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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기숙사’ 건립을 허하라!] ‘호텔 개조 기숙사’ 논란 속 수도권大 기숙사 수용률 17.5% 그쳐 

 

지자체는 대학 요청 외면, “집값 떨어진다” 주민·임대업자 반발도 한몫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호텔을 개조해 기숙사로 공급하면서 정작 대학내 기숙사 건립은 외면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개한 ‘관광호텔 리모델링 임대주택’을 두고 청년 주거 복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꽉 막힌 대학교 기숙사 신축은 해결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곳에 힘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월 1일 호텔 리모델링 임대주택인 ‘안암생활’이 공개됐다. 안암생활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4가에 들어선 청년주택이다. 원룸 구조 122실 규모로 임대료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 수준이다. LH는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라고 밝혔다. 안암생활은 바닥 난방을 할 수 있고 방마다 개별 욕실을 갖췄다. 침대와 에어컨 등이 ‘빌트인’으로 제공된다. 김현미 전 국토부장관은 안암생활을 가리켜 “제가 가보니까 공유식당과 다양한 공유 공간이 있어 1인 가구에 굉장히 좋은 주거환경”이라고했다.

하지만 불붙은 전세난을 해결할만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호텔방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걸 대책이라고 내놓다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정의당은 논평을 통해 “21세기형 쪽방촌을 만들겠다는 것. 조롱거리가 되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서울 주요대학 기숙사 수용률 17%…지난해 신축은 ‘0’


문제는 호텔 개조 임대주택을 청년과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으로 보더라도 공급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2019년 교육부가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수도권 대학 117개 가운데 기숙사를 운영하는 곳이 91곳, 기숙사 수용인원은 11만8493명으로 수용률은 17.5%였다. 비수도권 대학기숙사 수용률(25.5%) 수준으로 올린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5만여 명이 머물 기숙사가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김현미 전 장관은 11월 19일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 지원방안’ 브리핑에 참석해 “호텔 리모델링을 통한 전세 공급은 이번 대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고 전체의 3%일 뿐”이라며 “호텔(활용 공공 임대)은 1000가구 정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청년을 위한 주거 대책이 사실상 생색내기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지역 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만 살펴봐도 청년을 위한 주택이 얼마나 부족한지 확연히 드러난다. [이코노미스트]가 2020년 서울 지역 재학생 1만명 이상 대학교 18곳의 재학생 수와 기숙사 수용인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숙사 수용률은 18%에 불과했다. 재학생 수는 33만6448명, 기숙사 수용 가능 인원은 6만706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3년(2018~2020년)간 이들 대학이 공급한 기숙사는 1600여 호실에 불과했다. 1인실 112호실, 2인실 579호실, 3인실 1호실, 4인실 360호실 수준이다. 이마저도 2020년엔 한 곳도 없었다. 2019년에도 서울대가 설립한 기숙사 960호실(2인실 300호, 4인실 90호)가 없었다면 기숙사 공급 실적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9년 ‘대학 기숙사 현황과 기숙사 건립 확대를 위한 과제’ 보고서를 통해 ‘지역 주민의 반발 문제’를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대학교 기숙사 건립이 추진되는 지역주민들이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고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대학 기숙사 건립에 대한 심의와 허가를 유보하는 경우가 있어 기숙사 건립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장학재단이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에 건립을 추진하던 연합기숙사는 성동구청과 주민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고 제3 지역으로 옮길 예정이다. 연합기숙사는 한국

장학재단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400억원을 지원받아 만들려던 지방 학생을 위한 기숙사다. 영광, 울주, 기장, 경주시 등 원자력발전소 소재 지역 출신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주거비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던 사업이다.

애초 한국장학재단은 한국주택도시공사(LH) 부지를 확보해 기숙사를 지으려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원자력발전소 소재 지역 학생을 위한 기숙사 500호실을 포함해 총 1000호실에 달하는 기숙사가 세워질 수 있었다. 국토부가 발표한 호텔 개조 임대주택과 비슷한 규모다. 학생들이 부담하는 기숙사 비용은 월 10만원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주민설명회 한 번 열지 못했다. 기숙사가 들어오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드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동구청이 한국장학재단에 다른 부지를 제안하며 해결되는 듯 했지만, 이번엔 서울시가 불허 방침을 내렸다. 대체 부지가 공원이어서 기숙사 건축을 허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한국장학재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충분히 지역 주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일조권이나 조망권 침해 논란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주변 임대사업자가 우려하는 피해도 큰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권을 이야기하는 주민들과 학생 복지를 이야기하는 장학재단 입장에 간극이 있었다”며 “결국 성동구 기숙사 대신 제3 지역으로 기숙사를 옮기는 것으로 거의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 반대에 기숙사 건립 난항, 피해는 학생 몫

고려대도 2014년부터 1100여 명 규모의 기숙사를 건립하려고 계획 중이지만 5년 넘게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성동구와 마찬가지로 성북구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구청에서도 기숙사 건립과 관련한 건축 허가를 반려하고 있다. 고려대 4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학생들이 임대사업자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대학이 원룸을 임대해 다시 기숙사로 재임대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2017년 원룸형 기숙사 ‘International House D’ 11실을 확보했다. 숙명여자대학교는 2018년 숙명여자대학교 동문회관을 임차해 1인 6호실, 2인실 6호실, 3인 1호실을 마련했다. 국민대학교는 2019년 원룸생활관 1인실 85호를 빌렸다. 하지만 임차한 기숙사의 월 이용료는 비싼 편이다. 한국외대의 원룸형 기숙사는 69만2000원이었다. 숙명여대가 학교 안에 직접 지어 운영하는 국제2관 기숙사는 1인실 38만5000원, 2인실 기준 26만원 수준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관계자는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나서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여러 대학이 단기간에 기숙사를 공급하면 되는 근본적인 대안은 외면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65호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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