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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투자자 20명이 진단한 ‘한국 경제’ | 액셀러레이터 10곳, VC 10곳 대상 온라인 설문]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펀더멘털 강해 

 

올해 투자 분위기 긍정적 의견 높아…’컬리’ 대규모 투자 유치에 관심 높아

흔히 스타트업(벤처) 투자자를 ‘씨 뿌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향후 10년 혹은 20년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미래의 대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성장하게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인 쿠팡·토스·야놀자 등이 탄생하는 데는 이들을 알아본 투자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정부 지원이 늘면서 투자업계에도 인재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투자사에서 모집공고를 띄우면 수많은 이력서가 쏟아진다고 합니다. 출신도 다양합니다. 기자부터 회계사, 금융권, 정부기관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투자업계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투자 규모도 매년 확대되고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월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벤처 투자 규모는 4조277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세계 4위권이라고 합니다. 투자사는 초기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 성장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로 구분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등록된 액셀러레이터는 11월 3일 기준으로 288곳이나 됩니다. VC는 9월 기준 165개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지가 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투자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하게 된 이유입니다. 한국 경제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고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최전선에서 분석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업계를 대표하는 액셀러레이터 10곳, VC 10곳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를 본지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12월 결산을 앞두고 바쁜 상황에서도 설문에 응해준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tvN에서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스타트업’의 한 장면. / 사진:tvN
‘최근 국내외 여건변화 등을 고려할 때, 경제성장률은 2020년 2.1%, 2021년 2.4% 수준을 나타낼 전망’ (2020년 2월)

‘최근 국내외 여건변화 등을 고려할 때, 경제성장률은 2020년 0- .2%, 2021년 3.1% 수준을 나타낼 전망’ (2020년 5월)

‘최근 국내외 여건변화 등을 고려할 때, 경제성장률은 2020년 1-.3%, 2021년 2.8% 수준을 나타낼 전망’ (2020년 8월)

‘최근 국내외 여건변화 등을 감안할 때, 경제성장률은 금년 중 -1.1%,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3.0%, 2.5% 수준을 나타낼 전망’ (2020년 11월)


한국은행이 정기적으로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의 흐름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2.1% 경제성장률을 예측했지만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기정사실로 했다.

경제전망보고서에서 말하는 2020년 ‘국내외 여건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전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됐다. 한국은행을 포함해 여러 기관은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수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이너스 성장률이 조금 수그러든 것이라고 할까. 2020년 한국 경제는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펀더멘털 강해


한국 경제의 악재 속에서 스타트업 투자업계 상황이 어땠을까?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투자 실적은 1조64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00억원 감소했다. 수치로 놓고 봐서도 투자업계 분위기는 위축됐다. 대부분 ‘어렵다’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자로서 올해 투자 분위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질문에 투자자 15명(75%)이 ‘보통이다’, ‘좋았다’라는 예상 밖 답변을 내놨다. ‘힘들었다’ 답변은 5명(25%)에 불과했다. 이 설문에 ‘보통이다’라고 답변한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투자는 가급적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 같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는 좀 더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올해 투자 분위기가 좋았다’라고 답변한 임정욱 TBT 공동대표는 “2분기에 투자가 위축됐지만, 3분기부터 회복됐다. 예년 못지않게 투자 분위기는 뜨거웠다”라고 분석했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도 “코로나19 여파로 다양한 기술요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경험과 실력을 갖춘 초기 창업자들이 시장에 많이 등장한 해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호민 스파크랩 대표는 올해 투자 분위기를 ‘힘들었다’고 평가하면서 그 이유를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기업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투자자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이유에 대해 “정부의 부양책이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권 대표는 “정부가 스타트업에 많은 투자를 했고, VC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민간이 주도하는 분위기로 가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투자 규모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년보다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투자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계법인 삼정KPMG이 지난 10월 22일 발표한 ‘2020년 상반기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본 유망 산업 및 기업 분석’에 따르면 200억원 미만의 투자가 총 145건(90.1%)을 차지해 올해 중소형 투자에 집중됐음을 보여준다. 200억~1000억원 사이의 중대형 투자는 15건(9.3%)이다.

올해 가장 주목한 투자 사례는 ‘컬리’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투자는 2건으로 나타났다. 신선식품 이커머스 쇼핑몰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지난 5월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 E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지난 5년간 컬리의 누적 투자유치액은 4200억원 규모다. 하반기 대형 투자 유치를 이끌어낸 곳은 토스를 서비스하는 핀테크기업 비바리퍼블리카였다. 지난 8월 1억7300만 달러(약 206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기업가치는 3조원이 넘었고, 창업 후 지금까지 누적 투자유치액은 6300억원에 달한다. 이 외에도 베스핀글로벌(900억원), 번개장터(560억원), 양극재 개발 스타트업 에스엠랩(520억원) 등이 규모 있는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떤 투자 유치에 주목했을까. 10명의 투자자가 컬리의 투자 유치 사례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는 “컬리는 이미 포화상태라고 생각했던 신선식품의 영역을 큐레이션이라는 테마로 영리하게 풀어내 고객을 사로잡았다. 이커머스에 익숙하지 않은 연령층을 이커머스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박민식 한국투자파트너스 상무는 “매출의 폭발적인 성장은 인정하지만, 수익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후속 투자성사 여부에 관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9년과 비교해보면 올해 투자 규모가 줄었다. 지난해 투자 금액을 공개한 405건 중에서 1000억원 이상 대형 투자가 이뤄진 것은 7건이나 된다. 위메프·야놀자·무신사·카플랫(렌트카서비스)·직방·컬리·샌드버드(모바일채팅 솔루션 개발)가 그 주인공이다. 위메프는 지난해 두 번의 투자를 통해 총 4700억원을 유치한 바 있다. 200억원~1000억원 사이의 중대형 투자는 36건, 10억원~200억원 미만의 투자 건수는 210여 건이었다.

지난해보다 줄어든 투자 규모에 대해 투자자 중 7명(35%)이 ‘보통이다’, 9명(45%)이 ‘예상보다 좋은 성과다’라고 답했다.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한 이는 4명(20%)에 불과했다.

김영덕 전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는 “200억원 이상 규모 있는 투자가 많은 올해가 더 긍정적이다”면서 “중간이 두텁다는 것은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예상케 한다”고 분석했다.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도 “잘되는 회사에 투자 쏠림 현상이 나타난 부분이 있지만, 이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특정한 산업이나 분야에 쏠림현상 없이 다양한 분야에 투자가 이뤄져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투자 분위기를 예상하는 설문에는 ‘좋을 것이다’(11명, 55%), ‘보통일 것이다’(5명, 25%)라는 대답이 많았다. ‘좋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의견은 4명(20%)에 불과했다. 내년에도 팬데믹이 영향을 끼치겠지만, 투자 분위기는 계속 나아지리라 예측한 것이다.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투자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어서 코로나19 리스크가 해소되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대·중견기업의 혁신에 대한 니즈와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 증가도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원태 김기사랩 파트너도 “백신 개발 소식으로 팬데믹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 심리와 투자 심리가 가파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 최영진·박정식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1564호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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