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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물가 상승의 원인은 ‘기후위기’] 농산물 가격 변동, 자주 반복되고 더 심해진다 

 

지난 장마로 2만7900ha 농경지 침수·유실… “이상기후 걷잡을 수 없는 추세” 지적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청미천 일대 농경지가 지난 8월 2일 장마로 물에 잠겼다.
양파 농가는 올해 추대(숫양파)로 골머리를 앓았다. 꽃을 피우는데 양분을 쏟아 상품 가치 없는 추대가 상품이 될 주변 양파(암양파)의 생장을 막았다. 8월말 9월초 파종해 키운 모종을 10월 중순 지나 아주(완전) 심었는데, 추대가 돼버렸다. 겨울이 따뜻해 웃자랐다. 양파는 겨울 동안 잎 6개 이상, 밑동 직경 1㎝ 이상으로 빨리 크면 추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남농업기술연구원은 경남의 경우 전체의 30%에서 추대로 변할 꽃눈이 분화했다고 집계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추대로 작황이 좋지 않자 양파 가격은 현재 1년 전의 두 배인 2만원이 됐다”고 말했다.

추대로 앓았던 농가의 골머리는 8월 벼로 옮겨갔다. 추대를 만들었던 따뜻한 겨울이 여름엔 장마로 돌아왔다. 지난해 겨울 한국의 겨울 추위가 줄어든 데는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이 작용했다. 그리고 따뜻해진 시베리아는 여름 장마 전선의 정체에 일조했다. 장마는 54일간 이어졌다. 비가 벼를 삼켰다. 전국에 있는 벼 재배지 2만2304헥타르(ha)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전국 벼 재배면적(73ha)의 3%다. 경남 산청에서 양파와 벼농사를 짓는 서형자(66)씨는 “30년 넘게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처럼 나쁜 날의 연속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반복되는 생산 불안에 따른 농산물 가격 인상


춥지 않은 겨울, 50일 넘는 장마로 농산물 생산이 위기에 처했다. 특히 지난 장마로 국내 농산물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오이와 파프리카 농가가 많은 강원도 철원은 하우스가 찢기고 날아갔다. 700㎜의 ‘물폭탄’으로 한탄강 물이 범람해 농가 일대를 덮치면서다. 지난 8월 1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낸 ‘호우 피해현황’에 따르면 2만7932ha 규모의 농경지가 침수·유실 또는 매몰됐다. 벼 재배지가 2만2304ha로 가장 피해가 컸고 밭작물(1802ha), 채소류(1638ha), 인삼·특용작물(698ha) 등 4138ha도 피해를 봤다. 축구장 약 3만8300개 규모다.

당장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농산물종합유통정보시스템(KAMIS)에 따르면 양파 20㎏ 도매가는 8월 25일 기준 2만500원에 형성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배로 올랐다. 평년 가격(1만9600원)과 비교해도 약 5% 가격이 뛰었다. 벼 재배지가 비 피해를 겪으면서 쌀 가격도 오름세다. 8월 25일 쌀 20㎏당 도매가격은 4만9780원으로 1년 전 4만8956원보다 올랐다. 오이(10㎏)와 파프리카(5㎏) 도매가는 각각 107%, 55% 상승했다. 문제는 생산 불안에 따른 가격 인상이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라는 데 있다. 농산물 가격 인상 뒤에 지구온난화라는 기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기온은 1912년부터 2017년까지 105년 동안 약 1.8도 상승했고, 사과로 유명했던 대구는 더 이상 사과를 재배하지 못하는 도시가 됐다. 또 온도 상승에 따른 여름철 강수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비에 약한 상추나 배추 등 잎채소는 매년 ‘금(金)상추’ ‘금배추’로 불리고 있다. 기상청은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서 기온 상승으로 여름철 강수량이 10년마다 11.6㎜씩 늘었다고 분석했다.

가격 변동은 최근 들어 더 빨라지고 있다. 예컨대 쌀 가격(20㎏ 도매)은 2015년(3만9719원), 2016년(3만4930원), 2017년(3만4930원)으로 떨어지다 2018년부터 급등했다. 2018년 4만5412원으로 전년대비 30% 상승을 기록한 쌀값은 2019년 4만8630원으로 또 뛰었고 올해 4만7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2018년 ‘사상 최악의 더위’가 왔고, 2019년 ‘최다 태풍’과 ‘겨울 기온상승’, 2020년 ‘최장 장마’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쌀농사를 짓는 임종완 서산간척지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더워 가물면 벼에 알이 안차고, 태풍과 많은 비에는 벼가 쓰러진다”고 말했다.

쌀 가격 폭등을 이끈 더위, 태풍, 장마는 모두 기후위기와 연관이 있다. 지구온난화가 북극의 고온 현상으로 나타났고, 북극과 북반구 내 온도차로 불었던 바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북쪽은 차고 남쪽은 더운’ 균형이 깨진 것이다. 실제 2018년 더위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북쪽의 냉기가 조율치 못해 불거졌다. 2019년은 달궈진 태평양 바닷물에서 끊임없이 태풍이 만들어졌고, 한반도에 평년의 2배 넘는 태풍이 닥쳤다. 그리고 올해 북극 기온 상승으로 극지방 주위를 도는 제트기류가 한반도 근처까지 늘어졌고, 장마의 북상을 막았다.

“농산물 수급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것”

전문가들은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앞으로 매년 심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후위기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추세로 자리 잡았다는 판단에서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기후변화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2018년은 캐나다 연안에 접한 단단하고 잘 부서지지 않는 빙하마저 녹아내린 해”라면서 “빙하는 지구로 들어오는 열을 튕겨내는 역할을 했지만, 빙하가 없으면 열 흡수가 늘고 기온은 더 빨리 올라간다. 이제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는 시대로 변해 버렸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서울 기준)은 1910년대 평균 94일에서 2010년대 평균 131일로 늘어났다. 여름이 한 달 넘게 길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이미 1년의 3분의 1을 평균기온이 20도 이상인 여름으로 살고 있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는 “길어진 여름의 폭우와 가뭄, 또다시 불어닥치는 가을 태풍, 겨울의 이상 고온 등 변화무쌍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일상이 되면 농산물 수급은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농산물 가격과 같은 밥상 물가 상승만을 볼 것이 아니라 농업 지원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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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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