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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기능과 역기능, 두 얼굴의 ‘공매도’ 

 

1966년 개봉한 영국 영화 ‘007 카지노 로열’은 첩보원의 활약을 그린 액션물인데, 놀랍게도 극중에 ‘공매도(Short selling)’가 등장한다. 테러 자금을 조달하는 악당이 거대 항공사의 주식을 공매도한 것이다. 이어 곧 그 항공사의 신형 비행기를 폭파해 주가를 폭락시키려 하지만 007의 활약으로 오히려 엄청난 손실만 입는다. 악당들은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결국 도박판에 뛰어든다는 줄거리.

그런데 공매도가 비행기 폭파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공매도(空賣渡)란 문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이다. 즉 ‘없는 주식’을 매도한다는 이야기인데 얼핏 어불성설이다. 싼 이자를 주고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린 뒤 그 주가가 내려가면 자신들은 이익을 취하고 넘긴 주주들은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잘 나가는 대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투자자라도 그 주식을 빌려서 50만원에 일단 매도한다. 그리고 며칠 후 주가가 40만원까지 떨어졌다면 공매도한 투자자는 40만원에 동일한 수량의 주식을 시장에서 매입해 빌렸던 주식을 갚으면 된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주식을 40만원에 매입해 50만원에 파는 것과 같은 효과다. 주당 10만원의 이익을 거두게 되는 셈이다. 대신 예상이 빗나갔을 경우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그 주식이 시장에서 호재로 작용해 오히려 주가가 60만원으로 올랐다면 투자자는 주당 10만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잘 나가면 ‘봉이 김선달’ 격이지만, 자본주의에 공짜는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공매도는 투기성이 짙은 데다 주가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시장조작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국가별로 엄격한 제한을 두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공매도는 우리나라에서 1996년부터 허용됐으며, 외국인 투자가의 차입 공매도는 1998년 7월부터 허용되고 있다. 현재 개인투자자도 공매도할 수는 있게 돼 있지만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많은 데다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주로 외국인투자가들이 공매도 거래를 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자가 주식을 공매도한 다음 이득을 챙기려면 그 주가가 반드시 하락해야 하기 때문에 시세조작 등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화 ‘007 카지노 로열’에서 항공사의 주식을 공매도한 뒤 비행기를 폭파하여 주가를 폭락시키려는 시도가 바로 대표적인 주가조작을 위한 음모였다.

공매도한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기업에 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릴 수도 있다.

공매도는 우선 증권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수가 있다. 투자자가 공매도한 후 예상을 뒤엎고 해당 주가가 상승할 경우 투자자 손실 부담이 과도하게 커져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주식을 공매도한 투자자가 주식대여기관에서 빌려온 주식을 약속한 날까지 반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공매도의 부작용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당시 헤지펀드들이 선진국 주식시장의 급락을 틈타 주로 금융회사 주식을 공매도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는 비난이 높았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을 비롯하여 한국도 모든 주식의 공매도를 금지한 바 있다. 그러다가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이듬해 6월부터 다른 기관에서 주식을 빌려와서 매도하는 비금융회사 주식의 차입 공매도 허용하고 있다. 일부 제한을 두고는 있지만, 공매도 거래를 계속 허용하고 있는 것은 공매도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시장의 효율성과 유동성을 높이고 주식투자 위험을 경감시키는 역할도 해준다. 공매도는 적절히 활용하면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나라 기관들은 오직 자신들의 수익과 수수료 수입을 위해 과도한 공매도를 행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주가 하락의 손실을 결국 개인이 고스란히 떠맡기 때문이다. 공매도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그 하나는 유가증권이 전혀 없이 주식을 미리 파는 투기성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 또 다른 방식은 빌려온 주식을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는 공매도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가하는 정책을 취했다. 특히 약세장 전망이 계속될 때 공매도가 몰린다면 시장은 한순간에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물량이 충분한 기관이라면 공매도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 주가 폭락을 유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2008년 페니메이(fanniemae) 등 19개 금융주에 대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했고, 같은 해 9월에는 799개 모든 금융주에 대해 모든 방식의 공매도를 금지했다가 한 달 뒤 해제했다. 당시 영국, 독일, 호주 등 주요국들도 공매도 금지 대열에 합류한 뒤 지난해 위기가 진정되면서 금지를 해제했다.

전 세계적으로 공매도 규제 잇따라

하지만 공매도의 순기능을 옹호하는 주장도 많다. 공매도도 선물이나 옵션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다양성과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할뿐더러 공매도의 부작용과 관련된 대부분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우선 선매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매도가 없는 시장에 비해 개별 종목의 가격이 적정 가격에 가깝다는 게 일반론이다.

우리나라에서 주식 공매도는 1969년 신용융자제도가 도입되면서 시작됐지만, 실제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공매도가 활기를 띤 것은 당시 증권거래소 상장종목에 대한 유가증권 대차제도가 시작되면서부터다. 금융당국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모든 종류의 공매도를 금지했다가 이후 경제회복이 본격화되면서 이듬해 비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금지를 해제했지만, 여전히 금융주 공매도는 사실상 금지돼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는 도미노 폭락을 이어갔다. 장중 17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도쿄 주식시장에서도 패닉 공포가 감돌았다. 경제당국은 서둘러 대책을 내놨다. 개인투자자들의 청원이 빗발치고 있는 공매도 문제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6개월간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공매도와 관련한 규제가 한창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공매도는 적정한 주가를 신속하게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는 변수가 많다. 공매도를 일시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도한 주가 변동성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규제 조치를 필요 이상으로 장기화하거나 과도한 규제를 취하는 것은 시장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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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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