에 기관투자자는 주주 자본주의 최대 수혜자이며, 회사의 목적과 주주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역설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 이름으로 정부가 기관주주의 행동주의를 촉진하겠다면 순기능은 살리되 부작용은 줄이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스튜어드십 책임에 관한 내용 없이 연기금의 경영 참여 요건만 완화하고 있다. 개정안이 이대로 확정되면 앞으로 한국 상장사들은 단기주의 압력에 시달리는 한편, 환경(E)·사회(S)·지배구조(G)의 불확실한 이슈 공간에서 연기금의 경영 관여 압박에 더욱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 황인학 한양대 특임교수(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505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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