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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시장 견인차 기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2021년 원년 맞는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활약 커질까 

 

자기자본 2배로 성장 ‘빅딜’ 체력 갖춰… 규제 여전한 CVC법안 국회 통과 ‘산통’

▎12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의 3대 신산업(BIG3) 성과공유회. 한 해 동안 혁신 성장을 이룬 기업들을 격려하는 자리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국내 벤처기업(스타트업) 투자업계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의 태동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규제로 막아왔던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 설립·투자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CVC법)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법안은 최근 국회 통과를 위한 막바지 산통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은 CVC 원년이 될 전망이다.

이에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월 ‘스타트업 투자자 20명이 진단한 한국경제’ 설문을 진행하면서 ‘주목하고 있는 CVC는 어디인지’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들은 롯데액셀러레이터, 미래에셋벤처투자, 삼성벤처투자, 스프링캠프,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 포스코기술투자, 한국투자파트너스를 꼽았다. 선정 이유로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안목, 초기 투자 단계의 실적, 시장의 변화를 선도하는 역량, 활발한 네트워크 구축, 벤처투자 생태계 발전에 기여 등이 우수하다는 점을 들었다.

CVC 투자 행보가 한국 벤처기업의 이정표


CVC를 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뀐 분위기도 한 몫 한다. 벤처기업에 탄탄한 자금 지원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를 구현할 환경 제공, 전략적 협업 등 CVC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추세다. 이를 통해 벤처기업은 기술 혁신과 성과 도출에 집중할 수 있고, 벤처캐피털은 투자금을 회수해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견고하게 운용할 수 있어서다. CVC의 유형과 영역을 구분 짓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요즘 CVC의 벤처투자 참여 형태와 투자금의 출처·구성·특성이 다변화되면서 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은 설립 때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와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로 나뉘었다. 모두 신생 기업에 투자하지만 창투사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의, 신기사는 금융위원회와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소관이다. 미래에셋벤처투자·스프링캠프·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한국투자파트너스는 창투사에, 롯데액셀러레이터·삼성벤처투자·포스코기술투자는 신기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벤처캐피털 투자금은 다양해지고 있다. 성공 노하우나 초기 종자돈을 지원하던 엔젤투자 방식을 전문화해 스타트업의 지분 확보에 나서거나, 투자규모·책임범위·전문운용 등에 따라 유한책임투자나 무한책임투자, 또는 둘이 합쳐 벤처·창업투자조합을 만들기도 한다. 비공개·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입하는 사모펀드 전문 투자도 있다. 투자금 출처도 국고인 한국벤처투자를 비롯해 은행·보험·국민연금 같은 연기금, 모태펀드에서 자펀드를 조성하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벤처투자조합, 벤처 펀드에 투자하는 운용사 펀드,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의 출자금 등 다양하다.

변화로 CVC가 신생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보여줄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액셀러레이터(초기 창업자 선발·보육·투자) 기능에 충실했던 CVC가 재무적 투자자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동력을 이끌어내는 전략적 투자자로 나설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CVC 법이 빗장을 풀면 CVC의 활동 반경이 커지기 때문이다.

CVC의 행보는 벤처투자업계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2019년에는 여가·푸드·구직·취미·반려동물·여행·공유 등 생활 밀착 제품·서비스가 주를 이뤘다. 이와 함께 부동산 분야에서는 정보기술(IT)과 접목한 프롭테크(proptech), 금융에서는 인터넷은행, 문화에선 K-뷰티, 의료에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쓴 2020년엔 비대면·헬스케어·바이오·이커머스·미디어콘텐트·간편식·원격근무·클라우드·스트리밍 등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한국투자파트너스 박민식 상무는 “과거에도 위기를 극복한 벤처기업에겐 후속투자와 고속성장이 이어졌다”며 “올해는 비대면 경제가 화두였다면 내년엔 헬스케어·바이오가 유망주”라고 전망했다.

키워드 변화는 CVC의 투자목록이 됐다. 벤처기업 보육과 투자 기능을 모두 갖춘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롯데닷컴·롯데마트·롯데백화점·롯데슈퍼·롯데홈쇼핑·롭스·하이마트 등 롯데그룹 7개 계열사가 모인 온라인쇼핑 플랫폼 롯데온(ON)을 통해 스타트업에 필요한 기술실험의 장, 분야별 임직원의 도움 등을 제공한다. 이를 무기로 지난 10월엔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의 농식품모태펀드 운용 사업에도 처음 뛰어들었다. 강점인 농식품 분야에서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그룹 계열사들에 성장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고사 위기 처한 업계에 선투자하는 역발상도

미래에셋벤처투자는 올해 코로나19 덕에 전자상거래, 온라인 동영상서비스·교육콘텐트·전자책 등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중국·인도네시아 등의 온라인 보험·물류·쇼핑 기업들로 투자를 확대했다. 미래에셋그룹의 해외 15개국 네트워크도 디딤돌이 됐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내년 투자 포트폴리오에 친환경·빅데이터·5G통신망·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기술기반 기업들을 담을 계획이다.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는 역발상으로 투자방향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업계에 활력을 넣기 위해 연기금·공제회·금융사와 손잡고 약 2000억원의 벤처펀드를 만들어 그 중 일부를 여행업계에 먼저 투입했다. 지금은 위기지만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는 올해 투자 초점을 바이오에 맞췄다. 표적항암제, 블록체인 의료정보 관리, 간편보험청구 서비스,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 관련 기업들이다.

삼성벤처투자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출자금을 모아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그룹의 신사업에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다. 사물인터넷·센서·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보안·네트워크 관련 기술에 관심이 크다. 올해만 해도 인공지능 학습용 개인정보 비식별화 처리, 기업용 인공지능형 전력 예측 시스템, 인공지능 온디바이스 기술, 비접촉 생체인식 기술 등에 투자 행진을 이어갔다. 미국·인도의 의료 데이터, 대중교통 정보, 비디오콘텐트 플랫폼 관련 해외 스타트업에도 투자했다.

포스코그룹 CVC인 포스코기술투자도 올해 투자 바구니에 신기술 기업들을 담았다. 자율주행, 레이저 모션 인식 콘트롤러, 5G통신망 전력증폭기 모듈, 재활운동용 로봇 기술 등 문턱 높은 고도 기술들이다. 스타트업 보육·투자시설을 갖춰 액셀러레이터 역할도 강화했다. 신생기업 때부터 육성하면 성장단계에 맞춰 투자금을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어서다.

네이버 계열 벤처캐피털인 스프링캠프는 비대면 분야에 집중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정답을 찾는 인공지능 플랫폼, 비디오 커머스 플랫폼, 온라인 대화형 커머스, 엔터테인먼트 콘텐트 등에 투자했다. 구강·수면 관리 의료기, 암세포 진단·치료 물질, 난치성 내성암 항암제, 디지털 홈트레이닝 등 바이오·헬스케어에 대한 투자도 확대했다. 정보통신기술에 투자할 113억원의 벤처펀드도 조성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 CVC인 한국투자파트너스도 바이오·헬스케어에 주력했다. 인간 장기모델 칩 플랫폼, 알츠하이머 치료, 심리상담 메신저, 희귀난치질환 치료, 무제한 원격진료 서비스, 약효 지속형 의약품, 세포치료·면역항암, 인슐린 대체 물질, 항체·유전체 기술 관련 기업들이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코로나19 덕에 진단 키트 제조 기업과 인도 전자상거래 기업에서 큰 수익을 거뒀다. 김영덕 전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는 “소수의 대형 투자와 쏠림 투자가 시장을 왜곡했던 지난해보다 여러 중대형 자금이 다양한 분야에 투입된 올해 시장환경이 더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벤처투자 시장의 성장세가 수년간 이어지면서 CVC의 몸집도 커졌다. 초저금리 여파로 투자처를 찾는 뭉칫돈이 시중에 넘쳐나는 점도 CVC의 몸집을 불려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기준 자기자본이 1000억원을 넘는 업체가 11곳까지 늘었다. 한국투자파트너스(약 3000억원), 포스코기술투자(약 1600억원), 미래에셋벤처투자(약 1600억원), 삼성벤처투자(약 1100억원),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약 1000억원) 등이 꼽힌다.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도 투자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체력이 된 것이다.

알토스벤처스 박희은 파트너는 “5년 전엔 국내 스타트업들이 200억원 넘는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벤처투자금이 커져 빅딜도 빈번해졌다”며 “이는 국내 투자 생태계 선순환을 구축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투자자 모시기 경쟁도 치열

CVC의 괄목 성장 덕에 CVC 전문가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11월 2021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롯데푸드 신임 대표 자리에 이진성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를 앉혔다. 지난해엔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었으며 올해 3분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하락한 롯데푸드를 구할 CVC에서 발탁했다는 것이 주변 인사평이다.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도 지난 3월 김광옥 전 한국투자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를 부대표로 선임했다. 그는 2015년에 카카오뱅크 설립에 참여했으며 한국투자증권에서 기업공개(IPO)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내년 카카오뱅크 상장 준비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도 지난해 4월 김동수 삼성벤처투자 미주지사장을 LG그룹 CVC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의 대표로 모셔왔다.

한편 CVC법은 업계의 기대와 달리 ‘반쪽’ 수정안으로 12월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은 ▷일반 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하는 완전자회사 형태로 CVC를 설립해야 하며 ▷부채비율은 200%로 한정 ▷외부 출자는 40%로 제한하고 ▷총수 일가가 CVC가 투자한 벤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1564호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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