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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코로나 시대의 국제외교 질서] 코로나 팬데믹이 만든 ‘新 냉전’ 기류 

 

국가 간 백신 불균형 해소를 위한 연대가 국제관계 재편의 시험무대 될 전망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페루 리마의 한 공립병원에 쌓여 있는 중국 시노팜 백신 빈병들. / 사진:AP=연합뉴스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武漢)에서 첫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팬데믹(Pandemic·전세계 대유행)’ 으로 선언한 지 3월 11일로 1년을 맞는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전 세계에 확산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월 22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를 선언한 데 이어 3월 11일 팬데믹을 선포했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월 30일 1만 명을 넘고 2월 4일 10만 명을 넘어서는 등 확산이 빠르게 진행됐다. 그럼에도 WHO가 팬데믹 선언을 미루다 확진자가 14만9313명에 이른 3월 11일에서야 이를 선포한 것을 두고 전 세계적으로 비난이 쏟아졌다. 코로나19 최초 확산 국가인 중국을 비호하느라 WHO가 전 세계에 신속하게 경고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난의 핵심이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전 세계는 변했다. 문제는 변화의 양상이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인적 이동이 제한되면서 외교도 상당한 제약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 방역과 백신 확보를 위한 국가별 고립과 국가주의, 자국민 우선주의가 강화됐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1년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주의가 극대화한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국제사회와의 소통이 중지됐으며 미국에서 열기로 했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은 유야무야됐다.

그런 의미에서 서방의 핵심적인 외교협의체인 G7이 지난 2월 29일 화상 회담을 열고 코로나19 사태 개선을 위한 개도국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팬데믹으로 얼어붙었던 국제협력과 글로벌 외교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발신하는 실질적인 무대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를 발표했던 세계보건기구(WHO)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5월 단독으로 탈퇴했던 이란핵합의(JCPOA)에도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G7 정상들은 올해를 다자주의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동맹이나 파트너 국가들과의 대화와 소통, 협력을 무시하고 자국 이익만을 위한 독자 행동을 일삼으면서 국제 질서에 악영향을 줬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국제관계를 설정하겠다는 의지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바이든에게 화답한 의미도 있다.

개도국 백신 지원으로 미국의 국제사회 복귀 선언


▎2021년 2월 2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국제공항에서 중국에서 온 시노백 코로나19 백신을 옮기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중요한 것은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이나 결의다. 눈에 띄는 G7의 행동은 이날 화상 정상회의 뒤 발표한 성명이다. G7 정상들은 백신을 공동 구매·배분하기 위한 국제 협력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에 지원금을 75억 달러 더 늘겠다고 밝혔다. 놀라운 것은 미국이 이 가운데 40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독일이 15억 유로 추가 지원을 약속했고 유럽연합(EU)은 지원을 지금까지의 2배인 10억 유로로 확대하겠다고 각각 밝혔다.

코백스는 유엔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와 가난한 나라의 백신 예방접종 증진을 목표로 하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그리고 백신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는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이 주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공동구매·배분 프로젝트다. 코백스는 올해 안에 20억 회분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중진국과 개도국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자금 부족을 겪어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코백스가 지금까지 확보한 백신은 7억 회분에 그친다.

이런 코백스를 미국이 대규모로 지원하기로 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이 국제사회에 돌아온 신호탄을 쏜 셈이다. 트럼프가 외쳤던 미국 제일주의에서 벗어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현재 부자 나라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가난라는 나라까지 신속하게 확대될 수 있도록 미국이 나선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신한 셈이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회의를 시작하면서 “코로나19는 세계적 전염병이기 때문에 세계가 모두 백신을 맞도록 해야 한다”며 “남는 물량은 가난한 국가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로 얼어붙고, 코로나 방역과 백신 확보로 여유가 없었던 것은 물론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했던 국제사회에 외교가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외교 회복의 핵심에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견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가 만든 신냉전의 기류다. 서방국가 정상들의 회의인 G7이 가난한 나라에 대한 백신 지원을 거론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지원을 밝힌 것은 팬데믹에 앞서 전 세계적인 연대와 공평한 백신 분배로 어서 빨리 팬데믹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엔 중국 견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EU와 미국이 아프리카에 백신을 보내지 않으면 중국과 러시아가 나설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 증거다.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 외교를 펼치기 전에 서방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이날 회의에서 중국 인권 문제도 다뤄졌다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서방국가들은 코백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 외에 백신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아직 전 세계적인 백신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폐쇄적 술책에 G7 세계보건협약으로 대응


▎중국산 시노백 코로나19 백신. / 사진:AP=연합뉴스
G7 정상들은 향후 코로나19 같은 공중보건 위험에 대비해 조기 경보와 자료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세계보건협약 체결’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초기에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전 세계가 적기에 코로나19 팬데믹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것과 중국이 WHO 현지 조사단에 자료제공을 거부한 것과 관련이 있는 사안이다.

국제 외교 복원의 핵심은 코로나19 탈출을 위한 국제사회 협력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2월 20일까지 전 세계의 코로나 백신 접종은 최소 107개 국가와 자치령·특구 등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2억 회분 이상이 접종됐다. 이 가운데 약 45%가 G7회원국에서 이뤄졌으며, G7은 전 세계 약 78억 인구의 약 10%만 차지할 뿐이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개발협력위원회(OECD)의 27개 회원국은 한국이 2월 26일 백신 접종에 들어가면서 모든 회원국이 백신을 맞게 됐다. 하지만 아프리카연합(AU)이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 아랍연맹(AL) 등은 소수의 국가만이 백신을 접종을 하고 있다. 산유국 등 일부 부자 나라를 제외하고는 외교력이나 이웃나라의 지원 등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런 백신 불균형은 앞으로 국제 관계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마크롱의 지적대로 자체 백신을 개발한 러시아와 중국이 이를 무기로 백신 확보가 여의치 않은 개도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월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당시 자국에서 제조한 35만 회분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무상 제공을 제안했지만 미얀마 정부는 인도가 제안한 150만 회분을 제공받았다. 미얀마가 1월 17일 접종을 시작한 인도 제공 백신은 현지에서 인도혈청연구소(SII)가 위탁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가벼운 감기를 일으키는 아데노 바이러스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삽입한 것으로 인체에 접종하면 면역체계가 항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백신은 접종해도 코로나19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

반면 중국이 제공을 제안했던 것은 자체 개발한 불활성화 백신이다. 불활성화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르말린이나 방사선으로 사멸시키고 사체를 이용해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중국이 긴급사용을 승인한 자국산 백신은 불활성화 백신뿐이다. 문제는 극히 드물지만 해당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이 방식이 100년 이상 이용되고 안전성이 증명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서방이 개발한 화이자 백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 검증되지 않았다고 폄하해왔지만 국제사회는 화이자의 손을 들어줬다.

백신을 외교 무기 삼아 영향력 키우려는 소련·중국


▎러시아산 가말레야(스푸트니크 V) 코로나19 백신. / 사진:REUTERS=연합뉴스
중국 백신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임상 시험 결과를 자세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중국 백신이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개발하고 승인 받았다는 게 서방의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31일 중국의약집단(시노팜) 산하 베이징 연구소가 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조건부로 승인한 데 이어 2월 6일엔 시노팜 백신도 조건부 승인했다. 이어 2월 25일에는 시노팜 산하 우한생물제품연구소(베이징 연구소와는 다름)이 개발한 백신과 캔시노(康希諾)의 백신도 승인했다. 아데노 바이러스 백신인 캔시노 백신을 제외하곤 모두 불활성화 백신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시노팜 백신은 중국을 포함해 모두 2억3000만 회분이 계약됐으며, 중국 외에는 중국의 실질적인 동맹국으로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8800만 회분), 중동국가(7500만 회분)와 동남아국가 인도네시아(6000만 회분) 정도가 고작이다. 시노백 백신은 모두 2억6300만 회분의 공급 계약이 이뤄졌으며, 브라질(1억 회분), 터키(1억 회분)와 인도네시아(1억2600만 회분), 말레이시아(1400만 회분), 태국(200만 회분) 등 동남아 국가가 포함됐다.

그래도 중국 백신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를 중심으로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공급됐으며, 유럽에도 EU 회원국인 헝가리가 도입에 들어갔다. EU가 중앙 공급하는 백신이 물량 부족 사태를 겪자 자구책으로 독자 백신 공급망을 가동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백신은 여전히 판로 확대는 제한되는 실정이다.

중국이 자국 백신의 확산에 애를 먹는 것과 대조적으로 러시아 백신은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다. 모스크바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 연구소가 개발해 지난 8월 임시사용 승인을 받았던 이 백신은 가말레야 백신, 또는 당시 러시아 정부가 이름 붙인 스푸트니크 V 백신으로 불린다. 이 백신은 3단계의 임상시험 중 미처 2단계도 마치기 전인 지난해 8월에 임시 사용 허가가 나와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뒤늦게 지난 2월 초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인 [렌싯]에 효과가 92%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렌싯은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거쳐 논문을 게재한다. 이 때문에 92%는 신뢰할 수 있는 결과다. 뒤늦게 국제표준에 맞춘 3상 임상시험을 마친 결과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가말레야 백신은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서방 국가에도 공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말레야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거의 동일한 아데노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이용한 전달체 백신이다.

백신 무상 증여 내세워 영토 확장 꿈꾸는 이스라엘

가말레야 백신은 국제 표준에 맞추는 노력 끝에 확보한 신뢰를 내세워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가말레야 백신은 지금까지 7억6300만 회분의 공급 계약을 완료했다. 자국인 러시아에 1억6000만 회분을 공급하기로 한 것은 물론 인구 대국인 인도(2억 회분)와 브라질(1억회분) 시장도 개척했다. 옛 소련의 일원이었던 우즈베키스탄(7000만 회분)은 물론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6400만 회분)도 가말레야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다. 중동의 친미국가 이집트(5000만 회분)와 인도 및 중국과 국경을 맞댄 네팔(5000만 회분)도 러시아의 가말레야 백신을 사기로 했다. 동남아시아 국가 말레이시아(1300만 회분)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러시아라면 몰라도 중국이 백신으로 외교를 펴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러시아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긴 했지만 대량 공급을 위한 생산 능력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과학기술과 제조업이 소련 시대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화학 등 몇몇 첨단 분야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소비재는 물론 심지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백신도 충분한 제조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중국은 아직 신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백신이라는 주요 보건 물자 파고 개척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정작 과학기술과 생산능력을 갖춘 미국은 자국 공급에만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코로나 바이러스 피해국이기도 하다. 유럽은 공급 부족으로 백신 접종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백신은 신속하게 구해 세계 최대 속도로 접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남는 백신을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나라를 중심으로 무상 증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정작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겨우 수천 회분을 의료진용으로 제공했을 뿐이다. 방역과 의료시설, 그리고 백신 제공으로 팔레스타인과 극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중동 평화를 위한 소중한 기회가 사라져 가고 있다. 오는 3월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로선 강경파를 집결하기 위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정착촌 확대와 더불어 ‘이스라엘 수도=예루살렘 수도’를 다른 나라로 확대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중동 평화와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백신 공급의 발목을 잡는 세이다.

중동 최대의 코로나 피해국인 이란은 자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지만 아직 백신 접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란의 강경파는 초조할 수밖에 없다. 방역도, 백신 공급에도 실패한 이란이 정치적인 행사를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할지가 전 세계의 관심사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74호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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