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Home>이코노미스트>Special Report

[‘원격수업 IT기술’은 빛 좋은 개살구?] 세계 첫 시도, 빅데이터는 MS·구글이 차곡차곡 

 

e러닝 20년 준비한 교육부, 원격수업 시작하자 버벅거려

▎텅 빈 교실에서 온라인 강의를 연습하는 교사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교육계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 4월 9일 우리나라는 온라인 개학식을 열었다. 전국 학교가 4월에 개학한 것, 게다가 인터넷상 개학은 처음 겪는 일이다.

전 세계 교육계의 시선도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국내 초·중·고 학생 약 550만명이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수업’을 하는 세계 최초의 프로젝트에 주목한다. 현재도 일부 학원에서 인터넷 강의를 진행하고 EBS에서는 동영상 강의를 제공하지만, 모든 학생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정규 학사 일정을 진행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IT업계에서도 이 상황을 의미 있게 지켜보고 있다. 방대한 양의 교육 관련 데이터를 단기간에 축적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교육 빅데이터’는 현재 한국 교육 전반에 관한 상황을 이해하고 향후 우리 교육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다양한 에듀테크 산업과 접목해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설문조사 등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디지털 보물인 셈이다.

해외 클라우드에 쌓이는 국내 교육데이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공제회에서 열린 ‘1만 커뮤니티 온라인 임명식’에서 교원 대표들에게 화상으로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보물이 해외 기업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원격수업에서 주로 활용하는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클라우드 대부분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기업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우리 학생들의 교육 관련 데이터를 해외 기업에서 사 와야 할 수도 있다. 국내 기업은 원격수업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교육부는 이런 상황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원격수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대표적인 것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교사와 학생이 화상으로 얼굴을 보면서 수업한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원격 수업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콘텐트 활용 중심 수업’도 있다. 교사가 미리 녹화한 동영상 강의나 학습 콘텐트 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면 학생이 이를 시청하는 방식이다. EBS 동영상 수업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생들이 영상을 시청하고 댓글 등으로 원격토론까지 진행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이다. 교사가 올린 자료를 학생들이 각자 공부한 뒤 감상문이나 학습 내용 요약 등 과제를 제출하면 피드백을 받는 형식이다. 대개는 2~3가지 방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수업에 활용한다.

원격수업이 가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환경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4월 17일 ‘코로나19에 따른 주요 국가별 원격교육 현황’ 자료를 통해 “한국의 LTE 다운로드 속도는 북미·영국의 3배, 일본·홍콩의 3.5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교원들도 자발적 커뮤니티를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있고 학생들의 컴퓨팅 사고력도 세계 1위로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수 백만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화상, 동영상 강의를 진행하려면 빠른 인터넷서비스와 충분한 용량의 서버가 마련돼야 하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인프라를 갖춘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원격수업을 하고 있지만, 초등학생 40%가량이 접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에 학년별 수업을 편성해 학생들이 TV를 시청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재택학습을 진행하는 싱가포르도 제한적인 원격수업을 하는 수준이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학습자료와 인쇄물 등을 제공하고, 스스로 공부하게 한 뒤 과제를 내주는 방식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교사가 살피고 학습량을 점검한다. 인터넷 인프라가 한국만큼 탄탄하지 못한 탓에 실시간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의 원격수업이 성공하면 전 세계 학교의 새로운 교육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 수업이 가능하다는 게 입증되면 학생들이 같은 시간에 학교에 모여 수업을 듣는 획일화한 교육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양질의 수업자료를 공유할 수 있고, 교사나 학생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한국이 온라인 수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맡으면서 다양한 교육 모델을 파생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원격수업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세계 최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이다. 줌은 최대 100명과 함께 화면을 공유하고 무료로 HD 회의를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PC,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일대일 또는 일대다 미팅을 진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사 한 명과 20여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온라인 수업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사용 중단을 권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 사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업 솔루션 ‘팀즈’가 치고 나왔다. 구글의 화상회의 서비스 ‘미트’도 하루 200만명 이상 이용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많은 학교에서 이 플랫폼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쏠림 현상’ 잡아서 ‘지속 현상’ 노려


▎전국 초등학교 1~3학년이 온라인으로 개학을 하는 4월 20일 서울 용산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선생님이 학생들과 쌍방향 온라인 개학식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문제는 인기 있는 플랫폼 대부분을 해외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교육 시장의 빅데이터가 고스란히 해외 기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국내 최대 원격수업 사이트 ‘EBS온라인클래스’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애저(Azure)를 사용하고 있다. EBS온라인클래스는 초등 1~2학년 학생을 제외한 전국 초·중·고생의 약 40%가 원격수업 때 이용하는 최대 학습사이트다. 온라인클래스 하루 총 접속자는 초등 3학년부터 고등 3학년까지 450만여명 중 185만여명(4월 21일 기준)에 달한다. 이 밖에 줌, 팀즈 등 해외 플랫폼이 원격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플랫폼 사용량을 고려하면 해외 제품 점유율이 7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빅 데이터를 이용하면 수업 방식이나 커리큘럼과 관련한 단순 정보부터 학생들의 교육 패턴과 학습 수행 과정, 교육의 이해도 등 고급 정보까지 뽑아낼 수도 있다. 해외 기업들도 원격수업 시장 선점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구글은 기업용 서비스 제품인 구글 지스윗(G Suite) 고객에게 7월 1일까지 한시적으로 원격회의 서비스인 행아웃 그룹통화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월 10일부터 기업용 협업 툴인 MS 팀즈를 6개월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물론 학교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앱으로 무료 평가판에서도 제한 없이 화상 회의와 통화가 가능하다.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AI융합비즈니스)는 “해외 기업들은 원격수업 초기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초기에 많은 회원을 확보할수록 더 큰 경쟁력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플랫폼을 쓰려는 ‘쏠림 현상’, 한 번 사용한 플랫폼을 계속 사용하려는 ‘지속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처음 사용법을 배웠던 구글 시스템을 계속 사용하게 되고, 동료 교사에게도 이 플랫폼을 소개했다”며 “특별한 문제나 오류가 생기지 않는 한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빅 데이터에 매달리는 글로벌 기업


▎400만명이 온라인 수업을 받는 2차 온라인 개학을 이틀 앞둔 4월 14일에도 주요 학습 플랫폼이 접속 장애를 겪었다.
반면 국내 기업 중 눈에 띄는 곳은 드물다. 네이버의 NBP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원격수업 사이트 e학습터가 있지만,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며 이용자 수도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밴드와 카카오톡이 원격수업 플랫폼으로 쓰일 수 있도록 ‘라이브’ 기능 등을 추가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출석 체크나 알림장 발송, 과제 제출 기능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3월 유네스코는 ‘원격 교육에 가장 적합한 앱’을 선정해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국내 기업이나 플랫폼은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60곳의 기업·플랫폼 명단에는 줌·스카이프·팀즈·딩톡 등 미국·중국 앱이 대부분이었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는 “정부와 기업 모두 빅데이터 융합을 통한 에듀테크 산업에 대해 미리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빅데이터에 매달리는 이유는 정보가 곧 비즈니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모으는 가장 효과적인 플랫폼 중 하나가 클라우드다. 클라우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 등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래서 데이터가 쌓이는 금광에 비유되기도 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글로벌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 규모가 2018년 기준 1824억 달러에서 2022년에는 3312억 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테스트베드가 될 한국의 온라인 교육시장을 장악하고 의미 있는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다면 글로벌 교육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치의 부가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쿠팡 등은 회사가 보유한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다.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 아마존이라고 평가했다. 아마존의 시장 점유율은 32.3%에 달한다. MS는 16.5%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IT기업들이 빅 데이터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구글은 빅데이터 분석업체 ‘루커(Looker)를 인수하기 위해 26억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약 3조원에 달한다. 루커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업이 경영 전략을 짜거나 시장예측 등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국내에서도 빅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공감대는 있었지만, 이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더디다는 평가다. 지난해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3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비식별화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쟁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한국은 빅데이터 활용·분석 수준이 세계 56위 수준이다. 국내 전체 사업체의 빅데이터 이용률은 7.5%, 글로벌 100대 빅데이터 기술혁신 기업 중에 이름을 올린 곳은 한 곳도 없다.

원격수업과 관련해 정부와 교육부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표면적으로는 기술 문제가 불거졌다. 원격수업을 받는 학생 수십만명이 한꺼번에 일부 서버에 몰리면서 학습시스템 접속장애가 계속 발생했다. 로그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미리 녹화해 둔 수업 영상을 다운받아 재생할 때 버벅거리는 현상도 발견됐다. 접속이 끊기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트 부족이었다. 전격적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한 탓에 인터넷 강의용으로 수업 콘텐트를 미리 만들지 못한 일부 학교와 교사들은 곤란을 겪었다.

20년 준비한 e러닝, 단방향 서비스 한계 노출

이 과정에서 20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온라인 수업의 실체가 드러났다. 1996년 교육부는 에듀넷을 만들어 국가멀티미디어 교육지원센터로 만드는 목표를 세웠다. 기초교육에서 고등교육을 원격으로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에듀넷은 정규수업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2005년엔 정부가 ‘u러닝(Ubiquitous Learning)’을 도입했다. e-러닝에서 한발 나아가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곳에서 PDA, 태블릿 PC 등을 활용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맞춤형 학습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온라인 학습체계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통학시간 등 언제든지 짬 날 때마다 개인 휴대단말기 등으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18개 초중고교를 시범학교로 지정했다. 휴대 단말기를 나눠주고 사용법도 홍보했다.

그러나 u러닝은 EBS에 올라온 영상물을 학생이 시청하는 단방향 자기주도학습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전화 통화에서 “교육 콘텐트는 이미 EBS를 통해 충분히 쌓여있고, e러닝을 통해 준비한 노하우로 원격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다만 데이터 확보 문제는 아직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국 학교와 교사들이 원격수업에 어떤 플랫폼을 사용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원격 수업과 관련해 모인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빅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에듀테크 시대를 맞아 이제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원격수업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향후 원격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며 “당분간은 일선 학교에서도 원격수업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32호 (2020.05.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