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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ICT업계 ‘합종연횡’에 기대반 우려반] ‘승자독식’ 구조 뚜렷해 주도권 다툼은 부담 

 

미래사업 선점 기대감 확산… ‘어제의 동지, 오늘은 적’ 많아 성과는 지켜봐야

▎네이버와 CJ그룹이 지난 10월 26일 총 6000억원대 주식을 교환하고 문화 콘텐트 및 물류 분야에서 포괄적 전략 제휴 관계를 맺었다. / 사진:네이버
SK텔레콤과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의 합종연횡이 최근 연거푸 이어지면서 협력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 선두 기업들이 손을 맞잡고 지분을 섞는 혈맹을 맺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업계가 들썩인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성과가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ICT업계가 다른 업계보다 변화가 빠르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기대감을 꺾는 요소다.

최근 국내 ICT 업체들은 앞다퉈 상호 지분을 교환하거나, 지분을 투자하는 혈맹에 몰두하고 있다. 10월 15일 SK텔레콤은 이사회를 통해 ‘모빌리티 전문 기업 설립안’을 의결했다. 국내 1위 내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 T맵을 중심으로 하는 모빌리티사업단을 분사해 ‘티맵모빌리티 주식회사’를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모빌리티 업체 우버가 티맵모빌리티에 5000만 달러(약 575억원)를 투자한다.

줄 잇는 업계 선두기업들의 지분 맞교환


▎그랩 어플리케이션에 탑재된 SK텔레콤의 네비게이션 / 사진:그랩
SK텔레콤과 우버는 한발 더 나아가 합작회사(Joint Venture)도 설립하기로 했다. 우버와 티맵모빌리티가 각각 지분 51대 49 비율로 출자해 2021년 상반기 합작회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우버가 투자할 금액은 1억 달러(약 1150억원)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합작회사는 T맵 택시 네트워크와 지도 데이터, 차량 통행 분석 기술에 우버의 전 세계적 운영 경험, 플랫폼 기술을 합쳐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와 CJ그룹도 지분을 나눈다. 10월 26일 네이버는 이사회를 열고 CJ그룹 계열사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CJ대한통운 등과 지분을 교환하기로 의결했다. 네이버와 CJ ENM, 그리고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은 각각 자사주를 상호 교환하는 식이고 스튜디오드래곤은 네이버의 자사주를 받고 제3자배정 유상증자 형식으로 자사 지분을 넘긴다. 거래 규모는 CJ ENM, 스튜디오드래곤과는 각각 1500억원이고 CJ대한통운과는 3000억원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CJ그룹과의 상호지분 투자로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새로운 실험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와 KB증권,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등은 10월 7일 ‘인공지능(AI) 간편투자 증권사’를 출범키로 하고 조인식을 열었다. 이 합작법인에는 엔씨소프트와 KB증권이 각각 300억원씩, 모두 600억원을 출자한다.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글로벌 최고전략책임자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지분 26.81%를 확보한 곳이다. 세 회사가 설립할 합작법인에서는 개인별 맞춤운용이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 전방위적인 금융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이 연달아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만한 사업은 네이버와 CJ대한통운 정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 회사의 사업 영역에서는 서로 경쟁할 여지가 많지 않아서다. CJ대한통운은 국내 1위 물류업체이고, 네이버는 국내 최대 포털 서비스 사업자로 쇼핑플랫폼에서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두 회사는 협업을 통해 스마트 물류체계를 갖출 예정이라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다.

반면 네이버와 CJ ENM, 스튜디오드래곤 간의 협업은 콘텐트 플랫폼 주도권을 두고 경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엔씨소프트와 KB증권,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의 ‘AI 간편투자 증권사’는 AI를 활용한 금융투자 분야에 워낙 다양한 경쟁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뒤에야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SK텔레콤과 우버가 협업할 모빌리티 시장은 ICT 업계는 물론 완성차 업체까지 몰려드는 격전지다. 이 시장은 또 다른 ICT 공룡 카카오가 카카오모빌리티를 통해 이미 독주 체제를 갖췄다. 국토교통부의 ‘2020 대리운전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리운전 기사의 91.75%는 카카오T대리에 기사로 등록돼 있다. 택시호출 시장에서도 카카오모빌리티는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카카오는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플랫폼 서비스 등을 모두 직접 인수하거나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반면 SK텔레콤과 우버는 지분을 나눴다해도 별개의 회사기 때문에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 우려로 꼽힌다. 실제로 우버는 자율주행 기술을 넣고 구글과 충돌한 적이 있다.

ICT업계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경우 많아

우버는 구글맵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업체다. 구글이 2013년 2억5800만 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하며 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립 7년만인 지난 2016년 우버는 구글맵과 거리두기에 나서며 자체 지도 제작에 돌입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해야 했던 우버가 구글과 직접 경쟁 관계에 놓였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구글의 관계사인 웨이모(Waymo)가 우버와 특허침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 소송은 2018년 우버가 2억4500만 달러(약 2800억원) 어치의 지분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합의에 성공했으나 ‘어제의 동지, 오늘은 적’이 되는 ICT업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SK텔레콤이 그랩과 카카오 등 우버의 경쟁자들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SK텔레콤은 지난 2019년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공유 업체 그랩(Grab)과 합작법인인 ‘그랩 지오 홀딩스’를 설립하기로 하고 협력에 나섰다. 이에 따라 국내 1위 내비게이션 ‘T맵’기반 네비게이션이 그랩 어플리케이션에 탑재됐다. 카카오와는 2019년 11월 상호 지분을 취득하며 혈맹 관계를 맺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합종연횡의 판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ICT 기업들의 지분 교환이나 합작법인 설립만을 보고 기대감을 갖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ICT업계 관계자는 “다른 산업보다 승자독식 구조가 분명한 ICT업계에서는 주도권에서 밀리면 사실상 성공의 과실을 내줄 수 있다는 부담이 크다”며 “합종연횡이 깨지지 않으려면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두 회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59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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