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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1번지’ 대치동은 구조조정 중] 대치동 학원가 부익부 빈익빈 시대 

 

대치동 최초 1000억원 매출 학원 등장… 자본력과 콘텐트 질이 학원 경쟁력 좌우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기 안 타는 업종’으로 꼽히던 학원가에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 탓이다. 집합금지 명령으로 지난해만 80일 가까이 문을 못 열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구에서 폐업한 학원 수는 235곳으로, 개업 학원 수(228곳)를 추월했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도 예외가 아니다. 고등 단과시장 기준 매출 7위권에 들던 업체 중 두 곳 이상이 문을 닫거나 경쟁학원에 인수됐다. 동시에 초대형 사업자의 등장도 예고된다. 업계 1위 시대인재학원(이하 시대인재)의 한 임원은 “내달 공시할 지난해 매출액은 107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강의(이하 인강) 업계에선 메가스터디교육(3143억원, 고등사업부 기준) 등이 ‘1000억원 고지’를 넘은 바 있지만, 현장강의 학원으로선 처음이다.

다음 달 이뤄질 공시에서 수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지난해 시대인재가 인수한 대치동의 중·고등부 D 입시학원의 실적이 더해질 경우다. 이 학원은 2018년 90억원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당 평균 매출(약 75만원)과 소속 강사별 학생 수를 바탕으로 추산한 수치다. 현장강의 학원 대부분은 관련 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기준에 못 미치는 탓에 영업실적을 공시하지 않는다. 추산치가 맞을 경우 D 학원은 업계 4위에 해당한다.

대성학원도 대치동의 비전21학원을 인수해 2019년 11월 재개원했다. 대성학원은 재수종합반으로 유명한 강남대성학원과 인강 업계 3위 디지털대성(2019년 매출 1406억원)을 경영하지만, 대치동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의고사 문제 하나당 100만원?


일부 업체는 서울 밖에서 기회를 모색했다. 업계 5, 7위 학원은 대전을 비롯해 해운대, 제주 등에 캠퍼스를 설립해왔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은 모양새다. 지역 고교의 내신시험 출제 경향 등 지역 학원들이 쌓아온 정보가 진입장벽 역할을 했다. 한기온 대전제일학원 이사장은 “대치동 브랜드를 앞세워 들어온 학원이 1~2군데 있었지만, 수강생 이탈은 없었다”며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전국 명문학원 설립자 모임을 이끌고 있다.

수험생들의 선호가 강사 중심에서 콘텐트 중심으로 바뀐 것도 크게 작용했다. 한 대입학원 관계자는 “과거엔 목 좋은 자리에 얼마나 큰 강의실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치동 학원가의 자리 경쟁이 심해서다. 남북 700m, 동서 500m 남짓한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에만 400곳 넘는 학원이 몰려 있다. 접근성 좋은 자리와 넓은 공간만 있으면 인기 강사를 손쉽게 섭외할 수 있었다. ‘대치동 학원은 임대업’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자체 개발한 모의고사의 수능시험 적중률이 이듬해 해당 강사 혹은 학원의 집객능력을 좌우하는 상황이 형성됐다. 전국 대입강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연 300억원 내외)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현우진(34) 씨가 대표적이다. 현 씨는 모의고사 문제 하나당 100만원 공모를 걸 만큼 콘텐트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씨는 학부 졸업 후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과 대치동 학원가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4년 개원한 시대인재가 가파르게 성장한 데도 자체 모의고사 역할이 컸다. 특히 영역별 자체 모의고사인 ‘서바이벌 모의고사’의 경우 국어 25회분, 수학 43회분을 제공하는 등 수량이 적지 않다. 이들 모의고사 문제지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회당 1만원 내외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원생에게만 제공되는 콘텐트여서다. 풀이 흔적이 있는 데다, 시중에 3회분 모의고사 문제집이 1만5000원~2만원에 판매되는 것을 감안하면 적잖은 금액이다.

스카이에듀 1타 강사 놓치고 매출 70% 하락

강대마이맥학원도 지난해 자체 국어·수학·영어 모의고사 ‘강대모의고사K’를 매주 내놓고 있다. 또 대성학원은 지난 2017년 디지털대성을 통해 국어 모의고사 개발업체인 ‘이감’의 지분 50%를 51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감은 현재 전국 480여 개 학원 및 강사에게 모의고사 콘텐트를 공급한다. 2019년에만 매출 163억원에 순이익으로 54억원을 남겼다. 이감의 창립자 김봉소(55) 대표 역시 대치동 강사 출신이다. 학원 강의를 위해 개발한 수능 국어 문항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히트’를 쳤다. 대성학원 관계자는 “이감 모의고사는 수능시험과 유사한 문제, (상위권 학생들을 겨냥한) 난이도의 문제 등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콘텐트 개발에 들어가는 자본이다. 업계에서 30년 넘게 국어 강사로 활동해온 관계자는 “모의고사 5회분 분량 문제집 한 권을 만드는 데만 1억원가량 소요된다”며 말을 이었다. “수학(총 30문제)의 경우 한 문제당 50만~100만원을 주고 산다. 그렇게 산 문제도 다른 문제집 내용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버린다. 그렇게 버리는 경우가 80%다. 살아남은 문제도 대학원생과 수학 강사들에게 의뢰해 다시 풀어보도록 한다.” 실제로 시대인재는 2019년에만 62억9000만원을 콘텐트 용역비로 지출했다. 한 해 매출의 7%를 훌쩍 넘는다.

강사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대인재 관계자는 “학원간 주요 경쟁 요소에서 1타 강사(해당 영역에서 매출이 가장 큰 강사) 섭외만큼 자체 콘텐트의 유무가 중요해졌다는 뜻”이라며 “전통적으로 강사가 콘텐트를 생산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타 강사의 힘을 보여주는 예로 인강 업체인 스카이에듀(법인명 현현교육)를 들었다. 이 업체는 2014년 강의 패키지 할인 상품(프리패스)을 도입하면서 1년여 만에 매출액이 40% 뛰었다.

그러나 이 업체의 매출은 2016년 973억원으로 정점에 오른 뒤 2019년 291억원까지 떨어졌다. 소속 유명 강사를 타 업체에 뺏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회탐구 영역 전체 1타 강사였던 이지영(38) 씨가 2019년 12월 업계 2위 이투스교육으로 이적한 것이 단적이다. 그 결과 2018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시중엔 매각설까지 나돈다. 스카이에듀를 운영하는 ST유니타스의 손호준 홍보팀장은 “매각을 검토한 적 없다”며 “지난해 흑자 전환, 올해는 매출 반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학원가가 직면한 허들은 코로나19뿐만 아니다. 이들로썬 학령인구 감소가 더 큰 위기다. 지난해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역대 처음으로 40만명대(49만3433명)로 내려 앉았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현장은 2~3개 대형학원으로, 인터넷은 3개 업체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1578호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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