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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인니 사업 이사회 상정 보류] 편법·공정성 논란, 투자 철회까지 이어져 

 

금융 계약도 올 1분기에서 2분기로 연기… 한전 “엄격한 기준 적용해 추진할 것”

▎사진 : © gettyimagesbank
한국전력이 예비타당성(예타) 부정 평가에도 밀어붙였던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의 이사회 안건 상정을 보류했다. 지난해 11월 한차례 상정을 연기한 데 이어, 2월 28일 이사회에서도 편법 추진 등이 문제가 되면서 상정이 재차 미뤄진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석탄 화력 부문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있어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안건의 이사회 상정이 계속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편법 투자 비판 거세자 일단 이사회 상정 연기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한전 외벽에 ‘기후 악당’이라는 글씨를 레이저빔으로 쏘며 해외 석탄발전 투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사진 : 그린피스
2월 27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28일 개최한 ‘2020년도 1차 이사회’에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안건’을 상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은 한전이 전기요금 중심의 재무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해외 사업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1G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 2기(자와 9·10호기)를 짓는 것으로 전체 사업비만 약 3조5000억원(34억 달러)에 달한다.

한전이 사업 추진을 두고 불거진 비판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한전은 앞서 예타 평가를 받지 않도록 사업 규모를 약 480억원(기존 600억원) 수준으로 축소하고, 2월 28일 2020년도 첫 이사회에 해당 안건 상정을 예정하면서 편법 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전과 같은 공공기관은 사업 규모가 500억원을 넘을 경우만 예타 평가를 받는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 드러나면서다. 앞서 한전은 “예타 조사에서 나온 사업성 없다는 결과는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은데 따른 결과”라며, 지난해 11월 이사회 상정 무산 이후 3개월 만에 이사회 재상정을 추진했다.

한전은 사외이사를 이른바 ‘한전 사람’으로 배치해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전은 해당 사업의 이사회 통과를 위해 이른바 ‘한전 사람’으로 불리는 인사까지 사외이사에 끼워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에서 인도네시아자와 9·10호기 석탄 화력발전소 사업 관련 의결을 보류하거나 부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내부 관계자는 “사내이사 7명, 사외이사 8명으로 구성되는 한전 이사회의 특성상 사외이사 한 명만 찬성표를 던지면 내부 추진 사업의 원안 가결이 가능하다”면서 “예타 평가로 이사회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외이사 한 명만 찬성하면 가결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인니 사업 밀어붙이는 한전] ‘예타’ 피하려 사업 규모 축소, 이사회엔 ‘한전 사람’ 배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한전의 투자 추진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며 한전을 비판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1월 21일 저녁 한국전력 서초지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수익성도 낮은 시대착오적인 결정이자 제2의 호주 산불을 부추기는 지름길”이라며 즉각적 투자 중단을 촉구했다. 그린피스는 한전 외벽에 ‘기후 악당’이라는 글씨를 레이저빔으로 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 국내 환경단체들도 지난해말부터 한전에 대해 해외 석탄화력 투자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전의 이사회 안건 상정 철회로 한전의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관련 금융 계약도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젝트파이낸스인터내셔널(Project Finance International)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1분기로 예정했던 금융 계약을 2분기로 연기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통과가 이뤄져야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공적금융기관이 한전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구조”라면서 “예타 등 문제로 이사회 상정이 미뤄진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상정 철회 속 자금 수혈 문제까지 불거져

일각에선 한전이 현재 자금 수혈 문제를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펀드 투자자들이 한전에 대한 투자 지분을 빠르게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는 이미 약 6000만 유로(약 791억원) 규모의 한전 지분을 매각했다. APG는 투자 축소 방침에 대해 “세계 금융시장은 석탄화력 부문에 대한 투자를 줄여나가고 있는 추세”라며 “한전 사장과 이사회는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추진이라는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APG는 앞서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가 주최한 ‘2019 KRX인덱스 콘퍼런스’에서 “APG는 2015년을 기준으로 2020년까지 탄소 배출을 25% 줄이지 않으면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운용 방침을 갖고 있다”며 “한전이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두 기업은 물론 이들에 의존하는 기업들까지 네덜란드 연기금의 투자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해외 투자자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탈석탄을 선언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금융 지원 철회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공적자금 역시 한전이 연말까지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투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는 한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해외투자자들이 금융 지원을 거두면 해당 자금을 한전이 충당케 되어 있는데, 일단의 자금을 확충해야하는 한전으로써는 이사회 상정을 계속 미룰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석탄 발전에 대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면서 “문제가 된 예타 부분은 정부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예타 재신청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24호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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