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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INNOMATE(8) 소프트뱅크벤처스 이준표 대표] 아시아로 보폭 넓혀 2.0 시대 개막 

 

“중국 펀드서 유니콘 2~3개 나올 듯... 창업 성공하려면 인재 타협하지 말아야”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해외 무대에서 뛸 때 소프트뱅크라는 세계적 브랜드를 통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어휘는 그 사람이 지닌 세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브랜드는 대중 인식의 본질적 성격을 담고 있다. 기업 활동은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는 곧 기업의 성격과 정체성을 규정한다. 테슬라·파타고니아·언더아머처럼 독점적 이미지를 선점하면, 그 자체가 기업 가치며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한국 벤처캐피탈(VC)의 대표 선수 격이다. 국내에 창업 생태계가 자리 잡기 전인 2000년대 초부터 벤처 투자를 시작해 현재까지 250여 개 기업에 투자하며 스타트업 성공을 뒷받침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모회사로부터 물려받은 기술·비전·세계화 등 고유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국내 VC 중에 소프트뱅크벤처스처럼 자기만의 브랜드를 구축한 곳은 드물다.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를 받아 동남아시아, 중국·인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미국 코그넥스에 인수된 수아랩, 인도에서 활동 중인 밸런스히어로, 일본에서 확장 중인 버즈빌 등이 대표적이다. 소프트뱅크그룹·비전펀드와 연결할 수 있다는 점도 창업자들을 자극한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소프트뱅크의 유일한 아시아 법인으로, 한국에 머물렀던 사업 권역이 2018년 말 아시아로 확대됐다. 이에 중국·이스라엘을 비롯해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도 투자 범위를 넓혔다. 투자 지역이 확장함에 따라 신기술과 더불어 아시아에 적용할 수 있는 혁신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크고 전략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 셈이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투자받아 스타트업 에빅사·앤써즈를 성공시킨 창업자 출신이다. 이 대표는 “아시아 시장을 무대로 소프트뱅크벤처스 2.0 시대를 열었다”며 “해외 무대에서 뛸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투자 동향, 전략 등을 들었다.

2000년대 초 IT 붐 때부터 벤처 투자


대표로 취임해 2년 반이 지났는데 소회는.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도와주고 지지해줘서 무사히 2년 반을 보냈다. 그 결과로 지난해 12월엔 한국벤처투자의 ‘코리아 VC 어워드’ 최우수운용사로 선정됐다. 대표 취임 후 중국·싱가포르 등 글로벌 확장에 나서고 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3억 달러(약 3385억원) 규모의 차이나벤처스펀드도 만들었다. 지난해 엑시트에 성공한 케이스도 많아 투자자(LP)에게 수익을 돌려줬다. 구성원들이 한 팀이 돼 소프트뱅크벤처스 2.0을 만드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대거 중국 투자에 나섰는데 성과는.

“AI·로봇 기업을 많이 알아봤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지 못했다. 소비재·유통 분야의 좋은 기업에 많이 투자했다. 중국에서 흥미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많이 나오고 있고, 이를 토대로 동남아시아 투자도 늘리고 있다. ”

동남아에서 투자 성과는 나오고 있나.

“좋은 기업을 많이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 토코피디아가 대표적으로, 투자금을 부분 회수한 사례도 있다. 포스시스템 개발사 모카는 고젝에 인수되기도 했다. 중국에선 한 펀드에서 유니콘이 2~3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중국 펀드에는 미국, 유럽 등지의 글로벌 탑티어 LP들도 출자자로 참여해 재무적 성과를 실현하는 중이다. 국내 VC 중 중국과 연결된 팀과 브랜드를 가진 곳은 소프트뱅크벤처스뿐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경쟁 VC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태펀드를 비롯해 유력 LP들을 잘 유치해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수익률과 트랙 레코드가 중요하다. LP에게 제시할 근거가 충분하면 협상을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다”며 “리스크 관리, 펀드 만기에 따른 회수 전략, 수익률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투자에 어려움은 없나.

“락다운 기간이 길어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기회 요인도 많다. 그간 바꾸기 어려웠던 습관들이 바뀌고 있다. 올 상반기 가장 특이할 점은 e커머스의 눈부신 부상이다. e커머스를 이용하지 않던 노년층도 쿠팡을 사용하고 있다. 마케팅 비용을 아무리 많이 쓴다고 해도 바꾸기 어려운 일이다. 모바일로 예금·적금 업무를 다 다룰 수 있어 은행 영업점을 갈 일도 없어졌다. 핀테크 업체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교육·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수백 년간 이어온 교육 및 정보전달 방식이 코로나19로 확 바뀌었다.”

정보 격차 등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나.

“학교도 온라인 환경에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 과정이 못 따라가 학력 격차가 발생했다. 유튜브 등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이미 인터넷 검색만으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비전펀드 투자사 중 손목 밴드형 의료기기로 환자의 심장마비 발생 시점을 예상하는 기업의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판매하기 어려운 제품이었을 수 있다. 웹소설·웹툰 등 온라인 콘텐트 소비도 엄청나게 늘어 지적재산권(IP)의 가치를 다시 보게 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변화를 불가역적으로 보나.

“해외여행이 다시 활발해지면 콘텐트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다만 뱅킹·의료 등 편리함에 길든 사람들의 습관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또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진정됐더라도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 영향 작아, 언택트는 불가역적”


▎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언택트 기업으로 투자 쏠림이 심한데 거품은 없나.

“기업의 가치는 시장이 정한다. 비싸다, 싸다는 주관적 판단이다. 과거보다 벤처 투자에 투입되는 재원이 많아져 투자 가격이 높아지기는 했다. 거꾸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여러 투자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브랜드 전략은 무엇인가.

“AUM(운용자산 규모)과 투자사 수가 많다고 최고의 VC라고는 할 수 없다. 미국에도 AUM은 크지 않지만, 핵심적 거래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VC가 있다.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되도록 믿고 맡겨줘야 한다. 손정의 회장에게도 이런 벤처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창업자가 가장 먼저 파트너십을 맺고자 하는 VC가 되려고 한다.”

다른 VC와 어떤 점이 차별화됐나.

“해외 무대에서 뛸 때 소프트뱅크라는 세계적 브랜드를 통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다. 최근 한 AI 반도체 회사에는 ARM 회장을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도록 다리를 놨고, AI 신약 개발사에는 일본 다케다 제약을 이어줬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개발할 때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를 받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그리고 창업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또 기술을 통한 인류의 진보를 지향하며 출범 초기부터 테크 기반 회사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VC가 투자하기 어려운 빅테크나 원천 기술 사업화 등에 관심이 많다.”

만기를 앞둔 펀드가 많은데 기대 수익은.

“만기가 돌아오는 펀드들의 수익률이 굉장히 높다. 이미 투자원금을 모두 상환한 채로 운용되는 펀드가 있을 정도다. 상장을 앞둔 회사들도 적지 않다. 현재는 얼마나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것인가의 상황이다.”

실력이 뛰어난 투자사는 어디인가.

“블루포인트파트너스다. 원천기술 사업화와 인큐베이팅 능력에 있어 독보적이다.”

“만기 도래 펀드 수익률 호조, 더 많은 수익이 관건”

이 대표는 현재를 “창업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평가한다. 정부지원금이 적지 않게 나오고, 투자 라운드마다 투자사들이 줄을 서는 등 창업 생태계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창업 전선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뛰어드는 점도 창업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창업자는 인재에 대해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함께 일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똑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좋은 인재를 많이 들여와 권한을 위임하면 사업을 쉽게 키울 수 있다. 창업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지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창업은 힘들고 외롭지만, 시작하면 그만두기 어려운 길이다. 창업자의 정신력만큼이나, 함께 나아갈 동료의 역할이 크다.”

대표로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많은 기회를 만들고, 성과를 올리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선순환 구조를 더 잘 만들려고 한다. 산업이 고도화, 세계화되고 있어 탄탄한 글로벌 원팀을 다지려고 한다. 지난 1년간 중국과 아시아로의 확장은 큰 도전이었고, 잘 극복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은 더욱 단단해졌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앞으로도 좋은 회사를 발굴하겠다는 소신을 지키며 잘 협업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것이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60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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