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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무 아이유노미디어그룹 대표] AI 기반 콘텐트 현지화 서비스로 글로벌 1위를 차지하다 

 

미국 1위 SDI 미디어 인수로 글로벌 선두 주자 등극… 테크 기반 서비스로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혁신

▎전 세계 30개국에 35개 지사를 설립, 1300여 명의 다국적 임직원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현무 대표. / 사진:아이유노미디어그룹
“성벽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이성적인 사업가다. 익숙한 세계를 떠나는 사람은 기업가이거나 이미 죽은 목숨이다.”

글로벌 핀테크 기업 스퀘어의 공동창업자인 짐 매켈비가 [언카피어블]이라는 책에서 밝힌 이야기다. 모바일 결제업체로 시작해 얼마 전 은행 사업까지 진출한 스퀘어는 아마존을 이긴 스타트업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현무 아이유노미디어그룹 대표(이사회 의장)는 그런 면에서 기업가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꿈꿨던 엔지니어가 우연히 접했던 영상 번역 자막 업계에서 글로벌 1위 기업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성공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다”며 웃었다. 또한 “유학 가기 전 새로운 일을 경험해보자고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현재 싱가포르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 3월 24일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수천억원 규모의 미국 기업 인수로 글로벌 1위 탈환


그의 꿈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었다. 한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후 수학과 물리학을 기초로 하는 구조역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입학하기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고, 경험과 용돈을 벌기 위해서 번역 회사에 잠깐 취직을 했다. 그 일이 평생의 업이 될지 생각이나 했을까? 2002년 번역 업체의 처우가 좋지 않은 탓에 함께 일했던 동료 3명과 함께 ‘아이유노’라는 조그마한 번역 회사를 만들었다. 아이유노는 공동창업자 3명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당시 그는 1년만 하고 유학을 가기로 동업자와 약속했다. 그런데 그를 눌러앉게 한 것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었다. 사업이 어려워서 창업 멤버가 떠나가도 그를 믿고 의지하는 직원들을 두고 포기하는 게 힘들었다. 그는 그렇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생의 턴을 했다.

한때 10억원의 빚만 지고 폐업 위기에 놓였던 한국의 조그마한 번역 업체 아이유노. 이 위기를 극복한 것은 글로벌 시장 도전이다.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를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으로 글로벌 진출을 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8년 정도 기업을 운영했는데 대기업의 갑질로 큰 계약이 깨진 적이 있다. 그때 유일한 해외 거래처인 디스커버리 아시아 지사가 있는 싱가포르로 진출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당시 한국에서 8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돈을 잃는 방법 99가지를 안다고 생각했고, 1가지 돈을 버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싱가포르에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싱가포르에 다국적 방송사의 아시아 지사 70%가 있었다. 1년 동안 수많은 곳을 찾아다닌 끝에 소니 픽쳐스와 계약을 맺게 됐다. 소니 픽처스가 진출하는 지역에 지사를 만들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한국을 기반으로 했던 기업이 어느새 글로벌 기업을 연이어 인수했다는 점이다. 2019년 9월 유럽 시장을 선점한 ‘BTI 스튜디오’와 합병에 성공했고, 지난 3월 말에는 미국 기반의 글로벌 기업 ‘SDI 미디어’의 인수를 마무리했다. BTI 스튜디오와 SDI 미디어의 기업가치에 대해 이 대표는 “주주들이 있고 이사회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인수가 등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수천억원 규모의 딜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인수한 것과 같다.

이 대표는 “현재 아이유노미디어그룹의 대주주는 나를 포함해 스웨덴의 사모펀드와 미국 사모펀드, 그리고 소프트뱅크벤처스다”면서 “2018년 4월 처음으로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24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M&A를 통해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 대주주의 도움으로 글로벌 업계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에게 “한국인 창업가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글로벌 기업 출신의 인재들을 리딩하고 있는 게 아이유노미디어그룹이다. 자부심을 느낀다”며 웃었다. 아이유노의 매출 비중은 미국과 멕시코 등에서 50%, 유럽에서 30%, 그 외 지역에서 20% 정도를 차지한다.

현재 아이유노미디어그룹은 자막과 번역, 더빙, 배급 등 콘텐트 현지화 서비스를 80여 개의 언어로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3명으로 시작했던 조그마한 업체가 지금은 전 세계 30개국에 35개 지사에서 1300여 명의 정직원이 일하는 기업이 됐다. 전 세계에 2만여 명의 번역자가 이 기업과 일을 하고 있다. 1년에 번역 자막 작업을 하는 작품의 러닝 타임이 60만 시간이나 된다. 1시간짜리 작품으로 치면 60만 편의 자막과 번역 작업을 하는 셈이다. 각 나라의 언어로 이뤄지는 더빙의 경우 1년에 9만 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1년에 60만 시간 분량의 동영상 현지화 서비스 작업


▎서울 상암동에 있는 한국지사에 설치된 더빙 작업실 모습. 음반 녹음실처럼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 사진:아이유노미디어그룹
다국적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전 세계 지역의 과자를 포장해서 직원들에게 선물할 수도 있고, 한국의 미니 우산과 미니 선풍기가 임직원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이유노는 콘텐트 현지화 서비스와 콘텐트 제작 및 배급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시즌제 드라마 [킹덤]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려면 그 국가의 언어로 번역하고, 자막 작업을 해야 한다. 각 나라의 특성에 따라 삭제해야 하는 장면도 있고, 블러 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막보다 더빙을 선호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더빙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과정과 작업을 이른 시간에 정확하게 처리해주는 것이 콘텐트 현지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콘텐트 현지화 서비스는 인력이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산업이다. 쉽게 말해 레드오션인 셈이다. 이 대표는 여기에 기술과 혁신을 도입해 블루오션으로 개척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테크 기업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이유노의 초창기 자막 작업을 위해서 방송사에서 사용하던 수억원 대의 기기가 필요했다. 소규모 업체에서 이런 기기를 구매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이 대표는 PC로 작업할 수 있는 솔루션을 직접 개발했다. 현재 아이유노 작업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MSX라는 솔루션의 전신이다. 영상과 번역 그리고 감수 등을 한 화면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여기에 더해 각 단계에서 작업자가 실수하면 자동으로 알려주게 된다. 심지어 클라우드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이 솔루션을 클라우드화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번역자, 자막 작업자, 감수자 등이 한 화면에서 모든 과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표는 “번역과 자막 작업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프리랜서”라면서 “품질 검수와 마감을 지키기 위해 클라우드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기술의 변화에 미리 대응한 셈이 됐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소규모 영상 번역 자막 업체들이 영업에 집중할 때 그는 기술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 과정에서 큰 위기도 겪었다. 함께 일했던 임원이 영업 대신 골방에 틀어박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대표를 이해하지 못한 것. 그동안 거래했던 거래처 영업과 직원을 모두 데리고 나가서 새로운 업체를 차린 것. 이 대표는 “내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두 번이 있는데, 그때가 그중의 한 번이다”라며 웃었다.

또 하나의 기술 도전은 AI 번역이다. 흔히 말하는 구글 번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다. 이 대표는 “자신 있게 말하지만 우리의 AI 번역 기술이 영상 번역 분야에서 기존 번역 서비스보다 훨씬 뛰어나다”면서 “구글 번역으로는 영상 자막에서 사용하는 구어체를 소화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데이터를 모았기 때문에 훨씬 번역의 품질이 좋다”고 강조했다. AI 번역을 한 후 전문가들이 감수하는 과정을 포함해도 기존보다 25% 정도의 시간을 줄였다고 한다. “특히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 태국어의 경우 구글 번역보다 훨씬 정확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K-콘텐트 인기로 명성 높아져

이런 차별성과 장점 덕분에 넷플릭스, 디즈니, HBO, 아마존 스튜디오, 애플 TV 등 세계적인 OTT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 이 대표는 “글로벌 기업은 각국의 방송사 등도 아이유노의 클라이언트다. AI 기술을 각 단계에 이용해 시간을 단축했기 때문이다. 콘텐트 현지화 서비스는 필수적으로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AI 기술을 기반으로 인력의 투입을 줄였다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K-콘텐트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어에 특화된 아이유노의 명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미디어 콘텐트 현지화 3조 시장에서 글로벌 1위지만, 40조원 규모의 전체 번역 시장에 대비하고 있다. 교육 및 게임, 정부, 기술과 기업 등을 대상으로 글로벌 현지화 서비스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아이유노가 영상 번역 자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미디어 서비스 회사에 가깝다”면서 “한국 지사에는 160여 명이 일할 정도로 규모가 큰데, 이곳에서는 포스트 프로덕션과 제작, IP 유통과 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1578호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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