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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은 더딘데 물가만 고공행진?] 소비자물가 상승률 연중 최고치… 요동치는 ‘밥상 물가’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1년 만에 1.5% 기록… 정부, 할당 관세 적용에도 “2% 웃돌 가능성 제한적”

▎사진:연합뉴스
“올라도 너무 올랐다.”


장보기가 무서워졌다. 지난해 봄 2000원대에 살 수 있었던 대파(1kg 기준)는 300% 이상 올라, 평균 6500원을 웃돌면서 일명 ‘금파’로 불린다. 사과 역시 전년보다 가격이 50% 넘게 폭등했다. 지난 4월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07.16으로 전년 동월 대비 1.5% 올랐다. 흔히 ‘밥상 물가’의 지표로 불리는 신선식품지수는 16.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에 닥친 장마의 여파 등 기상 여건에 따른 농산물 작황 부진 영향으로 채소·과일 등을 포함한 신선식품지수가 높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외에도 휘발유가 1.8% 오르는 등 공업제품도 0.7% 상승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올해 3월까지 누계비로 물가는 1.1%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지 불과 닷새 만인 4월 7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인플레이션 대응방향’을 발표했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가 곡물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는 등 본격적인 물가 관리에 나선 것. 이 날 열린 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옥수수 128만 톤에 대해 혈당 관세를 적용해 관세율을 기존 3%에서 0%로 낮추기로 했다. 할당 관세란 물가 안정 등을 위해 한시적으로 기본 관세율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정부가 식용곡물에 대해 할당 관세를 적용한 것은 2014년 이후 7년 만이다. 식품·외식업계를 대상으로는 원료구매자금 금리를 기존 2.5~3.0%에서 2.0~2.5%로 인하하는 등의 방안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금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상회할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3월 소비자물가는 국내 농축산물 수급 상황 등으로 1.5%까지 상승하며 물가 상방 압력이 확대됐다는 입장이다.

정부, 7년 만에 식용곡물에 대한 할당 관세 적용

정부가 물가안정 대책에 나서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서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모습을 말한다.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이전보다 올라, 물건이나 부동산 등의 실물 가치는 오르고 반면 화폐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최근 급등세를 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저물가를 기록하다 지난해 12월부터 물가가 상승폭이 커졌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가 0.5%였는데 올해 1월 들어서 0.6%로 오르더니, 2월엔 1.1%, 3월에 1.5%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월(1.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기후 여건 등의 이유로 신선식품 물가가 오른 데 이어,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늘린 재정지출도 한몫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세계적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경제 활동이 쪼그라들면서 디플레이션을 걱정했으나,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 정책, 백신 보급의 현실화 등으로 오히려 급격히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된 셈이다.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정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더해진 말로, 고용률이 낮고 아직 경기가 활성화하지 않아 실물 경기는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물건 가격만 급등하는 상황을 말한다. 국내 물가가 계속돼 오르는 반면 고용률은 코로나19 이후 지속해서 감소세를 띠는 상황이다. 최근 통계청이 낸 ‘2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2월 중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6만6000명이 감소했다. 고용률은 57.5%로 전년 동월 대비 1.3%p 하락했다. 여기에 실업률은 5.2%로 1.4%p 상승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발표한 경제연구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경제 불안 요인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꼽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경기 흐름은 빠르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개선되는 ‘경기 추세의 우상향’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 차질로 인해 충분한 집단면역 효과를 얻지 못할 경우 연말 대규모 재확산으로 인해 경기가 다시 침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원은 “수출 경기의 회복세가 나타나면서 경기 반등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만약 코로나19가 다시 크게 확산해 경기의 양극화가 굳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우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3월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 부양책 ‘미국 구조 계획’ 법안이 가결됐다. 총 1조9000억 달러(약 210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의 부양법안이다. 지난해 12월 9000억 달러의 부양책을 내놓은 후 3개월만에 이보다 두 배에 달하는 부양법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지난 2월 미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1.7% 올랐다. 이 수치는 1년간 최대폭으로 상승한 수치다.

“경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으로 봐야”

반면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은 지나친 우려라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현재 물가가 오르는 것은 경제가 성장 방향으로 나아가는 좋은 신호라는 이야기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이라며 “미국은 다음 달까지 성인 대부분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무역의존도가 7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역시 수출이 늘면서 주춤했던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교수는 “일시적인 물가상승은 있을 수 있어도 그만큼 고용과 수익 역시 늘어나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영하는 한국은행은 국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를 2%로 잡고 있다. 화폐 공급을 관리해 물가상승률을 2% 수준에 머물도록 하는 것. 물가 상승률이 1.5%를 기록한 지난 3월도 한국은행 기준치인 2%보다 낮은 수치인 셈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주요 현안에 대한 문답’ 자료를 통해 최근 높아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답을 공개했다. 이 총재는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전망한다”며 “코로나19 감염상황이 빠르게 진정돼 지금까지 억눌렀던 수요가 분출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지속해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80호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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