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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은 왜 아시아나항공에 특혜를 줄까] ‘대주주 책임 없는 균등감자’에 구조조정 대원칙 깨져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경영 실패… “금융 논리 아닌 정무적 판단” 지적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9월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경영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무상균등감자 실시를 결정하면서 특혜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대주주에 경영 실패 책임을 묻는 차등감자가 아닌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가 동일한 비율로 감자하는 균등감자를 택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1월 3일 이사회를 열어 3대 1의 비율로 무상균등감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액면가액 5000원의 기명식 보통주식 3주를 동일 액면금액의 보통주식 1주의 비율로 무상 병합한다는 것이다. 감자는 주식회사가 주식 금액이나 주식 수를 줄여 자본금을 감소시키는 것을 말한다. 회계 상 자본금을 줄여 결손금을 털고 이를 통해 자본 잠식을 탈피하는 회계 기법이다. 계획대로 감자가 시행되면 아시아나항공의 자본금은 1조1162억원에서 3721억원으로 감소한다.

산업은행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분기 말 기준 자본잠식률이 56.3%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감자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채권은행의 지원만으론 자본 잠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는 점, 연내 자본 잠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금융계약 및 신용등급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감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라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인 상장회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자본금이 전액 잠식되거나 2년 연속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일 경우 상장이 폐지된다. 자본잠식률은 상장회사의 납입자본금에서 자본총계를 뺀 금액을 납입자본금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전례 없는 균등감자에 ‘특혜 논란’ 커져


그러나 문제는 감자 자체가 아닌 감자 방식이다. 산업은행이 대주주 책임을 묻지 않는 균등감자를 용인해 기업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깼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차등감자를 고수한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는 균등감자를 허용하면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대주주의 경영 실패로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워진 측면이 강한데도, 매각 땐 대주주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장하고 손해 부분에선 일반주주와 동일하게 감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위원장은 “이슈가 됐던 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균등감자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번 균등감자 결정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는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한 감자는 불가피하지만, 대주주 책임 없이 일반주주와 동일한 비율로 균등감자를 실시하는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산업은행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균등감자가 이뤄진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주주 책임을 강하게 물어 대주주가 경영권을 박탈당한 사례가 많았다. 산업은행은 2014년 동부제철(현 KG동부제철) 구조조정 당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이 보유한 대주주 주식을 100대 1로, 일반주주 주식을 4대 1로 감자하는 차등감자를 실시했다. 동부제철 측은 산업은행에 100대 1의 차등감자 비율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차등감자 이후 동부제철 경영권은 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현대상선(현 HMM) 역시 지난 2016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등 대주주 주식을 7대 1 비율로 무상 소각하는 차등감자를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 경영권을 잃었다.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경우에도 차등감자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됐다. 2016년 산업은행은 2015년 12월 24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효력발생일 이전에 산업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주식(6021만7183주) 전량을 소각했으며, 나머지 주식을 10대의 1의 비율로 차등감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그 해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주주는 대주주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호산업은 2010년 대주주 주식은 100대 1, 소액주주와 채권·금융기관, 금호석유화학 등의 주식은 6대 1의 비율로 차등감자했다. 금호타이어 역시 같은 해 대주주 주식은 100대 1, 소액주주 등은 3대 1의 비율로 감자했다.

국책은행 내부에서도 아시아나항공 균등감자를 두고 뒷 말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국책은행 특성상 아시아나항공의 균등감자처럼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결정을 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며 “국책은행 내부에선 이번 균등감자 결정은 금융 논리가 아닌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균등감자는 산업은행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정부와의 충분한 교감을 거쳐 균등감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명분 없는 균등감자에 자승자박 산업은행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균등감자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아시아나항공 측은 균등감자에 대해 “대주주 지분이 매각 결정과 동시에 채권은행에 담보로 제공됐고, 지난해 4월 이후 대주주가 회사 경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은 점, 거래 종결을 앞둔 인수합병이 코로나19로 무산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대주주가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라는 대외 변수로 경영이 악화됐기 때문에 대주주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그러나 항공업계와 재계 등에선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경영 실패로 인해 실적 악화가 누적돼왔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이번 균등감자의 명분으로 코로나19를 내세우는 것은 HDC현대산업개발을 상대로 제기한 계약금 몰취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HDC현대산업개발 측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실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인수가 무산됐는데, 산업은행이나 아시아나항공 측이 균등감자의 명분으로 코로나19를 강조하는 것은 자칫 HDC현대산업개발의 재실사 요구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균등감자 결정이 이른바 ‘항공사 빅딜’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양사의 인수합병이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균등감자를 실시했을 것이란 얘기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60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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