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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체 신년사는 왜 호소문이 됐나] ‘3%룰’ 등 규제 일변도 졸속입법에 기댈 곳 사라진 기업 

 

거대 여당 체제 ‘규제 공세’ 지속… 야당마저 反대기업



2021년을 맞는 경제단체장들의 신년사는 ‘호소문’에 가까웠다. 규제 완화는 경제단체장들이 역설하는 단골 주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절박함의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2020년 연말을 강타한 무더기 기업규제 입법은 기업들을 ‘공포’로 밀어 넣었다.

다른 법안은 차치하더라도,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에 대한 경영계의 우려가 심각하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이 불러올 파장은 공포에 가깝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의결권 제한’으로 상장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사냥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경영계에선 이번 입법 과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처리된 것이라고 보고 더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법안이 경제계에 미칠 중차대한 영향보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졸속으로 처리되는 상황이 2021년에도 반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재계에선 “상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제·개정 과정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른 규제 법안 처리 과정에서 만큼은 이번과 같은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3%룰’에 ‘기업 사냥꾼’ 놀이터 될까 우려


▎2020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경영계를 패닉으로 . 상법 개정의 핵심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3%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틈이다.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낸 틈이지만 이를 파고드는 건 결국 외국계 헤지펀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개정된 상법은 기업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감사위원 중 적어도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이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토록 했다. 상장사의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이 가진 주식 중 3%만큼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전까진 의결권 제한이 없는 투표를 통해 선임된 이사 중에서 3%룰에 따라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일괄선출’제도에 의해 회사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받는 상황에서 감사위원 1명을 분리 선출하게 되면 투기자본이 활개를 칠 틈을 열어주는 게 된다. 회사의 장기적 발전방향과는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 악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밀 유출’이다. 핵심 기술이 될 수도 있고, 경영활동의 핵심 내용일 수도 있다. 악의적 목적을 가진 감사위원이 우리나라 정부가 인정하는 ‘합법적’ 산업스파이가 된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019년 현대자동차 주총에서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수소전지부문 경쟁사라 할 수 있는 발라드파워시스템사 회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바 있다. 발라드파워시스템은 캐나다 회사로 분류되지만 최대주주는 중국의 웨이차이다. 결국 이 안건이 승인됐다면 현대차의 핵심 기술인 ‘수소전지’와 관련 정보들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었던 셈이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에도 중국 전기차 업체인 파르마 오토모티브의 최고경영자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당시 이 안건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사외이사 선임단계에서 부결됐는데, 만약 엘리엇이 현재 분리선임하는 감사위원으로 이 후보를 추천하고, 3%룰이 적용됐다면 승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펀드의 경우 지분을 원하는 대로 쪼개 자신의 지분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데, 최대주주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3%룰의 큰 맹점이다.

헤지펀드의 공격은 법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가시화되고 있다. 12월 14일 미국계 펀드 ‘화이트박스’가 LG그룹 지주사인 ㈜LG에 “LG그룹의 계열분리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 화이트박스는 엘리엇 출신인 사이먼 왁슬리가 이끄는 펀드로, ㈜LG의 지분 일부를 3년 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게 경영계의 시각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이번 상법 개정의 영향으로 기업들이 외부 주주가 내세우는 감사위원을 선임하게 될 가능성이 적어도 4.6배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 교수는 “혹자는 사외이사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데, 이 한 명이 사사건건 자료 내 놓으라는 등 딴죽 걸기 시작하면 이사회는 산으로 가기 십상”이라고 우려했다.

6개월 졸속 강행, ‘보완책 약속’ 안 지킨 당정

경제계에선 상법 시행령 제·개정 과정에서라도 이런 우려를 줄일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의 규제 법안의 입법 움직임을 보면 경제계의 우려는 배제한 채 기업 규제 강화에만 속도를 낼 것이란 우려가 크다.

코스피 상장기업 한 관계자는 “글로벌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에 우리나라 제조 기반 기업들은 리더십을 통해 투자와 재원을 집중하고 빠르게 미래의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인데, ‘경제민주화’라는 이상에 빠져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들이 난무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은 입법 예고부터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불과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같이 일사천리로 법 개정이 진행된 것은 당·정·청 차원의 밀어붙이기와 문재인 정부 ‘경제 인사’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지난 20대 대선부터 ‘경제 민주화’를 주장했던 김종인 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영향력은 야당의 반대 동력도 무르게 만들었다.

법무부는 2020년 6월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여당은 입법 성과를 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21대 국회에서 여당 박용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각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정부안과 유사 법안을 중복 발의하면서 현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기업 규제법 통과를 위한 드라이브는 점차 더 강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정경제3법 처리에 협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법의 조속 처리를 강조한 건 지지율 하락에 따른 레임덕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기업 규제 법안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과 같은 ‘정치법안’으로 취급하며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법 통과 과정에서 경제계는 예상되는 우려를 전달하는데 힘을 쏟았다. 10월 6일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을 비롯한 기업규제 3법 간담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외국의 헤지펀드가 한국기업을 노리도록 틈을 열어주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기업계의 우려를 듣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보완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각각 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형식적인 ‘완화’에 나섰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조처에 불과하다는 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실제 개별 3%를 적용하더라도 현재 국내 대다수 시총 상위 기업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가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한 자리 수에 불과하다.

결국 의회에서 법안 통과는 일사천리였다. 여당 단독으로 법사위 법안소위 일정을 진행한데 이어 12월 8일 상법 개정안이 처리된 법사위 전체회의 마저도 여당 단독으로 이뤄졌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사실상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균형 사라진 국회, 야당마저 ‘재벌 규제’ 일변도

경제계 관계자는 “야당이 20대 국회 때처럼 총력 저지에 나섰더라면 현재 여당의 ‘일방통행’식의 법안 처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야당의 저지가 없었던 건 2020년 9월 취임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1987년 개헌 당시 119조 2항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개념을 반영한 장본인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 펴낸 자신의 저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경제 민주화는) 지나친 탐욕을 억제해 특정 거대 경제세력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차단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국 경제의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재벌 기업으로 돌리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글로벌 스탠다드’만큼의 규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전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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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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