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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사임에 요동치는 일본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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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지지층이 지지하는 스가 관방장관아사히·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의 후임 자리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로(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등 세 명이 도전장을 던졌다. 스가는 아베를 측근에서 모신 인물로 그의 부정적인 유산까지도 그대로 계승할 가능성이 큰 인물로 꼽힌다. 외부에서 보면 단점으로 보이지만 변화를 꺼리는 아베 지지자들 입장에선 오히려 장점이다.스가 관방장관은 아베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유지해 다음 총선까지 일본 정계를 조용히 관리할 인물이란 평가 속에 가장 유력한 아베의 후계자로 꼽힌다. 무엇보다 자민당 내 파벌이 없고, 배경이 약해 아베 세력에 도전하거나 뒤를 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자민당 내에서 아베 지지층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스가가 부상하는 여러 이유 중에는 아베의 ‘퇴임 뒤 안전보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인 아베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그의 집권 기간에 있었던 각종 스캔들과 측근 부정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재임 중 두 건의 학원 관련 특혜 스캔들에 휩싸였다. 하나는 아베가 친구가 이사장이던 사학 가케(加計)학원 산하의 오카야마 이과대학이 2016년 11월 수의학부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의혹보다 더 큰 문제는 개운치 못한 뒤처리였다.2017년 들어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아베 내각은 증거가 줄줄이 나와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당시 마에카와 기헤이(前天喜平) 문부과학성 전 사무차관이 “(허가가) ‘총리 의향’이라고 적힌 문서를 봤다”고 증언하자 “지위에 연연하여 붙들고 늘어졌다”며 무례한 인신공격까지 했다. 담당 부처인 문부성도 처음엔 부인하다 한 달 만에 사건을 재조사해 ‘문제 없다’는 결론을 뒤집었다.그러자 2017년 5월 31일 아사히신문의 천성인어(天聲人語) 칼럼은 “정권이 어디까지 믿을 만한지를 확인해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은 유권자의 일”이라고 꼬집었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0%가 ‘적정한 절차였다는 정부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고 답했다. ‘납득할 수 있다’는 18%에 그쳤다. 아베 정권의 ‘눈 가리고 아웅’을 전 국민이 알고 있는데도 내각 내부에선 경고음도, 스프링쿨러도 없었다. 결국 불통과 비리 쌍곡선이 견고하던 아베 정권 지지율에 금을 냈다.또 다른 학원 스캔들은 207년 초 제기된 ‘극우’ 성향 오사카(大阪) 모리토모(森友)학원의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전 이사장에 대한 특혜 의혹이다. 가고이케는 지난해 지방정부와 수의계약을 통해 초등학교 설립용으로 국유지를 평가액의 14% 수준인 1억3400만 엔(약 13억5800만원)의 헐값에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이름은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 명예교장은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였다. 가고이케는 2월 16일 일본 국회 증언에서 “아키에 여사로부터 ‘아베 총리가 주는 것’이라는 기부금 100만 엔(약 1013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스모킹건’이 나온 셈이다.아키에는 2014년 4월 이 학원 산하의 쓰카모토(塚本) 유치원을 찾았다가 원생들이 “아베 총리는 일본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하자 감동했다고 한다. 이 유치원은 2015년 운동회에선 원생들에게 “한국이 거짓 역사를 가르치지 않도록 부탁해” “센카쿠 제도, 다케시마, 북방 영토를 지키자”라는 극우 구호를 외치게 했다.당연히 화살은 아베를 향했다.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높은 지지율에 취해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은 것은 물론 진영 논리에 매몰돼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베 내각은 당이나 국민과의 소통은커녕 ‘우리 편’만 챙기고 자기 논리에만 빠진 ‘도모다치(友達·친구) 내각’이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목표를 정하고 밀어붙이는 것 외에 다른 사안엔 무신경·무력·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따랐다. 2012년 재집권 뒤 이어온 지지율 고공행진이 겸손함을 잃게 해 독이 된 셈이다.
계속되는 스캔들에 지지율 하락올해 들어서는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 주민과 후원 회원을 정부 공식 행사인 ‘벚꽃 보는 모임’에 초청해 세금으로 접대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가케학원 스탠들, 그리고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은 아베의 3대 스캔들로 꼽힌다.이런 상황에서 아베의 지지율은 2012년 재집권 뒤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NHK가 지난 8~1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2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8월 11일 발표한 지지율 조사 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조사 결과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4%로 나타났다. 한 달 전 조사 때와 비교해 2%포인트가 하락했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7%로 2%포인트가 늘었다. NHK는 “조사 방법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이라는 단서를 달아 “지난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라고 설명했다.이번 조사는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인식이 나빠졌음을 잘 보여줬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응답자의 37%는 ‘정책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고, 28%는 ‘아베 총리를 못 믿는다’라고 답했다. 아베 총리로선 뼈아픈 여론조사 결과다. 코로나19에 대한 미숙한 대응, 그리고 말만 앞설 뿐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점, 그리고 아베 개인과 측근의 비리가 연이은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아베는 2017년 연이은 학원 특혜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축성(築城)에 3년, 낙성(落城)에 하루”라는 속담을 인용한 적이 있다. 성을 짓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들지만 무너지거나 함락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의미다. 지난 7년 8개월간 쌓아왔던 아베 정권이라는 견고한 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셈이다.요미우리 신문은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 집권의 최대 공적을 여섯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해 재정을 튼튼하게 한 일이다. 둘째, 집단적지위권의 한정 행사를 인정하도록 법안을 정비한 일이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셋째, 특정비밀보호법을 마련한 일이다. 넷째, 테러 등 준비죄법을 제정한 일이다. 이는 도쿄 올림픽 등에 대비해 테러 기획을 입으로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인권이나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아베가 밀어붙였다. 다섯째, 일왕의 퇴임과 새 일왕의 취임이다. 여섯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추진한 일이다.하지만 아베는 사임을 발표한 현재 주요 실적이 모두 빛을 바라는 상황이 됐다. 소비세 인상은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고, 집단적 자위권은 아베가 집권 이래 외쳤던 정상국가로 가는 디딤돌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국의 반발과 견제만 부르고 있다. 한일 관계는 역대 어떤 총리 시절보다 냉각됐다. 아베가 유치한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로 1년 연기됐지만 내년 개최도 불투명하다. TPP는 아직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아베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그 어떤 정책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셈이다.
도모다치 내각의 어두운 그림자이런 상황에서 아베와 그의 부인이 총리 관저를 나오면 검찰의 칼끝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모리토모 학원, 가케 학원, 벚꽃을 보는 모임 등 아베의 3대 스캔들을 철저히 파헤쳐i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스가 관방장관은 아베 부부의 과거 스캔들이 검찰 수사 결과 모두 종결된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시다와 이사바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아베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스가의 추임 총재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하지만 스가가 아무리 법적인 조치를 막거나 미뤄도 아베와 집권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반전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자격미달의 측근을 요직에 기용해 도모다치 내각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들만의 권력을 유지해온 아베는 일본 정치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아베의 1강 체제가 남긴 유산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