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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한국 온 美 국무·국방장관이 던진 메시지] “나와 손잡을텐가? 그들과 함께할텐가?” 

 

美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남기고 간 난제 네 가지

▎3월 18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 리셉션 공동기자회견 (왼쪽부터)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17~18일 한국을 방문하고 떠났다. 길지 않은 실무 방문이지만 충격은 만만치 않다.

특히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전용기로 쓰이는 핵전쟁을 지휘하는 공중지휘통제기 E-4B를 타고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를 찾았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북한의 인권과 중국의 홍콩 압박, 신장위구르 무슬림 박해 문제를 내놓고 거론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타고 온 전용기다. 17일 블링컨 국무장관과 시차를 두고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그는 ‘최후 심판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라는 별명 붙은 미군 공중지휘통제기 E4B 나이트 워치를 타고 왔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 영부인, 국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할 것 없이 해외를 다닐 때는 공군기를 타고 다닌다. 대통령은 보잉 747-200을 개조한 보잉 VC-25인 에어포스 원을, 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국무부 장관은 보잉 C-32인 에어포스 투를 이용한다. 미국 각료와 의회 지도자들이 출장 때 드물게 에어포스 투를 이용하기도 한다. C-32는 대통령이 방문하는 공항의 활주로가 대형기인 보잉 747이 착륙하기에 부적절한 경우 대통령이 탑승해 에어포스 원이 되기도 한다.

미국 국방부 장관이 타고 다니는 E-4B 나이트워치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항공기다. 보잉 747-200B를 개조해 국가공중작전센터로 운용하는 공군기다. 미국이 단 4대를 운용하는 이 비행기는 한 마디로 ‘전시에 공중에 떠있는 미국’으로 기능한다. 대통령·국방장관 등 핵전쟁과 중대 재해가 발생해 지상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경우 국가지휘권한(NCA)을 보유한 고위 인물이 탑승하고 공중에서 핵전쟁을 지휘한다. 핵전쟁이나 대규모 재해로 지상에서 군을 지휘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냉전의 유물이다. 위성통신으로 공중에서 전 세계 미군과 교신하며 지휘·통제할 수 있다.

운용하는 4대 중 1대 이상이 대통령 주변에 항상 대기한다. 유사시 에어포스 원 대신 E-4B에 옮겨 타고 핵전쟁을 지휘한다. 해외 순방 시에도 반드시 1대가 에어포스 원을 수행한다. 에어포스 원과 다른 공항에 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외부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현재는 국방부 장관이 해외 출장 때도 이 비행기를 주로 사용한다. 동행 기자단도 탑승한다. 동생 기자단 탑승은 군사과학기술에 민주주의를 결합한 모습이다.

(1) 함께 손잡고 북·중·러에 공동대응


▎(왼쪽부터)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국방·국무 장관이 3월 16일 일본에서 모테기 토시미츠 일본 외무 장관, 키시 노부오 국방 장관과 공동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이 기종은 미사일을 회피하는 요격보호 기능은 물론 특수물질로 코팅돼 핵폭발 때 나오는 전자기 펄스에 대한 방호 능력이 있다. 핵폭발이 이뤄지면 강력한 전자기가 나와서 주변 전자기기를 못쓰게 한다. 핵폭발 없이 전자기파만 나오는 EMP탄도 있다. 하지만 E-4B는 핵폭발이나 EMP탄에도 영향 받지 않고 비행하며 군사 작전을 지휘 통제할 수 있다. 강력한 생존력의 군용 비행기다.

E-4B가 무서운 것은 공중에서 지상과 공중의 모든 핵미사일 발사를 지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핵무기의 운반수단으로 3가지를 꼽으며 이를 핵무기 삼지창이라고 부른다.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투하용 폭탄이나 순항 미사일을 장착한 전략폭격기가 그것이다. 이 셋을 모두 갖춰야 비로소 핵보유국으로 인정 받는다. 지구상에서 이 셋을 모두 보유한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했지만 핵탄두를 먼 거리에 투사할 수 있는 운반체는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핵보유국으로 부르거나 거기에 준하는 국제적인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 이유다. 이스라엘도 핵탄두를 만들어 보관하는 것을 의심받고 있으며 일부에선 이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거리 운반수단이 없어 핵보유국으로 여기기 어렵다.

E-4B는 강력한 통신 기능으로 지상은 물론 공중과 준우주에 떠다니는 인공위성, 그리고 수중에 있는 잠수함과도 교신이 가능하다. 핵전쟁을 지휘할 수 있는 힘은 강력한 생존력과 통신 기능에서 나온다.

이 비행기는 1회 급유 시 1만1000㎞를 비행할 수 있으며 공중급유를 받으면 사흘까지 공중에 계속 머물 수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국과 미군 지휘부, 그리고 국방부장관의 상시 전쟁 대비태세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국방부를 비워도 문제 없도록 대비를 도와주는 도구다.

오스틴 장관이 이런 비행기를 타고 동아시아에 온 것은 한국에서 DMZ 건너 북한과 서해 건너 중국에 보이지 않는 경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E-4B는 중국이 보유하지 못한 미국의 가공할 핵전력이다.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한국 방문에 맞춰 중국은 서해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군사훈련으로 무력 시위를 했다. 하지만 중국의 항모는 아직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구식뿐이다. 원자력을 이용하는 초장거리 운항 항모가 아니다. 그뿐이 아니라 규모도 작아 스키점프식 짧은 활주로만 장착돼 있다. 영국이 2차대전 뒤 비용 문제로 개발해 옛 소련도 채용한 중형 항모와 스키점프식 활주로다. 미국이 불안해할 수 있는 수준과 거리가 멀다.

(2) 벌어진 한·일 관계 개선과 협력 도모


▎한·미 외교·국방 장관회의가 열리는 3월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미국 바이든 정부의 안보협력체 쿼드플러스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스틴 국방장관이 타고 온 E-4B가 한국에 착륙해 주기한 평택 오산 공군기지에서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끝 웨이하이까지는 440㎞, 베이징까지는 970㎞의 거리다. E-4B의 최고 속도로 비행하면 1시간 미만의 거리다. 이 비행기는 중국 전역의 통신과 군사적 움직임을 모두 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 출범 이래 외교를 맡는 국무부와 군사를 담당하는 국방부의 수장이 동시에 해외 수방에 나선 것은 일본과 한국이 처음이다. 눈에 확 띄는 것은 블링컨 장관이 지난 17~18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 2+2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강력하게 북한과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블링컨 장관은 서울에서 북한의 인권 탄압과 중국의 홍콩 압박, 그리고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박해를 동시에 거론했다. 모두 북한과 중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발언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중국의 아킬레스건인과 동시에 이 두 나라가 국제사회와 서로 생각이 철저하게 다른 부분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블링컨 장관이 한국에 중국의 반인권적 행동과 관련해 동맹으로서 공통된 접근을 촉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북한 인권은 물론 홍콩·신장의 인권 탄압을 공개적으로, 구체적으로 입에 올리며 한국에 공동 대응을 요구한 건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외교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한국의 동맹인 미국은 앞으로 전례가 없는 일을 벌이며,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한국에 요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2+2 본 회담에서도 북한·중국의 인권에 대한 한국의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북한·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인권문제를 대놓고 거론했다는 것은 미국이 힘과 동맹을 바탕으로 ‘인파이터 외교전’ 시대를 개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에 할 말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면서 한바탕 힘과 논리, 그리고 의지의 대결을 벌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말로만 힘을 내세웠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실제로 그 힘을 앞세워 국제 관계를 좌우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전 세계에 ‘세계의 경찰’인 미국이 돌아왔음을 서울에서 선포한 셈이다. 향후 미국의 외교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미·중 간의 대결뿐 아니다. 인권과 사이버전, 러시아 야권지도자인 나발니 독살 미수를 둘러싼 러시아 정부와의 대결, 중동에서의 민주주의 확산, 이란 핵 문제 등 다양한 국제 문제를 놓고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3) 바이든 안보협력체 ‘쿼드플러스’에 동참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미국을 축으로 하는 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와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 유사 시장경제 체제가 대결을 버리는 신냉전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각국의 대응에 따라 강대국들이 국익을 두고 각축하면서 전 세계가 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의 달라진 위상이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 희생양이 됐던 한국과는 국력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19세기 말 경제력도, 군사력도, 동맹도 없이 허망하게 나라를 잃었던 때와 다르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의 부유한 국민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위상은 국방과 외교의 소중한 자신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든든한 동맹인 미국이 있다. 미국을 바탕으로 인도나 호주, 영국, 유럽연합(EU)의 다른 나라들과 힘을 합칠 수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동맹국인 미국의 종속 변수였던 한국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한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종속 변수가 아니다. 수많은 나라가 한국의 판단과 발언을 듣고 싶어 한다. 한국과 손잡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를 만들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주목거리는 블링컨 장관이 한국에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쿼드(Quad:미국·일본·인도·호주 안보 협의체) 확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이런 요구는 미국이 쿼드의 다른 국가는 물론 EU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국가들과 상당 기간 조율한 내용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글로벌 전략이 이미 확정되고 하나씩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간의 불편한 관계가 미국 전략의 걸림돌로 등장한 셈이다.

이는 단순하게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요구 수준을 넘어선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더 이상 유지하지 말고 쿼드 확대를 받아들이라는 적극적인 요구다. 동맹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보 협력을 할지 그 울타리에서 나와 황량한 벌판으로 나갈지를 결정하란 이야기다. 이는 대북 문제에서도 현 정부의 기조와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제대로 살펴야 할 때다.

(4) 조건 없는 북한 비핵화 압박에 협력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미국에 북한과 정상회담을 통한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비핵화에 대한 용어나 개념도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두 장관이 예방한 자리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빈틈없이 공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재배치를 배제하는 것은 물론 미군 철수까지 포함한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와 동일하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블링컨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비핵화의 대상은 북한이며 주한미군이나 한국의 안보는 이를 위한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북·미 합의 계승’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싱가포르 북·미 합의를 고려해야 한다”며 계승을 시사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워싱턴에선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외교 실패’로 평가 받는다. 이는 단순히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이상 살릴 불씨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는 줄기차게 바이든 행정부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북미 정상회담의 재개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로 미국은 북한과 정상간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새로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기획을 생각할 때다. 고장난명이란 속담이 떠오른다. 한 손으로 어떻게 소리를 낼 것인가.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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