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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부실로 치닫는 두산중공업] 매출의 35%가 못 받은 공사비 

 

회계투명성 가이드라인도 위반… “재무적 위험 숨길 수 없는 수준” 지적도

▎사진:© gettyimagesbank
“시장이 변했는데 우리는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2017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제프리 번스타인은 자리에서 물러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력시장을 잘못 평가해 과잉 투자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2년이 지난 2019년 9월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다. 발전설비 제조업체 두산중공업에서 플랜트 부문을 담당했던 김성원 부사장이 사직했다. 탈석탄 등 전력시장 전환으로 두산중공업이 재무위기에 빠져서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거의 매일 다섯 명꼴로 사표를 받았다. 죄인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7년 GE는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존 플래너리 GE 회장이 직접 나서 화력발전 등 사업을 접고 재생에너지 시장 투자를 늘렸다. GE의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로런스 컬프도 전력사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CFRE리서치의 자산분석가 짐 코리도르는 “GE가 이제야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냈다. 이에 반해 두산중공업은 제자리걸음이다. 발전설비 부문을 제외한 일부 사업부 매각 방침만을 전환 대신 추진하고 있다. 멜리사 브라운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재무분석 담당이사는 “두산중공업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빨간불’ 켜진 재무 지표


변화를 거부한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가 악화일로다. 두산중공업은 매출 하락이 시작한 2013년 이후 단 한 번도 당기순이익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발전설비 시장이 석탄화력발전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변화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부터 수주잔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2015년 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면서다. 2015년 8조4000억원이었던 신규 수주 물량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조1800억원으로 줄었다. 때문에 매출액(개별 기준)도 감소했다. 2015년 5조원대였던 매출액은 2018년 4조1000억원 선을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는 2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세계적인 탈석탄 에너지 전환이 타격이 됐다. 시장에서는 전체 발전 규모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대에서 2040년에는 20%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은 전체 사업에서 70% 비중을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화력발전소 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면서 “파리협약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사업엔 투자가 제한돼 화력발전소 건설 발주가 줄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해에 건설되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2011년 249기에서 2016년 122기에 그쳤다.

문제는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 악화가 재무 부실로까지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연간 2000억원이 넘던 영업이익은 2018년 18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고,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 628억원을 버는 데 그쳤다. 4분기 결산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작년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해 말 100% 자회사로 전환한 두산건설이 두산중공업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전환상환우선주(RCPS) 인수 및 유상증자 참여 등을 통해 두산건설에 1조원 이상을 지원했지만, 결국 두산건설은 상장폐지를 예정했다.

최근 두산중공업의 재무 지표는 이상 징후까지 보이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미청구공사 비율이 대표적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미청구공사 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개별 기준)의 50%를 초과했다. 지난해 매출액 3조4861억원(연환산 추정)의 중 절반인 1조7861억원이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한 채권자산으로 잡혀있는 것이다. 회계업계에서는 미청구공사 잔액 증가를 회수가 어려운 부실 채권의 증가로 분석한다. 또 기업이 시장에 수익을 과다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회계상 진행률을 높게 산정할 경우 미청구공사 잔액이 느는 만큼 회계 부정의 수단으로도 보고 있다.

미청구공사는 공사비를 달라고 요구하지 못한 금액으로 전문가들은 통상 20%를 정상 수준으로 본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 공사비가 들어와 미청구공사 잔액이 작년 말 기준으로는 1조2990억원, 매출(약 3조7000억원) 대비 약 35%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발주처와 계약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두산중공업과 유사한 발전설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포스코플랜텍과 비교해도 미청구공사 비율이 높다. 포스코플랜텍은 2018년 기준 미청구공사 잔액이 약 193억원, 매출의 6.6%다.

완공하고도 못 받은 돈 1000억원 달해


지난해 4분기 새로 받은 공사비를 반영해도 두산중공업의 미청구공사 비율은 몇년 새 빠르게 늘었다. 2017년 31.2%였던 매출 대비 미청구공사 비율은 2018년 37.17%, 지난해 35.11%(추정)으로 각각 뛰었다.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매출 대비 미청구공사 비율만으로는 2015년 대우조선해양, 2017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분식회계 사태 때 수치와 비슷하다”면서 “앞서 발생한 분식회계 사태가 일정 기간 미청구공사 잔액이 증가한 후 특정 시점에 해당 자산의 부실이 공개되는 방식으로 진행된 만큼 두산중공업의 미청구공사에 대한 면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기 전 미청구공사 비율이 2012년 23.87%에 2014년 44.06%로 커졌다.

미청구공사 잔액의 건전성도 떨어진다. 두산중공업 감사보고서 분석 결과 약정된 완성기한을 지나 공사 진행률이 100%에 근접해도 미청구공사로 남아있는 계약이 5건에 달했다. 두산중공업가 미국에서 건설 중인 보글(Vogtle) 원전 3·4호기는 지난 2014년 2월 완공해 진행율이 100%임에도 100억7700만원이 미청구공사 잔액으로 남아있다. 베트남에 건설한 석탄화력발전소 빈딴(Vinh Tan) 4도 마찬가지다. 2018년 6월 완성해 99% 진행률을 기록했음에도 501억9800만원이 미청구공사 잔액으로 남아있다. 이밖에 진행률이 99~100%로 사실상 완공한 사업 전체의 미청구공사 잔액은 총 963억1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미청구공사 잔액의 5%에 해당한다.

두산중공업의 재무 부실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는 분석이다. 발주가 줄어들 경우 업체는 저가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고, 공사 진행과정에서 늘어난 비용이 미청구공사로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가 수주가 원인이 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사태가 대표적이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변호사)는 “두산중공업은 석탄화력발전 발주가 줄어드는 속에서 석탄사업 정리에 발빠르게 나서는 대신 저가 수주를 택했다”면서 “최근 두산중공업이 수주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공기 지연마저 심화되고 있어 미청구공사 잔액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IEEFA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8개 석탄회사가 도산했고, 호주에서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4대 석탄 회사가 모두 무너졌다. 반면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호황을 맞고 있다. 특히 석탄사업을 정리하고 재생에너지로 초점을 돌린 유럽의 전력회사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스페인 전력기업 이버드롤라(Iberdrola)와 프랑스의 엔지(ENGIE)는 사업 구조 전환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주가가 각각 24%, 15% 상승했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두산중공업이 맞은 위기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이 아니라 변화를 빠르게 읽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금흐름·신용등급 적신호에 검증 절차도 무시


▎두산중공업이 2022년에나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복합화력발전소용 가스터빈. / 사진:두산중공업
상황이 이렇게 보니 두산중공업에 대한 회계 감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실채권을 손실로 인식하지 않고 미청구공사 금액으로 계상해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구심에서다. 지난해 9월 IEEFA는 ‘두산중공업 부정적발감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멜리사 브라운 IEEFA 재무분석 담당이사는 “발전설비 제조업체인 두산중공업은 2015년 이후 4년여 동안 진행된 에너지 전환에도 전통적인 석탄화력발전 관련 기술에만 주력하는 등 시장 오판을 범했다”면서 “오판이 유발한 재무적 위험이 숨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특히 현금 흐름이 불안하다. 두산중공업의 순영업활동현금흐름(NCF)은 2018년 말 1395억원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7451억원까지 나빠졌다. 그나마 조정 항목을 늘리며 영업활동현금흐름을 지지한 결과다. 통상 영업현금흐름 조정은 이자비용, 감가상각비, 상각비로 구성되는 비현금성 항목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대손 및 손상차손, 외환의 회계처리, 품질보증, 가치평가손익 등과 같은 별도 항목에 현금 가액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현금 흐름을 조정하고 있다. IEEFA는 보고서에서 “두산중공업이 손익계산서상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과 현금흐름표 상에 표시하는 방식 간의 명백한 차이를 이용하여 현금을 부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등급은 이미 위태위태하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5월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을 ‘BBB+(하향검토)’에서 ‘BBB(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 한신평은 “두산중공업의 차입금 중 일부는 BBB 등급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곧바로 해당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조건에 묶여 있다. 한 단계라도 등급이 떨어지면 이로 인해 두산중공업의 재무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말 기준 180%대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차입금 비중이 85%로 높다. 이에 매출채권을 담보로 유동화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주식·사업부 매각 통한 ‘버티기’ 나서나


이런 가운데 회계 관련 외부감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중공업은 금융감독원이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낸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강화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있다.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강화 가이드라인은 금융감독원이 공사 진행률 및 투입 원가율 검증을 외부 전문가를 통해 진행토록 한 제도다. 미청구공사를 통한 실적 부풀리기 회계 부정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의 2017·2018년 감사보고서 분석 결과, 두산중공업은 건설계약 등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공사 진행률 및 미청구공사 잔액 검증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적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최근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의 진출 시도가 늦은 탓이다. 두산중공업의 복합화력발전소 가스터빈 시장 진출 계획 역시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 정부 지원을 받아 가스터빈 개발을 시작했지만, 대용량 가스터빈 시장으로 진출이 늦어졌다. 출시는 2022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의 신재생에너지나 가스터빈 수주는 수입 대체의 명분이 있는 국내에서만 일부 가능할 뿐 해외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다”면서 “먼저 사업 전환에 나선 GE 등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브라운 이사는 “두산중공업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은 스스로 인식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두산중공업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업 구상은 여전히 접근성이 좋은 국내시장, 정부 보조금에 기반한 연구개발(R&D), 수출금융지원에 기댄 해외 프로젝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두산중공업은 우선 매각을 통한 ‘버티기’ 전략을 쓰는 모양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최근 재무적투자자(FI)를 만나 유동화가 가능한 계열사 주식, 매출채권 등을 기반으로 자금 조달을 타진하고 있다.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두산메카텍의 주식담보대출에 참여하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부 매각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보일러와 터빈 등을 생산하는 발전설비 부문을 제외한 일부 사업부를 팔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쳤다”면서 “일단의 자구책 마련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22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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