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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수학교육 ‘깨봉’ 만든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 “계산기 만드는 수학교육 한계, 본질 꿰뚫는 사고력 키워야” 

 

개념이해 학습법으로 유튜브서 새바람… 30대에 부행장, 대기업 임원 박차고 창업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는 “AI 시대에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수학을 계산하는 학문이 아닌, 판단 훈련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신인섭 기자
중학교 진학 이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대거 등장한다. 서로 마주 보고 다른 속도로 뛰기 시작한 철수와 영희가 몇 초 후에 스쳐 지나갈지, 결석한 영수·미영이의 키가 얼마인지를 묻는 응용문제들은 수포자들을 좌절하게 한다.

그런데도 수학능력시험만을 위해 고착된 수학교육의 시스템과 콘텐트는 쉽게 바뀌지도, 바꿀 수도 없는 현실이다. ‘물수능’ 시대에도 유독 수리영역만 어렵게 출제되고 있어 현재의 수학교육 풍토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현재의 수학교육이 한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저해한다는 학자들의 지적도 깊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튜브에 스타 수학 강사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 수학교육 서비스 ‘깨봉’을 운영하는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다. 깨봉은 미분·확률·함수 등 난해한 개념을 이론이 아닌 도형과 게임으로 쉽게 풀어주는 교육 서비스다.

조 대표는 이런 교육 방식을 유튜브에 풀어 많게는 회차 당 20만~3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교육을 받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최근 수능에 출제된 조건부 확률 문제를 풀어 주변을 놀래 켜기도 했다.

조 대표는 국내 AI 1세대 연구자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미국 오라클에서 AI 개발자로 활동했고,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 30대에 국민은행·하나은행 부행장에 올라 차세대 AI 전산시스템 개발을 주도했다. 2015년 삼성화재 부사장을 박차고 평소 뜻 있던 교육 분야 창업에 나섰다.

“AI는 수학 그 자체, 계산보단 작동원리 깨우쳐야”

5월 18일 서울 삼성동 이쿠얼키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나 수학교육의 중요성과 그의 교육 철학, 앞으로 사업 전개 방향 등을 물었다. 조 대표는 “AI 등 신기술은 모두 수학으로 구현되지만, 한국은 이 분야의 창의성 있는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스스로 깨우치는 수학 학습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인재를 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먼저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래 컴퓨터 사이언스 기술은 모두 수학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수학을 암기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AI와 뉴런·신경세포 분석과 설계, 여러 함수(펑션)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 언어, 아키텍처(시스템설계) 구축, 모델링 등을 새로 설계할 줄 알아야 컴퓨터 언어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AI는 수학 그 자체다. 뉴런의 각 연결 구조 모델링에 새로운 펑션을 만들기 위해선 수학의 작동원리와 개념을 깨우쳐야 한다”며 “새로운 뉴럴네트워크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모델링과 펑션 능력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펑션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머신러닝에서는 학습된 정보가 어떤 계통을 타고 움직여야 하며, 이 정보에서 추출한 인사이트를 기능으로 구현하기 위한 펑션의 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AI 프로그래밍 아키텍쳐와 펑션은 대부분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이 세팅한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 프로그래밍 의존도가 커지며 자체 AI 역량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AI에 기본이 되는 미분·편미분 등의 수학 개념도 교육현장에선 이해보다는 암기 위주로 가르치고 있다. 이를 두고 조 대표는 “어린 학생들에게 걷기를 가르쳐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뛰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습 방법을 바꾸고 훈련하면 수학을 대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이 바뀐다고도 강조했다. 조 대표는 “학생의 교육·훈련 방식에 따라 수학 문제를 접할 때 계산하는 뇌와 문제를 해석하는 뇌 중 작동하는 부문이 달라진다”며 “계산은 뇌의 단편적 부문만 쓰지만, 판단은 큰 영역을 사용하며 매우 많은 뉴런이 참여하게 된다. 단순 계산은 계산기 등 대체할 수 있는 게 많다. 궁극적으로는 해석하는 뇌를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8이 13이라는 결과를 느리게 답하더라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 줄 아는 것과 문제를 이해하고 다르게 접근하는 것은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수능 교육의 폐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로선 수능이란 관문을 뚫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서울대 문과생들의 경우 한 학기가 지나면 대부분 삼각함수를 못 푼다”며 “정부의 교육 아젠다가 바뀌어야 하며, 대학의 학생 선발에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했다.

문제 풀이에 극단적으로 쏠린 수학 사교육 시장에 대해서는 “교육 상품은 형태가 없기 때문에 광고나 브랜드, 학생들 성적만이 품질을 따지는 요소”라며 “공급자의 기득권이 공고하기 때문에, 정부의 아젠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또 수학에 재능이 없더라도 후천적으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아이큐 분포도에서 머리가 아주 좋거나 나쁜 사람이 양쪽 끝 소수를 차지하는데, 현재 대부분 세계적 석학들은 가장 비중이 큰 지점에 분포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 학생들이 지식을 쌓기보다 문제를 어떻게 간단히 풀지 사고하는 법을 훈련하는 게 필요하다. 메타지식(지식이나 체계의 운영 및 추론 방법에 대한 지식)이 되고 나면 그 뒤부터는 쉬워진다”며 “2차 방정식 정도는 머릿속에서 형상화해 즉각적으로 답이 나올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부친으로부터 공룡 등 물체의 크기가 얼마일지 실제 생활에 반영해 설명하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파인만도 학교의 수학 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미지수를 구할 때 어떤 공식을 사용한다는 규칙은 애초에 수학에는 없으며, 학교에서 고안한 방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존 교육 체계가 세상의 변화를 담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국 미네르바스쿨 같은 혁신 대학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교육으로 수학지능 계발 가능, 이해 폭 넓힐 학습법”

조 대표는 “가르치는 행위는 기승전결을 갖춘 과학과는 다르다. 일종의 예술”이라며 “학생들이 폐부까지 이해하도록 호기심을 유발해야 하며, 시작에서 도착까지 한 번에 훑어야 하고, 각 점을 격파해 정교화하는 과정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깨봉에서는 영상과 게임 등을 활용해 숫자 0이 ‘없다는 게 있다는 수’라는 개념 등 수리적 이해와 판단을 돕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깨봉은 현재 상명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수학 공교육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올 하반기에는 미국·중국·싱가포르 등지로 진출한다. 조 대표는 현재 싱가포르 DBS은행 이사회 이사인 등 폭넓은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대형 벤처캐피탈(VC)들의 러브콜을 받아 현재 시리즈 A 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기업 고위직을 놓고 늦은 나이에 창업에 나섰지만 조 대표는 “두려움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50세를 넘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뒤늦게 창업을 했다.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가족들은 응원해줬다”며 “교육은 미래를 가장 크게 바꿀 수 있는 일이며,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교육은 스스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39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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