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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정치·군사 지형도 지각변동] 쿠르드 사태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미군 철수한 시리아에서 터키 맹공… 시리아 쿠르드족, 시리아·러시아에 SOS 신호

▎10월 15일(현지시간) 시리아를 공격한 터키를 규탄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가 암만 시리아 대사관 옆에서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6일 미군의 시리아 철군으로 함께 싸웠던 시리아 쿠르드족이 보호막을 잃자 터키가 9일부터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면서 중동의 국제정치 지형도가 대규모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어제의 적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부와 손을 잡고 병력 이동을 요청한 데 이어 러시아에도 SOS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10월 14일 시리아 사나 통신을 인용해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 국경에서 20㎞ 떨어진 탈탐르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터키군은 9일 이후 국경을 넘어 시리아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쿠르드 자치 지역인 라호자 북부에 진입했다. 시리아 국경 근처의 시리아 쿠르드족을 몰아내고 안전지대를 만들어 자신들이 ‘테러세력’으로 부르는 터키 내 쿠르드족 측과 접촉 통로를 막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터키 공세 앞에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날에는 방관자가 되는 ‘피아 구분이 모호한 혼란의 시대’를 맞고 있다.

터키의 공격으로 수백 명이 사망하고 20만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 쿠르드족으로선 자신을 터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어떤 세력이든 우방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독배라도 기꺼이 마실 수밖에 없다. 시리아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명분과 국민 사이에서 국민을 선택한 셈이다.

피아 구분이 모호한 혼란의 시대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러시아다. 러시아는 “초청받지 않은 외국군은 모두 시리아에서 떠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시리아 정부가 요청해서 파병해서 병력을 주둔 중인 유일한 국가다. 시리아 정부는 내란의 한 축에 지나며 않으며, 화학무기 사용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른 집단으로 지목 받고 있지만 합법적인 정부다.

러시아는 미국이 빠진 중동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러시아의 국제방송인 RT는 러시아군이 시리아 북부 도시 만비즈에 헌병을 파병해 순찰과 경비 활동에 나섰다고 10월 16일 보도했다. 앞서 터키군이 9일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면서 쿠르드 민병대 YPG가 핵심인 시리아민주군(SDF)을 몰아내고 요충지인 탈 아브야드 등을 점령한 뒤 유프라테스강 서안의 쿠르드 도시 만비즈에 병력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시리아 쿠르드족의 요청으로 시리아-터키 국경 근처로 시리아 정부군이 진입하자 러시아군이 이 지역에 진입해 순찰과 경비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 지역의 시리아 정부군이나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를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터키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쿠르드인으로서는 지금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이든, 러시아군이든 가리지 않고 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빠진 자리에 러시아 적극 나서


이런 상황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의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가 주축이 된 독재자 알아사드 추종세력과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주역이다. 거기에 동북부 시리아 쿠르드족이 자치를 선언했다. 이런 내전이 빚은 치안 공백을 노려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 락까와 그 동쪽의 이라크 북부 모술 등을 차지해 중세 이슬람 율법을 빙자한 잔혹 통치를 이어나갔다. 시리아 정부군은 반정부군과 시리아 쿠르드족, 그리고 IS에 모두 맞서야 했다. 반군은 정부군과 IS에 맞섰으며 시리아 쿠르드족과는 협력 관계를 이어갔다. 시리아 북부에선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가 일부 반군부대와 손잡고 IS를 비롯한 극단주의 테러 세력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시리아민주군(SDF)를 구성해 미군과 함께 IS에 대한 투쟁을 주도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리아에 파병해 시리아 쿠르드족이 주축이 된 SDF의 협력을 얻어 IS 격퇴전을 치렀으며 올해 6월 IS의 시리아 내 마지막 근거지인 바구즈를 점령했다. 그런 시리아 쿠르드족과 SDF가 미군 철수로 터키의 공격을 받게 됐으나 이들이 미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시리아 내전에서 알아사드의 최종적인 군사적·정치적 승리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 폴리시는 10월 17일자에서 “알아사드가 시리아에 남은 최선의 시나리오가 되고 있다”라며 “잔혹한 독재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쟁 범죄에도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 남은 차악의 선택이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알아사드는 반정부 시위에 나선 국민을 학살하면서 내전을 유발했으며 그 결과 지금까지 50만 이상의 사망자와 수백만의 난민을 만들었다. 이 매체는 완벽한 세계에서라면 알아사드는 다마스쿠스에서 통치하는 대신 헤이그에 있는 국제법정에 서는 게 마땅하겠지만 우리는 완벽한 세상에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끔찍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쿠르드족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 독립국가 수립을 기도할 수 있지만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아 왔다. 터키·시리아·이라크·이란에 걸쳐 있는 쿠르드족이 결합해 하나의 나라를 만든다면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지역전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 4개국이 힘을 합쳐 자국과 이웃나라의 쿠르드족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서로 각축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아직 쿠르드 국가도 없고 조만간 생길 가능성도 없는 상황임에도 쿠르드족은 이 지역의 주요 세력의 하나로 이미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시리아 동북부 로하자 지역에서 사실상 자치를 하면서 군사적으로 상당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다.

쿠르드족 세 확장 막으려는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10월 14일 수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양국은 예멘 사태, 이란과의 갈등 등 중동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터키는 이번에는 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를 공격했지만, 다음에는 총부리를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구의 민병대인 페슈메르가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터키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터키 내 쿠르드족 군사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손잡고 독립국가 건설을 추진한다고 비난한다. 이에 따라 터키의 PKK는 물론 시리아 쿠르드족의 YPG와 이라크 쿠르드족의 페슈메르가까지 모두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터키는 이번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을 테러 세력 응징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미국과 손잡고 테러세력 IS를 몰아낸 YPG까지 테러 세력으로 모는 것은 모순적이다. 터키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포린폴리시는 미군이 시리아에 주둔하면서 YPG를 포함한 SDF와 함께 작전을 펴고 있었기에 늦춰졌을 뿐, 터키는 언젠가는 이들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군이 영구히 시리아에 주둔한다고 해서 시리아 쿠르드족을 터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부군이 2011년부터 이어진 내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방 국가가 지원해온 반군을 누르고 군사적으로 최종 승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린폴리시는 “이런 사실은 도덕적인 분노를 일으키지만 도덕적인 분노는 정책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알아사드 체제가 허약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세력이 시리아 일부를 차지하는 한 그는 자신의 위치를 강화할 수 없으며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다양한 카드로 알아사드를 견제하면 할수록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와 이란의 입김이 강해져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중동에서의 입지가 약화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알아사드에게 시리아 전체를 통치하는 권한을 인정해주는 게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게 포린폴리시의 의견이다. 이렇게 하면 시리아 쿠르드족 자치에 대한 터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게 된다. 터키의 에르도완 대통령은 알아사드를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쿠르드족은 더욱 싫어한다.

알아사드가 시리아 전역을 장악하게 되면 시리아에 아직 남아있는 IS 세력의 처리 문제도 자연스럽게 그가 맡을 수밖에 없게 된다. 더 이상 미국이 파병할 필요가 없어진다. IS는 이슬람 수니파의 극렬 광신도라 이교도만큼이나 시아파를 중오하고 박해한다. 알아사드는 종교적으로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인 알라위파에 속한다. 알라위파는 시리아 정부군의 주력이다. IS가 이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개성 있는 분파다. 그렇기 때문에 알아사드는 IS를 잔혹하게 말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0월 14일 2007년에 이어 12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에너지·항공·보건 분야에서 20건이 넘는 협약을 맺고 100억 달러 규모의 합작법인 30개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VOA가 보도했다.

푸틴은 10월 15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트럼프 못지 않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양국 기업과 정부는 푸틴의 방문에 맞춰 13억 달러 규모의 사업·투자 협력 6건에 서명했다. 사우디와 UAE는 수니파 연합군을 만들어 예멘 내전에 개입해 시아파 후티 반군과 싸워왔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란산으로 추정되는 탄도 미사일을 사우디에 발사해왔다. 지난 9월 사우디 유전과 정유공장에 대한 드론 공격도 후티 반군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며, 사우디 당국은 이란을 의심하고 있다.

푸틴은 중동 순방 하루 전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용 알아라비아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와 이란 모두와 가깝다”며 “중동의 모든 나라와 우호적인 러시아가 한쪽의 메시지를 다른 쪽에 전달할 수 있다”며 중동에서 중재를 비롯한 역할을 확대할 뜻을 비쳤다. 푸틴의 중동 시대가 바야흐로 열리는 셈이다.

푸틴, 중동에서 중재자 역할 확대 뜻 비쳐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이란·북한과 더불어 시리아와 관계가 돈독한 드문 나라라는 점이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1년 시리아 내란이 발발한 이후 딱 3차례 해외를 방문했는데 모두 러시아였다. 알아사드는 2015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뜨거운 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러시아 흑해 연안 도시 소치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28일의 유엔 주재 시리아 평화회담을 앞두고서다. 누가 봐도 러시아가 시리아의 후견세력임을 보여주는 이벤트다. 알아사드는 2018년 5월 17일에도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경제 재건 등을 논의했다.

소치는 옛 소련 시절 건설돼 휴양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이다. 옛 소련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휴가를 보내거나 정치적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지도자들이 모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로 애용됐다. 미국으로 치면 트럼프의 플로리다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나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것과 일맥상통하다. 시리아의 알아사드는 러시아의 푸틴과 그 정도로 친밀하고 협력적인 관계임을 과시한 셈이다. 푸틴은 알아사드를 이용해 중동에서 과거 소련 시절의 위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알아사드는 2011년부터 내전을 치르면서도 그런 푸틴의 비호 속에 지치지 않고 정권과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8년 7월 30~31일 소치에서 이란과 터키와 유엔난민기구(UNHCR)의 필리포 그란디 대표, 유엔 시리아 특사인 스테판 데 미스투라 등을 불러 시리아 복구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를 열기도 했다.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는 동안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문제에서 러시아의 입김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푸틴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불러 모아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는 삼국 정상회의를 지난 9월 16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었다. 이들 세 명은 2017년 11월 소치에서 삼국 정상회담을 연 것을 시작으로, 2018년 4월엔 터키의 앙카라에서, 2018년 9월에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2019년 2월에는 러시아 소치에서 각각 회담을 열어왔다. 시리아 내전의 종식과 재건 문제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그동안 러시아는 중장거리 미사일과 로봇 기갑무기, 폭격기, 특수부대 등 다양한 군사력을 시리아에 투입해왔다. 이를 통해 러시아산 무기의 성능을 실험하고 그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흑해에서 발사해 시리아의 목표물에 정확하게 타격했다. 게다가 기관포를 장착한 ‘우란 기갑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로봇 무기를 실전에 투입해 이 분야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를 최대한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무게를 옛 소련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푸틴의 중동 전략이 엿보인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06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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