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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 넘은 유니콘의 또다른 위기] ‘혁신 기업’은 있으나 ‘기업 혁신’은 없다 

 

갑질·사내경쟁·노동착취 등 대기업 폐해 답습… 이미지 추락에 유니콘 날개 꺾일라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4일 ‘차세대 글로벌 청년 스타트업 간담회에 참석해 “혁신 아이디어가 사업화돼 세계무대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이 되겠다”고 말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K-유니콘 프로젝트를 강력히 추진하겠다.”

지난 5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차세대 글로벌 청년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청년 사업가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정부가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에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2주년 기념 오픈 포럼 축사에서 “정부는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내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니콘’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스타트업으로 아직 상장하지 않은 기업을 말한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업가의 꿈이자 목표다. 신생 기업을 1조원 가치를 웃도는 업체로 키우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유니콘 기업이 늘면 투자가 활발해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도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니콘’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계약직·협력업체 울리는 ‘갑질’ 문제 불거져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은 436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 공유오피스업체 위워크처럼 이름이 알려지기 무섭게 급격히 성장해 기업가치 100억 달러(120조원) 이상 ‘데카콘’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11개의 유니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 5월 쿠팡이 1호 유니콘으로 자리매김한 이후 비바리퍼블리카(토스)·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이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바이오시밀러 제조업체 에이프로젠과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 등 5개 유니콘이 탄생했다.

그런데 이런 꿈의 기업 가운데 일부에서 계약직, 협력업체 등 노동 약자로 불리는 이들을 쥐어짜는 ‘갑질’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5월, 온라인 주문배송 플랫폼업체 쿠팡은 자사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직원들에게 방역 후 거의 곧바로 일을 시키는 등 안일하게 대처해 논란을 겪었다. 4월에는 음식 배달 플랫폼업체 배달의민족이 사실상 수수료를 인상하는 정책을 폈다가 비판이 커지자 계획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요기요는 과거 계약을 맺은 음식점에 ‘최저가 보장’을 강요한 사실이 밝혀지며 6월 2일 공정위로부터 4억6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금융 플랫폼업체 토스는 극심한 내부 경쟁 풍토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퇴사자가 줄을 잇는 문제를 겪기도 했다.

마이너스 수익, ‘미투 기업’ 출현으로 경쟁 치열


이같은 기업 이미지 훼손은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대체재가 많아 소비자들이 얼마든지 서비스를 갈아탈 수 있고, 결국 기업의 성장은 멈추기 때문이다. 뚜렷한 수익 없이도 성장 가능성에 기대 대규모 투자를 받았던 유니콘이 성장을 멈추면 자금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데스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을 건넌 유니콘이 이미지 추락이라는 또 다른 위기와 마주한 셈이다.

산업계에서는 보통 창업 후 3~7년 정도 되는 기간을 ‘데스밸리’라고 부른다. 이때 많은 스타트업이 도산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창업 이후 1년 기업생존율’은 62.7%, 2년 생존율은 49.5%, 3년 생존율은 39.1%다. 5년 생존율은 27.5%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 기간에 스타트업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문제다. 초기 투자금이 소진되어가지만, 수익 모델을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나 민간의 투자에 목을 매기도 한다. 가방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가 문을 닫은 경험이 있는 A씨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일정 수준의 판매율을 확보할 때까지 버티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금이 부족해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한 기술력을 갖추지 않은 회사는 뒤따라오는 경쟁 기업에 발목을 잡히기도 한다. 먼저 사업을 시작한 기업의 전략과 사업방식을 모방하는 ‘미투(Me too)’ 기업은 부작용을 줄이고 경영 전략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치고 나온다.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해 큰 어려움 없이 성공 가도에 올라설 수 있다. 시장에서 검증받은 사업이기 때문에 투자유치를 받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선도기업이 불모지 개척과 시행착오 개선을 위해 지불했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그만큼 몸이 가벼운 셈이다. 오히려 성장이 정체된 선두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지분 확보 등이 수월한 미투 기업으로 자금이 쏠리기도 한다.

국내 스타트업계에서도 선두기업과 뒤따라 나온 유사 기업의 경쟁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숙박 예약 플랫폼으로는 ‘여기어때’와 ‘야놀자’가 경쟁했다. 음식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사업 초기 수수료 0원 경쟁을 벌이며 대립하기도 했다. 부동산 플랫폼으로는 ‘직방’과 ‘다방’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사업들 모두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분야여서 진입장벽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정 규모의 자본만 뒷받침되면 뛰어들 수 있어 선도 기업이 개척한 시장에 경쟁자가 쉽게 따라붙기도 한다. 온라인 주문 배송 플랫폼에서는 쿠팡에 이어 등장한 마켓컬리, SSG, 롯데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면 사업 규모도 커지는 만큼 경쟁 상대도 대기업 수준으로 체급이 달라진다. 싸움도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경영대학 교수는 “일부 유니콘은 심화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거나,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협력업체를 압박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과거 대기업이 저질렀던 잘못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갑질 문제가 유니콘이 쓰러질 정도의 핵심적인 문제로 보기는 어렵지만, 반복돼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면 기업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익 늘리려 인력 쥐어짜면 장기적으론 ‘악수’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헤쳐 나온다 해도 꽃길만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3~7년이란 기간은 통계상 그 시기에 많은 스타트업이 위기를 겪는다는 뜻일 뿐”이라며 “유니콘도 데스밸리에서 벗어났다고 자신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엑시트(Exit·출구전략)’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한 스타트업 대부분은 기업공개(IPO)를 통한 주식시장 상장이나 매각의 길을 걷는다. 그 전에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소비자가 등을 돌리면 언제든 기업가치가 깎일 수 있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성장 가능성과 투자에 기대 몸집을 키운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위기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뚜렷한 이익은 내지 못하고 있다. 쿠팡은 2019년 연결 기준 매출액 7조1530억원을 올렸지만, 영업손실이 7205억원에 달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5654억원의 매출과 36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최근에는 ‘갑질’ 문제로 이미지가 나빠지는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은 ‘쿠팡 이용 거부’, ‘배신의민족 사절’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예방 등에 대한 노동자 홀대로 쿠팡 이용자 일부가 경쟁업체로 갈아탔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SSG닷컴은 5월 29일 새벽배송 주문 건수와 매출이 전날(28일)보다 각각 15%,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37%, 주문건수는 14%나 늘었다는 것이다. SSG닷컴 관계자는 “쿠팡 사고와 관련한 반사이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수치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갑질 문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결과를 마음 졸이며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9년 말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가 4조7500억원에 배달의민족을 인수했는데, 음식배달시장을 독점할 우려 때문에 인수합병에 대한 심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에 갑질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심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2019년 12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두 회사의 합병이) 혁신을 촉진하는 측면과 독과점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측면을 균형 있게 따져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수수료가 낮은 공공배달앱을 만들어 대응하자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계 관계자는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스타트업이 덩치를 키우자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다만 직원들을 쥐어짜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기업의 가치와 장기적인 성장가능성을 깎아먹는 악수를 둔 셈”이라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39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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