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 달간 가동 멈춘 에쓰오일 RUC·ODC] 5조원 투입한 설비, 올해만 석달 놀렸다 

 

전문가들 “낮은 생산성” 지적… 올해 하반기 실적 개선 ‘먹구름’

▎에쓰오일 잔사유고도화시설(RUC)· 올레핀하류시설(ODC) 전경. / 사진:에쓰오일
에쓰오일의 잔사유고도화시설(RUC)·올레핀하류시설(ODC)이 9월 한 달 내내 가동이 중단됐다가 지난 10월 4일에서야 다시 정상 가동된 것으로 확인됐다. 9월 초 태풍 ‘마이삭’의 여파로 RUC·ODC 내 중질유접촉분해시설(RFCC)이 멈춘 이후 작업이 한 달 이상 중지된 것이다. 지난 봄 두 달 동안 보수로 가동이 중단된 것까지 합치면 올해만 석 달이나 공장을 놀린 셈이다.

에쓰오일이 약 5조원을 투입한 초대형 석유화학 프로젝트 RUC·ODC는 상업 가동 전부터 부실시공 의혹 등의 논란이 많았다. 특히 RUC·ODC 관련 인력 부족, 열악한 근로환경 탓에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선 ‘애물단지’라는 비난마저 나왔다. 에쓰오일 노동조합(에쓰오일 노조)의 강력한 시정 요구 후에야 인력 충원 등 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실시공 의혹에 인력부족까지… 논란의 RUC·ODC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RUC·ODC는 약 석 달 동안 가동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7월에는 정기 보수로 가동이 중지됐고, 9월에는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RFCC가 셧다운(일시 업무 중지) 되면서 RUC·ODC도 연쇄적으로 멈췄다. RFCC는 벙커C유를 원료로 투입해 에틸렌·프로필렌을 만들고, 이를 통해 폴리프로필렌(PP)·프로필렌옥사이드(PO)를 생산하는 RUC·ODC의 핵심 설비다. RFCC가 멈추면 RUC·ODC도 가동이 중단된다.

총 4조8000억원이 투입된 에쓰오일의 RUC·ODC는 가동 전부터 각종 논란에 시달려왔다. 2017년 민주노총 전국 플랜트건설노동조합(플랜트 노조) 울산지부는 RUC 건설 현장에서 부실시공이 발견됐다며 책임자 처벌, 진상조사 등을 요구했다. 플랜트 노조 관계자는 “RUC 철골 건물의 볼트 홀(구멍)에 볼트가 제대로 시공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제보와 함께 동영상을 입수해 이를 토대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며 “추후 에쓰오일 측이 비공개로 전면 조사를 실시한 결과 7개의 볼트가 부실시공된 것으로 확인돼 수정 조치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볼트가 제대로 시공되지 않은 채 설비가 가동됐다면 태풍이나 지진 등의 재해 때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RUC·ODC는 2018년 4월 완공 이후 시운전을 거쳐 같은 해 11월부터 상업 가동에 돌입했다. 당초 상업 가동 목표 시점인 3분기(7~9월)보다 늦은 출발이었다. RUC·ODC 시운전 과정에서 기기 결함 등의 문제가 발생해 상업 가동이 지연된 탓이다.

RUC·ODC를 통해 연간 7000억~8000억원의 추가 영업이익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현재까진 구호에 그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2019년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2555억원으로, RUC·ODC 본격 가동 전인 2018년(3509억원)보다 27% 감소했다. 지난해에 RUC·ODC 정기보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족한 성적이라는 지적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석유화학설비가 본격 가동된 해에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는 것은 에쓰오일의 RUC·ODC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거나 이들 설비의 생산성이 낮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에쓰오일에 따르면 RUC·ODC의 PP·PO공장의 지난해 가동률은 75.4%에 머물렀다. 올해 1분기에는 94.1%로 회복됐지만, 2분기에 정기보수 등의 영향으로 75.7%로 다시 하락했다. 올해 3분기 가동률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9월 한 달 동안 가동이 중단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동률 회복도 더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 측은 “통상 대규모 석유화학설비 가동 초기에는 공정상 가동률을 서서히 높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동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것”이라며 “현재 RUC·ODC는 정상 가동되고 있고 가동률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RUC·ODC의 생산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업체들은 나프타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생산하는데, 나프타 제품마다 성분이 제각각이고 나프타의 질에 따라 생산성이 좌우된다”며 “원유에서 휘발유 등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기름인 벙커C유의 경우 나프타보다 더 질이 낮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벙커C유를 활용해 에틸렌,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RUC·ODC의 생산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다”고 전했다.

에쓰오일의 RUC·ODC 관련 인력이 충분치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에쓰오일 안팎에선 RUC·ODC의 인력 부족으로 일부 근로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에쓰오일 노조 관계자는 “인력 부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측에 RUC·ODC 관련 근로자 채용을 요구해 올해 4월 25명이 충원됐다”며 “인력 부족과 함께 근로자를 위한 편의시설 미비 등의 문제가 많았는데, 전임 집행부가 사측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면서 RUC·ODC 문제가 사실상 방치돼왔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 측은 “RUC·ODC 프로젝트 초기에 관련 인원을 대규모로 채용했고, 최근에 별도로 인력을 채용한 적은 없다”며 “RUC·ODC에 인력이 필요할 경우 인력 재배치를 통해 상시적으로 충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족 인력 충원에 대해 사측과 노조의 말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5조 투입 설비에 직원 대피소도 없어

그동안 에쓰오일 RUC·ODC 내에 쉘터(근로자들이 쉬거나 위험 시 대피할 수 있는 장소)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에쓰오일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RUC·ODC에 쉘터가 없어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쓰오일 노조 측의 요구로 현재 쉘터 구축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 노조에 따르면 RUC·ODC 쉘터 구축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5조원이 투입된 대규모 석유화학설비에 직원 대피소조차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 측은 “쉘터 구축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8년 11월 상업 가동된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 문제가 이어져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쓰오일 측이 RUC·ODC 관련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에쓰오일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RUC·ODC 관련 인력 충원이나 쉘터 구축 등의 개선 사항은 에쓰오일 노조 측이 사 측과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라며 “에쓰오일 노조의 전임 집행부가 사 측에 RUC·ODC에 대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을 때는 회사 측이 이들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노조 안밖에선 “회사가 RUC·ODC문제를 방치하면서 애꿎은 근로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비난마저 나온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1555호 (2020.10.1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