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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美, 통신품위법 230조 두고 첨예한 갈등… 인터넷의 근간이 흔들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트위터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간혹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이 삭제되거나 계정이 제재를 받는 경우가 있다. 보통 ‘페북 영창 간다’거나, 유튜브 영상에 수익 창출 불가를 뜻하는 ‘노딱(노란 딱지)이 붙었다’고 표현한다. 소셜 미디어의 이런 조치는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는 것일까, 아니면 발언을 검열하는 것일까? 둘 중 어느 편이 더 위험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트위터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우편 투표에 부정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트럼프의 트윗에 트위터는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표시를 붙였다. 트럼프는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트위터는 경찰의 흑인 용의자 살해로 발생한 소요 사태에 강경 진압을 시사한 트럼프의 트윗에 대해 ‘폭력을 조장하는 게시물을 제한한다’는 정책을 앞세워 가림 처리했다. 한쪽에선 폭력을 조장하고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게시물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소셜 미디어가 자의적으로 보수적 의견에 재갈을 물린다는 비난이 나온다.

소셜 미디어 운영원칙은 누가, 어떻게 정하나

이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는 신문, 방송을 대신해 시민들이 의견을 표현하는 공론장 역할을 한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찾고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접점이 되었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인터넷의 특성이 민주주의의 미래에 긍정적이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도리어 갈등과 분열, 거짓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크다.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이 큰 만큼, 어떤 규칙과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는지 고민도 깊어진다.

최근까지, 적어도 미국에서는, 인터넷의 운영 원칙에 대한 대략의 합의가 있었다. 그 합의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미국 통신품위법 230조다. 온라인에서 미성년자에게 음란물을 제공하는 것 등을 규제하는 법인데, 이 법 230조가 인터넷 기업의 면책을 다룬다.

이에 따르면 인터넷 기업은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선의’로 음란, 폭력 등 부적절한 콘텐트를 삭제했다면 역시 그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에 누가 명예훼손 글을 올렸다면 페이스북이 아니라 그 글을 올린 사람이 처벌받는다. 음란 영상이 올라오면 유튜브가 아니라 영상을 올린 사람이 책임진다. 인터넷 기업은 자사 정책에 따라 문제가 되는 콘텐트를 삭제하는 등 관리할 수 있다.

1996년 제정된 이 조항 덕분에 인터넷 기업은 소송 위험이나 과중한 사이트 관리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의회가 면책을 허용한 것은 자유롭고 다양하게 의사 표현을 하며 지식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인터넷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터넷을 만든 근간으로 평가받는 이 조항은 지금 도전 받고 있다. 5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 규제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핵심은 230조의 면책 혜택을 박탈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것이다.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는 ‘중립적 플랫폼’이라는 전제 아래 면책을 받은 것인데, 실제 행태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자의적 기준으로 보수파 사용자의 발언을 제약한다면 인터넷 기업이 실질적으로 편집 행위를 하는 것이니 면책에서 제외된다는 논리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리버럴 성향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보수 성향 사용자의 계정을 정지하는 등 활동을 억압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행정명령의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반대 소송이 줄을 이어 시간을 끌 것이고, 인터넷 플랫폼은 민간 기업이라 콘텐트 관리에 폭넓은 자유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230조에 대한 불만은 여야를 가리지 않아 어떤 형태로든 수정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230조 폐지를 주장한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기 아들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을 거론한 페이스북 정치광고가 문제였다. 페이스북은 정치광고에 팩트 체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바이든은 “인터넷 기업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거짓을 퍼트린다”며 “230조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할까

민주당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짜뉴스나 폭력 조장 포스트의 범람을 막자는 입장이고, 공화당은 플랫폼에 의한 발언 차단이나 삭제를 막자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논쟁적 내용과 방식으로 유권자와 직접 소통하고, 민주당은 트럼프의 주장을 가짜뉴스라 공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 당의 접근법이 다른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트위터는 적극적으로 트럼프 발언에 대한 조치에 나섰다. 반면 페이스북은 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진실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지 않겠다”며 한발 떨어져 있다. 트위터는 흑인 시위와 관련, 폭력을 조장하는 트윗에 제약을 걸고 있다. 페이스북은 공인의 발언을 시민들이 직접 볼 필요가 있고, 문제 있는 콘텐트라면 아예 삭제를 하지 트위터처럼 임시로 가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회적으로 해롭다고 여겨지는 발언을 제약할 것인가, 여러 의견의 표현과 논쟁을 위해 발언을 되도록 허용할 것인가 논란인 셈이다. 해로운 발언과 해로운 발언을 막는 것, 어느 쪽이 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까? 무엇이 해로운지 누가 결정하는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민간 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 전 국민 플랫폼이기도 한데 이들의 결정으로 시민이 플랫폼에서 배제되는 것은 합당할까? 이 사태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인터넷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역사가 길다. 우리나라는 230조 같은 명시적 면책 규정은 없다. 온라인 게시물이 명예를 훼손한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포털은 일단 30일 동안 해당 게시물을 안 보이게 블라인드 처리하는 임시조치 제도가 있다. 과거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논란부터 최근 드루킹 일당의 조직적 네이버 뉴스 댓글 조작,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친정부 네티즌의 ‘실급검 응원’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도 끊이지 않고, 정치인들은 진영 논리로 나뉘어 규제와 자율을 주장한다.

사람들의 일상이 대부분 온라인을 매개로 이뤄지고,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1위 사업자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큰 상황을 고려하면 온라인 플랫폼의 운영 방식은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지식인들이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 계정을 정지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위챗은 채팅뿐 아니라 결제, 택시 호출, 음식 주문, 본인 인증 등 중국의 일상을 지배하다시피 하므로 계정 정지는 곧 사회적 매장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건너뛴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자유를 잃거나 생각보다 더 위험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38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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