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백신, 마스크 그리고 한국경제 

 

#1. 필자가 어릴 때에는 팔 위쪽에 천연두 예방 접종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우두’ 즉 소의 천연두를 이용하여 사람에게 면역이 생기게 만드는 이 ‘종두법’은 18세기 말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라는 사람이 개발했다. 천연두는 18세기 만해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는 가공할 질병이었다.

제너는 소젖 짜는 여자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다. 브리스톨의 한 소젖 짜는 여자는 제너에게 “나는 절대로 추악한 곰보 얼굴을 갖지 않을 거예요. 이미 우두를 겪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제너는 우두에 감염된 소젖 짜는 여인의 손에 난 고름을 제임스 핍스라는 8살짜리 소년의 팔에 낸 상처에 발랐다. 이후 그 아이는 천연두에 노출시켜도 감염되지 않았다.

여러 시술 사례 이후 효과를 검증한 그는 1798년 ‘서부 잉글랜드에서 발견되는 한 질병인 바리올라에 바키나에(Variolae Vacccinae)의 원인과 영향에 관한 질문’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우두(cowpox)를 라틴어로 ‘바리올라에 바키나에’ 즉 ‘암소의 천연두’라고 표현했는데, 바키나에는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의 형용사형이다. 여기에서 오늘날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가 비롯됐다.

이 단어가 오늘 날처럼 전세계적으로 통용된 것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예방약을 개발하면서 이도 역시 백신이라 부른 데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제너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호환(虎患)만큼 무섭고 처용설화에도 나오는 ‘마마(媽媽)’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2. 요즘 주위의 거의 모든 이가 쓰고 다니는 마스크(mask)의 어원은 라틴어 ‘마스카(masca)’이다. ‘가면’이라는 뜻 외에 ‘유령’의 의미도 있다. 아마 고대부터 종교의식이나 연극에서 가면을 쓰는 일이 많았고 그 모습이 유령을 닮아서 이런 뜻도 있을 듯하다. 어원을 더 추적해 올라가면 ‘숨기다’라는 뜻도 보인다. 결국 마스크란 예로부터 얼굴 등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수술 시에 의료진이 쓰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 쓰는 것은 모두 ‘의료용 마스크’이다. 원래는 서양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수술하거나 치료 시에 자신의 침 속 세균에 환자가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도구였다. 의료진의 자기 방어보다는 환자를 지키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이다.

이 의료용 마스크를 일반인도 널리 쓰게 된 것은 일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세계를 덮쳤다. 전세계 수억 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어 1923년 리히터 7.9의 관동대지진이 덮쳤다. 강풍으로 불씨가 번지며 목재주택이 많았던 도쿄에서 대화재가 났고 연기와 분진 속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1934년 다시 전세계적에 독감이 유행하자 일본인들의 마스크 착용은 관습으로 정착되었고, 이 관습은 일본이 강점하거나 침략한 한국과 중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는 이번 코로나19 발현 초기부터 유독 동양 3국에서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3. 골프광인 친구가 예전에 한 농담이다. 라운딩하는 날 스코어가 잘 나오려면 여덟 귀신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풍신, 수신, 도신, 목신, 오목신, 사신, 초신, 공신이 그들이란다. 잘못 쳐도 바람이 공을 페어웨이로 몰아오고, 공이 물에 빠져도 제비뜨기로 건너가며, 도로나 나무에 맞고도 돌아오고, 벙커 속 모래에 맞고 튀어 나오며, 그린 위에서 퍼팅을 잘못해도 잔디 결이 홀(hole)로 향하게 하고, 안 들어 갈 듯 보였던 공도 언저리를 돌아 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여덟 귀신 중 나머지는 얼추 추정이 가능했지만 ‘오목신’은 도저히 모르겠어 뭐냐 물었더니 ‘오비(OB) 목’이란다. 그 친구는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공신(孔神)’ 즉 구멍(hole)이라고 했다. 스코어를 결정짓는 것은 마지막 단계여서 그렇단다. 그런데 자영업을 크게 했던 이 친구는 1~2년 전부터 사업이 너무 어려워져 이 ‘여덟 귀신’을 만난 게 오래 전이라고 한다.

단기간 소비 진작 효과, 그 후의 대책 세워야

코로나19라 불리는 신종 바이러스가 아직도 전세계를 강타 중이다. 이달 들어 확진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는 7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이 추세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미국엔 사망자가 1만명이 넘어가고, 영국 총리가 감염되는 등 서구의 상황이 심각하다. 초기에 안이하게 대응한 세계보건기구와 각국 당국의 탓 이외에도 마스크 착용관행이 없었던 국민들의 태도도 문제 확산의 원인으로 보인다. 뒤늦게 트럼프 대통령조차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초기에 큰 혼란을 겪고 마스크 수급도 문제가 생겼으나, 다행히 확진자 수가 1만명 언저리에서 억제되면서 큰 불길은 잡혀가는 모습이다. 방역당국의 적극적인 대처, 의료진의 헌신에다 국민들의 마스크 착용 습관이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요즘은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100명 이하이며 그것도 해외유입이 절반 이상을 넘어서는 숫자이다.

이 상황이 종결되려면 백신과 치료약 개발이 시급한데 지금까지 나오는 보도로는 중국의 백신개발이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말 개발된 백신은 현재 인체에 적용 중으로, 그 효과는 조만간 나온다고 하니 기대해 볼 뿐이다. 옛 속담 ‘병 주고 약 준다’와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말처럼 빠른 시일 내에 정말로 이 ‘큰 구멍’에서 ‘소’ 즉 백신이라도 들어 왔으면 한다.

이번 사태로 세계 경제도 멍이 들고 있다. 각국의 봉쇄 및 이동제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항공을 비롯한 서비스 산업들이 생존 위기로 몰리고 있다. ‘닥터 둠(파멸)’이라는 별명을 가진 뉴욕대의 루비니 교수 같은 이는 향후 경제를 ‘I’자 형으로 바닥없는 추락을 예견할 정도다. 이에 미국 등 주요국은 지금 GDP의 10~20%에 해당하는 부양책을 시행하려 하며, 그 대부분은 재정지출이다.

문제는 내년 이후이다. 10여년 전 리만 사태 때, 재정을 있는 대로 투입한 유럽국가들이 얼마 안 있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듯이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상당수 국가에서 재정위기가 뒤따라 닥칠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경쟁적으로 ‘재난 기본소득’을 주자고 한다. 이는 단기간 소비 진작 등의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내년 이후 큰 문제가 생길 확률이 작지 않다.

당국은 아직도 국가재정 상태가 건전하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나라 빚 산정 기준이 지난 1986년 기준을 따르는 등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크고, 요즘의 국제기준을 따르면 이미 한국의 재정상태가 위험지역에 들어섰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요즘 정부는 d1, d2 등의 새 국가부채 지표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OECD 홈페이지의 통계를 보면 아직도 거의 유일하게 한국만 국가부채 비율 국제 비교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 재정도 ‘백신과 마스크’ 등 재정의 예방조치로 ‘큰 구멍’이 생기는 상황은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결과에 무관하게 현 정부의 ‘소주성’, ‘문재인 케어’ 등의 정책기조는 ‘정말’ 심각하게 방향 전환을 고심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1530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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