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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 테크&라이프] 미중 패권 경쟁의 급소, 반도체 

 


▎지난 4월 12일 미국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세계 주요 반도체와 IT 기업 대표들을 초대해 화상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뀌었지만, 중국의 첨단 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트럼프처럼 거칠게 표현하지 않을 뿐, 바이든 역시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각) 삼성전자·TSMC 등 19개 세계 주요 반도체와 자동차, IT 기업 대표들을 초대해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웨이퍼를 손에 들고 “이 반도체 칩 웨이퍼, 배터리와 광대역망이 모두 인프라”라며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한 기업인들에게는 “우리의 경쟁력이 여러분의 투자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 희토류, 의료장비,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부품소재 공급망을 재검토하라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이 지속해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다. 말뿐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4월 1일 발표한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에는 반도체에 대한 500억 달러 투자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사실 좀 어색하다. 미국은 반도체의 주도권을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놓은 적 없는 반도체 주도권 되찾겠다는 미국

컴퓨터와 서버의 핵심인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은 인텔이 지배하고, AMD가 쫓아간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애플과 퀄컴이 주도한다. AI나 자율주행을 위한 첨단 반도체를 설계하는 인재도 미국에 몰려 있다. 반도체 제조 장비 역시 고부가 제품은 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로 미국 제품이 시장 표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과점한 메모리와, 대만 TSMC가 선도하는 반도체 위탁생산, 즉 파운드리 정도가 미국이 주도하지 못하는 분야다. 그런데 따져 보면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 지배력을 앞세워 세계 1~2위를 다투는 반도체 기업이 되었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 정도이다. TSMC는 미국 기업들이 번거로운 생산을 외주하고 핵심 경쟁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이 비용이나 수익성 등의 이유로 하지 않으려는 분야에서 한국과 대만 기업이 기회를 잡은 것으로 봐야 한다.

굳건해 보이던 글로벌 반도체 분업 체계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은 결국 현재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바꾸어 미국 안에서 더 많은 생산이 일어나게 하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나 TSMC가 업계 수요에 부응해 생산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공정 기술력의 격차가 추격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졌다. 이들 기업이 5나노 공정을 돌리는 동안, 미국 반도체 기술력의 상징이던 인텔의 공정은 10나노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반도체 생산 능력의 70%가 대만·한국 등 동아시아에 집중되면서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관리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이런 불안을 현실화했다. 평시에는 큰 힘을 발휘한 반도체 산업의 효율적 분업 체계는 팬데믹으로 교역과 이동에 문제가 생기자 곧 삐걱거렸다.

최근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품귀 현상이 대표 사례다. 코로나19로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줄였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 자동차 수요가 예상외로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반도체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이나 PC 등 이미 들어온 다른 분야 주문을 처리하느라 차량용 제품으로 라인을 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지는 않는 분야인데도 품귀 사태에 속수무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유행 초기 마스크조차 제대로 만들기 어려워하던 선진국의 민낯에 스스로도 놀라던 참이었다. 현대 산업의 기초 반도체를 어느 정도는 자국에서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 재임 때 이뤄진 화웨이나 ZTE,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에 대한 교역 금지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방국가의 반도체 기업에 미국 투자를 권유하며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참여하라고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반도체 생산 능력이 중국의 영향이 강한 아시아에 몰린 현재 상태가 불안해서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인텔은 최근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나아가 중국이 인공지능, 5G, 모바일 서비스, 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굴기’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대의 패권 국가가 지켜야 할 영역이 자유 무역을 위한 국제 질서와 안보뿐 아니라 디지털 세계의 질서로까지 확장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5G 망과 인공지능 등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기면 미국, 나아가 자유 세계는 심각한 사이버 안보 위협에 직면하고, 미래 경제의 핵심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5G 통신망과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위챗이나 틱톡 등 성공적 모바일 서비스를 앞세워 거침없이 확장하는 중국을 견제할 가장 좋은 방법이 반도체다. 반도체 없이는 이들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더구나 아낌없는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아직 세계 수준에 많이 못 미친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반도체 산업이 미중 양국이 만들어 내는 국제 정세의 격랑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의 흐름을 좌우할 중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단지 미국 현지에 반도체 라인 건축 투자를 할 것이냐의 문제를 넘어서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81호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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