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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 심리학 공간] 당신의 ‘wanting’과 ‘liking’은 무엇입니까? 

 

wanting과 liking 함께 작동하는 게 최선… 일상에서 liking 얻는 방법 찾아야

▎코로나19로 시민들의 우울증이 커진 2020년 7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랩핑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소녀들이 감상하며 걷고 있다




어김없이 새해가 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시간은 정확히 흘렀고 냉정하게 다시 1월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시간과 작별하고 새롭게 살 것을 다짐하는 순간이다. 좀 더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wanting과 liking을 구분하는 삶. 행복을 위해 기억해야 할 몇 가지 ‘마음 지침’을 꼽으라면 이것부터 떠올려야 할 것 같다. wanting과 liking은 서로 다른 경험이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니, 말장난 같지만 뇌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둘 사이의 구분이 더 선명해진다. 하나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이다. 자신의 욕망에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제임스 올즈와 피터 밀너의 실험을 살펴보자. 연구자들이 쥐의 뇌 한 부분을 전극으로 자극했다. 그럴 때마다 쥐가 엄청난 쾌락을 느끼는 듯 했다. 연구자들은 그 뇌 부위를 ‘쾌락 센터(pleasure center)’라고 불렀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연구자들의 눈에는 쥐가 어떻게 해서든 한 번이라도 더 전기 충격을 더 받으려고 애간장을 태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번엔 레버를 설치해서 쥐가 그것을 누를 때마다 해당 영역이 자극되도록 해놓았더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전기 충격을 즐기는 변태 쥐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기절할 때까지 미친 듯이 레버를 눌러댄 것이다. 심지어 화상을 입도록 실험장치를 꾸며 놓았을 때도 발이 너덜너덜해져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레버를 눌러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전극이 꽂혀있던 부위가 쾌락 센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쥐들이 경험한 것은 즐거움이나 만족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저 ‘감질 나는’ 상태였다. 몇 번만 더 레버를 누르면 이제 곧 금방이라도 행복해질 것만 같은, 그러나 실제로는 즐거움이 없는, 그저 만족감을 갈망하는 상태였을 뿐이다. 쥐의 뇌에서 자극된 부분은 ‘모티베이션 센터(motivation center)’였다. 거기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된 것이다. 도파민은 행동을 부추기는 물질이다. “이 레버 보이지? 이걸 막 눌러. 그럼 행복해질 거야.”

욕망으로 가득한 wanting, 행복과 거리 멀어

뇌는 보상의 기회를 포착하면 도파민을 분비한다. 욕망을 갖고 무엇인가를 추구하게 만든다. 도파민 작용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제다. 발전의 기회를 포착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화를 추구하며 살 수 있게 해준다. 도파민 회로가 망가지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맛있는 음식이나 매력적인 이성이 눈앞에 있어도 원하는 마음이 없으니 굶어죽을 게 뻔하다. 자손도 남기지 못한 채 말이다. 우리가 열망을 품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도파민 덕분이다.

그러나 도파민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곧 행복을 줄 거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wanting이다. 쥐들의 상태는 wanting만 있고 liking이 없는 상태였다. 바라고 원했으나, 좋아하면서 즐길 수는 없는 상태였다. 욕망으로 가득 차있을 뿐 행복하지 않았다.

심리학자 켄트 베리지에 따르면 wanting은 도파민(dopamine) 시스템이, liking은 오피오이드(opioid) 시스템이 담당한다. 이 두 회로 중 하나를 차단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욕망이 어떻게 행복과 구분되는지 명확해진다. 쥐의 도파민 회로를 차단하면 음식을 옆에 두고도 원하는 마음이 없어 굶어죽는가 하면, 오피오이드 회로가 차단된 쥐는 원해서 먹은 음식을 즐길 줄 모른다.

wanting과 liking이 따로 노는 인생은 안타깝다. 모티베이션 센터에 계속 자극을 받는 쥐처럼 즐거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이 아닌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을 얻으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직업·지위·관계·명품… 그게 무엇이든 원했던 만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파민 회로가 오랫동안 활활 타올랐다고 해서 그만큼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wanting과 liking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뉴스·유튜브·인스타그램 바다에 빠져,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만 봐야지’ 하면서 어느새 다음 기사나 영상을 클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liking은 없고 wanting만 있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가. “다음 이야기는 재미있을지도 몰라.” 도파민의 속삭임에 이끌려 행동했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안다. 투자한 시간에 걸맞는 행복감이 없었다는 것을.

올즈와 밀너의 실험을 심리학자 로버트 히스가 인간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실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했다. “미친 듯이 버튼을 눌러대면서 느낀 것은 만족감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더 강박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도파민이 주는 것은 불안을 동반한 기대감이다. 조직의 승진 사다리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 30평대 아파트에서 40평대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마음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누구든 도파민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의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닌, 실제적 보상을 누리는 한 해를 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어쩌면 우리 모두 그 어느 때보다 wanting과 liking이 조화를 이루는 일상을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많은 일이 멈췄지만 성장이 멈춘 것은 아니다. 불안하고 외롭고 고요한 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확실히 달라졌다. 바쁜 일상이 멎었을 때, 우리가 체득한 것은 아마도 ‘욕망’과 ‘행복’을 구분하는 예민함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만큼은 자란 것 같다.

자아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liking의 힘

재택근무로 업무에 필수적인 요소들과 부수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체면보다 내실이 더 중요하고 인맥관리보다 자신의 일상적 경험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이 중요해졌다. 일하고 살고 즐기는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는 정장보다 맛있는 음식, 향초, 피부에 부드럽게 닿는 실내복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을 샀다. 화초를 기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변화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모두 liking을 부르는 행동이다.

기꺼이 피와 땀, 때로는 인생 전체를 투자해 성취하고픈 일을 가진 사람은 아름답다. 그러나 끝을 모르는 wanting 상태로 liking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 돌아보자. 우리의 삶에서 욕망과 행복은 얼마나 함께, 혹은 얼마나 따로 움직이고 있을까?

※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1568호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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