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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바이든 시대에도 아른거릴 ‘트럼프 그림자’ 

 

“달러화를 통한 국제 분쟁 개입 축소” 발언에 주목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가 당선을 자축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가 4년 후 다시 대통령 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을 흘려들을 수 없다. 전례나 관행에 얽매일 그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게 했던 사회 현상들이 해소되지 않았고 해소될 기미도 없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낙후된 시골 지역 사람들과 저학력 백인들의 처지가 앞으로 4년간 크게 바뀌기는 힘들어 보인다. 실제로 상원 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다수당을 지켰고, 하원에서 민주당 의석은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는 그가 무난하게 재선하리라는 평가도 많았다.

무너진 미국 전통 제조업 기반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분열상을 야기한 원인 제공자처럼 인식하지만, 그는 미국의 사회 계층적, 지리적 분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미국 사회의 인종 격차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느나 인종 내 경제적 불평등은 훨씬 더 커졌다. 또 경제적 신분 상승의 기회는 감소하여 ‘아메리칸 드림’도 사실상 퇴색했다.

로버트 D. 퍼트넘의 저서 [우리 아이들]은 20세기 중반과는 현저히 달라진 미국 사회의 변화를 추적하고, 높아진 사회경제적 장벽을 지적한다. 여기서는 1970년 대와 비교해, 저학력 여성들의 혼외 출산비율이 현저히 증가했고, 대학 학위 취득 여부가 가족의 수입에 좌우되는 경향이 대단히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또, 지금은 인종 격차보다 경제적 격차로 나뉘는 계층의 차이가 뚜렷해졌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받은 흑인들은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들과 더 비슷하며, 교육을 덜 받은 백인들은 교육을 덜 받은 흑인들과 더 유사하다.

과거에는 경제적 격차가 있는 가정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섞여 원활하게 교류하고 기회도 열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리적으로도 분화가 일어나면서 경제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마을을 형성하게 됐다. 주요 대도시 지역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가구가 교외로 탈출하고 빈곤층만 시내에 남았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원심성의 분산(centrifugal dispersion)이 진행된 셈이다.

미국의 전통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대 이후다. 이 시기부터 주요 산업이 비용 절감 등 경제적 인센티브로 생산 공장을 아시아 등지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에, 미국은 첨단 산업이 자생적으로 꽃피는 생태계 조성에 집중했다.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미국 내 공장들은 폐쇄되었고 미국의 지역 경제는 곳곳에서 붕괴했다. 쇠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Rust Belt)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었다. 살아남은 제조업마저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사람의 일자리를 로봇이 대체하고 있다. 젊은 노동 계급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현저히 감소하면서 중산층이 무너져 내렸다.

경제적 격차는 교육 기회의 격차로 이어졌다. 금융, 컨설팅, 의료 등 고급 서비스 업종은 고학력자들만을 흡수했다. 반면, 과거 많은 인력들이 종사했던 조선소, 식품 가공 공장 등 전통적인 산업시설 단지는 버려졌다. 바이든 정부가 통합과 치유에 주력한다고 한들, 부모님 세대보다 기회는 닫혀 있고 살림살이는 팍팍해진 상당수의 미국 시민들을 구제할 묘수는 없어 보인다. 소외된 다수에 어필하는 전략이 정치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트럼프는 증명했다.

바이든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복원하려 시도하겠지만, 원상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이나 세계보건기구에 재가입하고 미국의 위상을 되찾으려 노력하더라도, 동맹·우방국 입장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수준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는 4년 후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언제라도 이를 되돌릴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생겼다. 마침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에너지 자급을 실현하면서,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이 줄고 중동을 포함한 국제적 이슈에 깊숙이 관여할 경제적 유인도 감소했다. 미국이 결집하려는 서방 국가들과 동맹들의 결속력은 느슨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게는 기회다.

미국 대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하단을 더욱 낮췄다. 미국 만의 번영을 부르짖고 관세를 남발하던 트럼프 리스크가 사라진 것이 한 몫 했다. 또,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면서 재정부양 규모가 감소하는 대신,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연준(Fed)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환율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바이든 시대의 연준은 외부의 압박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연준을 쥐락펴락하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하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대통령이 달러화 가치에 대해 직접 왈가왈부하는 일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달러화와 관련하여 바이든 대통령 공약에서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간 미국 정부가 무분별하게 남용했던 달러화를 통한 제재 방식을 앞으로는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란이나 러시아 등에 경제적 제재를 가할 때, 달러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국제 결제망에 대한 접근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이들 국가에게 타격을 입혔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었지만, 그 반작용으로 일부 국가들이 달러화 중심의 국제 결제망을 우회하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게 했다. 이란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었던 EU가 대안 시스템을 모색했고, 이란과 러시아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결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준비통화로서의 달러화 지위를 위협하는 자충수가 된 것이다.

위안화 강세 환경은 원화 강세에 우호적

홍콩 국가보안법과 위구르 신장 인권 문제 등에 미국과 갈등이 깊어진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제재 위협에 직면하여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 결제망을 확대하려는 강한 동기가 생겼다. 중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위안화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한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위안화 국제화에 다시 속도를 내는 최근 중국의 행보는 달러화를 무기로 한 미국의 금융 제재 가능성에 대처하려는 목적이 크다.

이러한 움직임이 단기간에 달러화의 위상을 흔들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이 산업자본 단계에서 금융자본 단계로 도약을 꿈꾼다는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위안화 가치의 상승에도 우호적이다. 6월 이후 위안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중국 당국이 속도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위안화의 강세 환경이 달러화 약세와 맞물려 있는 현재의 환경은 원화 강세, 즉 원달러 환율 하락에도 우호적인 환경이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60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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