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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업서 맞닥뜨린 현대車-현대重] 정의선-정기선, 로보틱스·수소 사업서 맞설까 손잡을까 

 

‘협동로봇’에서 맞붙은 현대로보틱스-현대위아… 수소 분야는 촘촘한 협력 고리

▎기아자동차 인도 공장에서 현대로보틱스의 산업용 로봇이 차체를 만들고 있는 모습.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점찍은 미래 사업 영역이 중복되면서 재계 안팎에선 범(凡)현대가인 이들이 경쟁할지, 협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0년대 초 이른바 ‘왕자의 난’을 통해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두 회사는 그간 자동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사업영역을 설정했고, 그 외 사업영역에서도 최대한 중복을 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3세 경영 시대가 열리며 찾은 ‘미래 사업’ 분야에서 두 회사의 사업영역이 일부 중복된다.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를 계획대로 전개하기 위해선 두 기업집단이 협력 혹은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 ‘로보틱스’ 드라이브


두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살펴보면 두 가지 공통 키워드가 도출된다. ‘로보틱스’와 ‘수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9년 핵심 사업포트폴리오에 ‘로보틱스’를 더했다.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가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로 구성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 사실 그 이전부터 현대차그룹 내부에선 로봇 분야 사업 추진이 검토되고 있었다. 이후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드라이브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로 본격화됐다.

현대차그룹이 로보틱스 분야에서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현대로보틱스’다. 산업용 로봇을 중심으로 현재 국내 로봇 시장 1위 업체다.

현대로보틱스는 조선사업 중심인 현대중공업에 있어서 꾸준히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일컬어졌다. 본래 현대중공업 소속 사업부였다가 2017년 사업분할을 통해 독립법인으로 나왔고, 현재 현대중공업지주의 모태가 됐다. 지난해 5월에는 현대중공업지주에서 다시 분리돼 독립사업부로 출범했다.

현대로보틱스를 다시 독립법인으로 출범시킨 것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로보틱스 사업을 별도로 분리해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2024년까지 1조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로보틱스는 출범 직후 KT로부터 500억원 규모의 Pre-IPO 투자를 유치했고, 빠르면 2022년 IPO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현대로보틱스의 성장 계획에 있어 가장 큰 암초는 로보틱스 사업을 추진하는 현대차그룹의 계획이다. 물론 현대차그룹 차원의 로보틱스 전략은 아직 방향성이 뚜렷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현대차의 인베스터데이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로보틱스 분야를 2025년까지 투자를 지속하는 신성장 사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2025년까지는 수익을 내는 사업이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진행하는 로보틱스 사업이 현대차를 중심으로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 역시 로봇산업 진출을 공언한 상태다. 현대위아는 2018년 회사 내에 로봇개발팀을 신설하고 로봇 분야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대위아의 로봇산업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위아는 그 전신인 기아기공 시절 산업용 로봇 시장에 진출했던 이력이 있다. 기아기공은 현대중공업의 로보틱스 사업부와 경쟁관계였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기아기공이 현대차그룹으로 합류한 뒤 성장 과정에서 공작기계 수요에 집중하기 위해 산업용 로봇에서 사실상 손을 놓았다”며 “다만 완성차 시장의 성장성이 더뎌지고 밸류체인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로봇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우리의 로보틱스 전략은 그룹 차원과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으며, 스마트 팩토리와 연계한 자동화 로봇에 집중돼 있다. 협동 로봇 시장에서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 상황에서 현대위아의 로봇 경쟁력 자체가 현대로보틱스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두 회사의 사업영역은 부딪힌다. 현대위아가 ‘스마트팩토리’를 근간으로 로봇에 집중하는 전략이라면, 현대로보틱스는 로봇 경쟁력을 바탕으로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해나가려 한다. 두 회사 모두 ‘사람과 함께 일하는’ 협동로봇이 기존의 로봇 시장을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고 협동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수요다. 현대로보틱스의 가장 큰 매출은 용접용 로봇 등 ‘산업로봇’에서 나오는데 이 분야의 가장 큰 고객사가 현대차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울산·아산공장은 물론 중국(베이징)·체코·인도·슬로바키아 공장 등에 현대로보틱스의 용접로봇, 핸들링로봇 등을 두루 사용한다. 2022년 완공 예정인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에도 현대로보틱스의 산업용 로봇이 대거 들어간다. 이밖에 현대모비스 등도 현대로보틱스의 고객사다. 현대차그룹 소속인 현대위아가 향후 로봇산업을 본격화한다면 현대로보틱스로서는 가장 큰 고객을 잃을 수 있는 셈이다.

단기적 수요 문제 발생, 장기적으론 독자영역 갈 것


▎현대차·현대모비스· 현대건설기계가 지난해 2월 수소연료전지 건설기계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다른 포트폴리오가 안정적이지도 않다. 현 상황에서 현대로보틱스의 포트폴리오 중 두 번째는 ‘클린용 로봇’으로 불리는 디스플레이 운반 로봇으로 삼성과 LG디스플레이를 주 고객사로 해왔는데, 최근 몇 년간 업황이 좋지 않아 많은 매출을 내지 못했다.

실제 현대로보틱스의 최근 실적은 완성차와 디스플레이 투자 위축 속에서 수년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016년 2548억원 수준이었던 현대로보틱스(당시 현대중공업 로보틱스 사업부) 매출은 독립법인으로 분리된 2017년 2745억원으로 성장하는 듯 했지만 2018년 2666억원, 2019년 2634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물론 현대로보틱스가 추진하는 사업이 산업용 로봇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로보틱스의 2024년 1조원 매출 구상에는 산업용 로봇의 글로벌 시장 확대와 스마트팩토리는 물론이고 물류·병원 등의 스마트솔루션과 B2C 서비스로봇 등이 포함된다.

이런 구상은 현대차그룹 차원의 로보틱스 전략과 상충된다. 먼저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은 물류로봇 ‘픽’을 통해 상업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 현대차그룹의 향후 로보틱스 사업의 중심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로봇’에 방점이 찍힐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로봇산업계에선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로봇’이라는 큰 틀에 진출하는 것은 맞지만 직접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로봇산업협회 관계자는 “두 회사가 당장의 제조 로봇 시장에서 일부 사업이 중복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그림을 본다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로보틱스는 단순히 하나의 사업영역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사업 영역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수많은 기업들이 시장 참여단계인 만큼 단기간엔 경쟁구도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전문적이고 특화된 별도의 시장으로 구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소경제 앞당길 ‘협력 체계’는 가시화

두 회사는 수소 분야에서도 만났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미래위원회’를 설립하고 정기선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미래위원회는 바이오와 AI와 함께 수소 분야에서의 새 사업모델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이 IPO(기업공개)를 추진한다고 밝히며 “연료전지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M&A나 지분 매입을 포함한 기술 투자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수소연료전지 관련 사업 진출은 국내 수소경제 대표주자인 현대차그룹과 사업영역이 또 중첩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로봇 분야와는 차이가 있다. 이미 사업 추진 내용에서 협력의 고리들이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수소 관련 산업에 진출하는 두 회사는 촘촘하면서도 중첩되지 않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차그룹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대형 액화수소 운반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두 회사는 최근 한국선급과 라이베리아 기국으로부터 2만㎥급 액화수소운반선의 기본 설계 도면에 대한 기본인증(AIP)을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

이 프로젝트는 수소 운송 사업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현대중공업 조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액화수소 안전 보관·운송 시스템과 연료전지를 활용한 수소 증발가스처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현대미포조선은 선박 기본 설계를 맡았다. 현대글로비스는 이 선박을 운용해 액화수소 운송사업에 나서는 그림이다.

수소 분야에서 이들이 낼 시너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는 수소 충전소 확대에 나서고 있다. 수소연료 유통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충전인프라 확대는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차 보급과 연결된다.

또, 현대건설기계는 현대차·현대모비스와 함께 지난해 ‘수소연료전지 건설기계 공동개발협약’을 맺고 수소연료전지로 구동하는 건설기계도 개발 중이다. ‘수소연료전지 지게차’는 이미 개발돼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전생애주기(LCA) 배출량 감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라 시장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71호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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