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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경쟁’ 펼치는 유통업계] 더 빨리, 더 신선하게 ‘시간과의 싸움’ 

 

편의점, 근거리 도보배송 경쟁 시작… 유통단계 줄여 ‘생산→식탁’ 시간 단축도

▎경기 김포에 위치한 SSG닷컴의 자동화 물류센터 ‘네오’의 콜드체인 시스템. / 사진:신세계그룹
GS25는 8월 19일 업계 최초로 도보 배달 플랫폼 ‘우리동네딜리버리(우딜)’를 선보였다. 고객이 배달 주문하면 우딜앱을 통해 1.5㎞ 내 지역에 있는 배달원이 주문 콜을 접수해 바로 배달하는 형태다. 중량 5㎏ 이내 상품을 걸어서 배달하는데 평균 배달시간이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특히 우딜은 특정업체 소속이 아닌 일반인이 자유롭게 배달원(우친)으로 활동할 수 있다. 배달 한 건당 2800~3200원의 수수료를 벌 수 있어 용돈벌이로 활용하는 우친이 대거 몰렸다.

GS25는 론칭 전 한 달 우친 목표 인원을 3000명으로 예상했는데 한달 새 1만8000명을 넘어섰다. GS25 관계자는 “우딜 앱을 론칭한 이후 지난 8월 19일부터 이달 13일까지 GS25 배달 주문건수는 전월대비 71.5% 증가했다”며 “현재 픽업부터 배달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39분인데, 우친이 증가할수록 배송시간도 단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9월 25일 ‘도보배달 서비스’를 선보였다. CU는 도보 배달 전문업체인 ‘엠지플레잉’과 손잡고, 점포와 1㎞ 내 접수 건에 대해 도보로 배달한다. 엠지플레잉에 등록된 1만2000여명의 전국 배달원들이 근거리 배달을 담당한다. CU는 “9월 배달 서비스 이용건수가 전월대비 198.4% 급증했다”며 “1㎞ 거리 내에서 배달하기 때문에 배달 시간이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븐일레븐 등도 도보배달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온, 600여 개 제품 ‘한 시간 배송’ 실시


유통공룡도 초단기·초소량 배송 경쟁에 뛰어들었다. 롯데 온라인 쇼핑플랫폼 롯데온(ON)은 지난 7월 ‘한 시간 배송’ 서비스를 실시했다. 롯데온은 롯데GRS와 손잡고, 본격적인 론칭에 앞서 테스트를 거쳤다. 서울 잠실역 주변 반경 2㎞ 내에서 롯데리아·엔제리너스·크리스피크림도넛 등 4개 브랜드 120여 가지 상품을 한 시간 내 배송했다. 오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주문이 가능하고, 최소 주문금액이 없어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에 롯데온은 8월 말부터 배송 가능 품목을 600여 개로 늘렸다. 롯데마트의 대표 가정 간편식 ‘요리하다’와 밀키트 상품 50여종을 포함해 마스크팩·클렌징크림 등 롭스의 뷰티·건강 상품 30여종 등이 추가됐다. 롯데온은 초단기 배송을 위해 스타트업과 손을 잡았다. 창고와 상품 선별 및 포장은 1인 가구가 필요로 하는 생필품 온라인 전문 편의점 ‘나우픽’이 맡았다. 배달은 배송 솔루션 스타트업 ‘피엘지(PLZ)’가 담당한다. 나우픽이 운영 중인 거점센터에 미리 롯데마트와 롭스 상품을 보관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준비한다. 이를 피엘지 소속의 1시간 배송전담 기사가 포장해 배송하는 방식이다.

최희관 롯데e커머스 O4O부문장은 “이번에 업그레이드를 거친 한 시간 배송 서비스는 1인 가구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즉시 배송해주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번 판매 상품 확대로 하루 평균 주문 건수가 3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롯데온은 9월 서울 강남도 배송 범위에 포함시킨 데 이어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유통업계의 시간전쟁은 배송시장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신선식품 분야에서는 생산부터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에 한창이다. 이른바 ‘초신선’ ‘극신선’을 표방한 제품이다. 지난해 6월 새벽배송을 처음 시작한 SSG닷컴은 극신선제품 경쟁력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SSG닷컴은 자동화 설비로 이뤄진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를 활용해 극신선제품 시장을 확대한다.

네오는 상품의 극신선 상태를 유지하는 데 특히 효율적인데, 상품 입출고가 이뤄지는 작업 공간을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영상 10도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SSG닷컴은 가락시장과 노량진수산시장 등에서 매일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경매를 통해 낙찰 받은 상품을 네오에 입고시킨 뒤 순차적으로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지난해 10월엔 당일 새벽 3시에 착유한 우유를 48시간 내 판매하는 ‘극신선 우유’를 선보였다. 이어 업계 최초로 베이킹센터 ‘트레 또’를 네오에 두고 이 곳에서 직접 빵을 구워 고객에게 배송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6월에는 당일 새벽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경매에 나와 낙찰 받은 활어를 손질·포장해 그 날 오후 배송하는 서비스를 선보이며 극신선 제품의 정점을 찍었다.

SSG닷컴은 ‘극신선=유통단계단축’이라는 공식 하에 애초부터 온라인 유통 특성에 맞는 다품종 소량 상품을 기획해 수매에서 유통까지 전담하는 것이 비결이다. 올 5월 SSG 닷컴이 출시한 자체 유통 제품 ‘모두의 쌀’은 도정 후 3일이 지난 상품은 입고될 수 없도록 해 신선도를 높였다. 롯데마트도 초신선 품목 확대에 적극적이다. 3일 돼지고기, 즉석 도정미, 즉석구이 김, 당일 낳은 계란 등 여러 제품군을 확보했다. 홈플러스는 7월부터 ‘어제 잡아 더 신선한 생닭’을 판매 중이다. 도계와 가공작업을 한 곳에서 진행해 유통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유통업체들이 시간전쟁을 시작한 배경엔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가 집밖을 나서는 일이 줄었기 때문이다. 근처 편의점을 가는 일조차 우려되는 상황에서 극소량의 제품까지 배달에 의존하는 탓이다. 대형마트 등 유통공룡이 초신선 제품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대형마트 e커머스 담당자는 “‘다른 건 몰라도 신선제품은 직접 보고 사야한다’고 믿는 소비자에게 온라인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신선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초신선 제품은 소량만 진열하기 때문에 이들 상품의 폐기율은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마켓컬리 ‘극신선 우유’ 변질 논란 등 부작용도

초단기·초신선 경쟁이 가열되면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극신선제품을 취급하며 인지도를 높인 마켓컬리는 최근 우유 제품의 변질로 논란이 됐다. 마켓컬리가 지난 9월 3~5일 출고한 무항생제 우유 제품 4800여 개가 유통 과정에서 상한 상태로 ‘샛별배송’ 됐다는 것이다. 다음날 배송 직후부터 소비자 게시판에 우유가 상한 것 같다는 문의가 이어졌지만 마켓컬리 측은 제품 수령일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후에야 문자를 통해 고객에게 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문제가 된 상품 제조사의 모든 제품은 판매가 중지된 상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인 제주 목초우유는 지난해 100만 개 이상 팔리며 전년 대비 판매량이 2배 이상 급증한 마켓컬리의 대표 상품이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극신선상품의 경우 당일 입고,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며 주문 마감 시엔 전량 폐기된다”며 “제품의 변질 원인은 아직 파악 중이지만 제조사에서 물류센터로 오는 과정에서 운송차량의 냉장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마켓컬리 사태처럼 ‘속도 경쟁’이 자칫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선제품 유통에는 콜드체인 유통시스템 확립이 필수인데, 대규모 투자와 물류 지출이 뒷받침돼야 한다. 신선제품은 보관이 어렵고 재고 부담이 커 이익을 내기 쉽지 않지만 집객 효과가 커 유통업체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위메프는 2016년 e커머스 업계 최초로 신선식품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적자를 거듭하다 2년 만인 2018년 말 사업을 접었다. 그러다 지난 4월 GS프레시와 손잡고 주문 3시간 내 당일 배송이 가능한 ‘마트 당일배송관’을 통해 우회적으로 다시 시장에 발을 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신선식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온라인 유통사업을 펼치는 업체에게는 출혈경쟁을 하더라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며 “이미 초단기 배송이나 초신선 제품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앞으로 같은 속도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이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554호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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