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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정책의 한계] ‘0%’대 기준금리 시대, 효과는 글쎄 

 

경제거품 우려에 소비심리 위축... 정부 대응 여력 부족하단 지적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코로나19 사태가 보건 분야를 넘어 글로벌 실물경기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돈 풀기’에 나섰지만, 처방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경제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지금 상황은 금융분야의 위기에서 비롯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양상이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금리인하, 양적완화, 유동성 확대를 위한 국제 공조 등 다양한 금융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반에 끼었던 거품이 빠지는 걸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엔 기업 부실이 금융 부문으로 퍼져 문제가 생겼다. 은행이 도산하고 소비심리와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돈 풀기’라는 명확한 해결책이 있었다. 2007년 미국 기준금리는 5%를 웃돌았는데 같은 해 9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75%로 내린 뒤 2008년 12월부터 0~0.25%까지 떨어뜨렸다. 그런데도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자 미국은 양적완화를 실시해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금융위기 수준의 처방에 효과는 미지수


하지만 이번 위기는 전염병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이 이동을 멈췄고 여기서 실물경기가 타격받기 시작했다. 보통 경제 위기엔 수요만 위축되는데 이번엔 중국,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공급까지 줄었다. 미국 기준금리도 지난해 10월 기준 1.50~1.75% 수준이었다. 연준은 올해 3월에만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며 ‘제로금리’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인하 폭은 1.50% 수준에 불과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같은 ‘제로금리’라고 해도 5%를 제로까지 낮췄던 것과, 2%도 안되던 것을 낮추는 것은 효과에서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금리 조정으로 시중 자금 흐름을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장단기 시장금리가 내려가고, 주식 등 자산가격이 오른다. 가계와 기업이 싼값에 돈을 빌려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는 게 일반적인 구조다. 경제위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도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기대가 무의미해졌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10년간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시중에는 막대한 부동자금이 풀렸다”며 “금리 인하로 경제를 활성화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우선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하면서 안전자산 가치가 위험자산과 함께 떨어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에선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가치가 하락한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금은 값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엔 금값이 주가와 함께 내리막을 걷고 있다. 금 가격(뉴욕상품거래소 선물 기준)은 3월 13일 온스(28.3g) 당 1587.7달러를 기록했다. 금값은 2018년 9월 이후 1년6개월 만에 40%가량 올랐는데, 지난 3월 9일 ‘블랙 먼데이’ 이후에만 5.5%(93달러) 떨어졌다. 주식은 물론 금마저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0%대 금리’ 처방 이후 기업과 가계는 오히려 정부의 추가 대응 여력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행은 0%대 기준금리를 금기시했다. 2009년 미국 연준이 제로금리를 도입했을 당시에도 한은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환경을 고려하면 한국의 실효하한 금리는 1%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준금리를 0%대로 끌어 내리는 처방이 나오자 한은의 실탄이 바닥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도 이달 초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춘다고 발표하면서 “금리인하가 바이러스 감염 비율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인하가 무너진 공급체인망을 수리할 수 없다”고도 했지만,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로금리’를 선언했다. 이런 특단의 조치에도 3월 16일 세계 증시는 또다시 ‘블랙 먼데이’를 경험했다. 미국 증시는 개장하자마자 폭락했다. 16일(현지 시각)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2997.10p(12.93%) 하락한 2만188.52를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2.32% 떨어진 6904.59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지수는 8년5개월 만에 1700선을 밑돌았다. 한은이 0%대 기준금리를 제시했지만,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17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2.42포인트(2.47%) 내린 1672.44를 기록했다.

주식시장이 곤두박질하며 위기감이 번지자 정부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까지 선포했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내리면 싼값에 사들여 갚는 투자 방식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일부 종목은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김동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금지가 전체적인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하긴 어렵지만, 일부 공매도가 과하게 몰려있는 종목은 급락 위험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이 모든 상장주식에 대해 공매도를 금지한 것은 지난 2008년 10월과 20011년 8월 두 차례뿐이었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주가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는 장점이 있다.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주식시장의 하락세를 막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2008년 공매도 금지 기간에 코스피지수는 3.4% 하락했고 2011년에는 12.1% 떨어졌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규모가 크고 건실한 기업은 투기세력이 힘을 쓰지 못한다”며 “주가가 내려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가치가 부풀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확실한 경기전망에 돈 빌리려는 회사 없다

기업이 돈을 빌리려 하지 않는 것도 큰 걱정거리다. 정부가 금리인하로 노리는 효과는 유동성 확대다. 금리 부담을 덜어주면서 기업이 돈을 빌려 투자와 소비를 늘리게 유도한다. 하지만 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안영진 연구원은 “지금은 금리를 내려주면 기업이 대출을 늘려 투자하던 시대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은 돈을 빌려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주가를 올리는 전략을 폈다”며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금리가 싸다고 돈을 빌려 설비에 투자하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어도 부채가 늘어나면 기업이 매달 부담해야 하는 이자 총량은 늘어난다. 경기가 활성화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업이 질 수밖에 없는데 무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경기가 위축되면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은 즉시 타격을 받는다. 은행이 대출 연장을 거부하는 등 자금을 회수하는 일이 많아서다. 박상인 교수는 “금리 인하보다는 은행이 적극적으로 돈을 풀 수 있도록 정부가 손실보전 정책을 펴는 등의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이 어려울 때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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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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