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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되고픈 한국GM] 수입 판매 늘리고, 국내 생산은 줄여 

 

계약구조 바뀌어 ‘기술 권리’도 사라져… 생산 감축 가능성 상존

▎한국GM이 수입해 판매하는 콜로라도(왼쪽)와 트래버스 / 사진:한국GM
2002년 헐값에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대우자동차의 사명을 GM대우, 한국GM으로 변경하며 한국의 ‘국산차’ 시장을 공략했다. 수입차 시장이 대중화하지 못한 당시 한국 자동차시장에서 GM의 전략은 먹혀들었다. 국내 생산을 통해 한국 시장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차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났던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로 수출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15년여가 지나고 한국GM은 딜레마에 빠졌다. 치열해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생산’은 더 이상 큰 매력이 되지 않는다. 2018년 군산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한국시장에서 요란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친 GM은 이제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가 되고 싶어 한다.

수입차협회 가입한 한국GM

지난해 11월부터 수입차협회의 월간판매 집계에 쉐보레 브랜드가 추가됐다. 한국GM이 협회에 가입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GM은 “국내 시장에 수입, 판매하는 차량이 늘어난데 따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2015년 임팔라를 시작으로 수입 판매를 시작한 한국GM이 본격적으로 수입차업계에 가세한 것이다. 한국GM은 임팔라 이후 전기차 볼트EV, 이쿼녹스 등을 수입 판매하며 점차 수입판매 모델을 늘려왔고 지난해에는 트래버스와 콜로라도를 연이어 도입했다.

반면 국내 생산 모델은 대폭 줄었다. 올란도와 크루즈, 캡티바 등의 생산을 잇달아 중단해 국내 생산 모델은 4개에 그친다. 최근 출시한 트레일 블레이저가 더해진 결과다. 한국GM의 이런 전략은 국내 생산 대수의 축소와 수입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자동차협회(KAMA)에 따르면 한국GM의 지난해 국내 생산은 40만9830대로 전년(44만4816대) 대비 8% 줄었다. 이에 반해 수입은 2018년 8373대에서 지난해 9129대로 9% 늘었다.

한국GM의 ‘수입차화’는 생산기능 축소에 대한 우려를 동반한다. 다행히 군산공장 철수 이후 산업은행과 GM의 합의로 당장의 공장 철수 가능성은 없어졌다. 산업은행은 한국GM에 대규모 자금을 수혈하며 GM이 한국 시장에서 최소 10년간 생산시설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생산기능 축소 가능성은 상존한다. GM 본사는 한국GM의 생산량을 37만대 수준으로 낮출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GM의 구조조정은 GM의 글로벌 생산체계 개편에 따른 것”이라며 “최근 태국과 호주에서의 사업 철수·축소 이후 구조조정이 마무리 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향후 사업계획에 따라 추가적인 생산능력 감축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향후 한국GM의 비즈니스 방향에 대한 실마리는 지난해 이뤄진 GM 계열사의 구조조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지난해 GM은 우리나라에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이하 GMAP)를 새로 설립했다. 캐딜락 수입판매법인 지엠코리아가 이름을 바꾸고 사업목적에 ‘무형재산권의 임대’를 추가한 법인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법인에 대해 “GM의 선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GM의 본부 역할을 하는 법인이 한국에 생기면 추가적인 투자나 고용이 발생할 것을 기대하는 의미에서다.

GMAP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지엠코리아로 존재하던 전년 대비 재무제표상의 덩치는 커졌다. 매출액이 4배 이상 늘어난 4547억원을 기록했고, 판매비 및 관리비상 급여는 10배가 넘는 106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런 지표는 착시다. 급여 지급의 대부분(98억원)은 업무지원 관련 계약으로 GM해외 법인에 지급된 금액이다. 이 금액을 빼면 실제 지급한 급여는 8억원 수준으로 전년(9억5200만원)보다 줄었다. 매출이 4배 늘었음에도 법인세 차감전 당기순이익은 적자전환해 법인세도 내지 않는다. 한국경제에 ‘선물’은 확실히 아닌 셈이다.

그럼 GM은 왜 이런 법인을 만들었을까. 업계에선 GMAP의 존재 이유가 ‘한국GM’과 법인분리해 나온 ‘GMTCK(GM테크니컬센터코리아)’의 관계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기존 한국GM은 GM과 기술계약을 맺고 있었다. 한국GM에서 연구개발이 진행됐기 때문에 해당 기술에 대한 소유권도 한국GM이 주장할 수 있었다.

GM과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법인분리 시점에 맞춰 이 계약을 개정했는데, 비용분담협정(CSA)의 세부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새로운 계약은 GMAP가 한국GM으로부터 로열티를 받아 GMTCK에 지급하는 구조로 짜여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GM에서 3074억원의 로열티를 받았고 4777억원을 엔지니어링서비스협정(ESA) 명목으로 GMTCK에 지급했다. 해외법인인 GM글로벌테크놀로지오퍼레이션스(이하 GM GTO)가 비용분담협정에 의해 1316억원을 보탰다.

결국 한국GM은 GMTCK에 별도의 기술사용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GM은 GMTCK의 생계를 사실상 책임지면서도 GMTCK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GMTCK에서 개발한 차를 한국GM이 아닌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 된 것이다.

국내 생산 감소한 르노삼성, ‘삼성’ 뗄까?

르노삼성도 한국GM처럼 ‘수입차화’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르노삼성은 한국GM보다 먼저 생산·판매 분리구조를 확립하고 한국GM만큼이나 많은 수입·판매를 전개했다. 2013년 국내 출시한 QM3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르노삼성 역시 국내 생산이 줄어드는 반면 수입 판매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국내 공장 생산은 16만4974대로 전년(21만5680대) 대비 줄어든 반면, 수입 판매는 1만1782대에서 1만2165대로 늘었다.

자동차업계는 ‘르노삼성’이라는 이름에 주목하고 있다. 르노는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삼성카드와 10년 단위로 갱신 가능한 상표권 사용 계약을 맺고 르노삼성이라는 이름을 써 왔는데, 이 계약이 오는 8월 만료된다. 르노삼성은 현재 재계약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업계에선 연장 가능성을 낮게 본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은 클리오와 마스터를 출시할 때 르노삼성이 아니라 ‘르노’ 브랜드를 쓰기 시작했다”며 “더 이상 국산차라는 지위가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르노삼성이란 이름을 고수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34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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