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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났던 NII 추억 속으로… 갈곳 잃은 ‘그 시절’ 패션 브랜드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세정, 장수 브랜드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썰렁 ... 카파코리아, 카파 매각 불발 후 기업회생절차 들어가

▎세정그룹이 지난 3월 매각을 공식화한 캐주얼 브랜드 'NII'. / 사진:세정그룹
한때 로드숍을 중심으로 흥했던 패션 브랜드들이 매출 하락세에 이어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냉랭한 대접을 받고 있다. 2020년에는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고, 2021년에는 인수 시장에서 ‘찬밥’ 신세가 된 것. 업계 관계자는 “로드숍 패션 브랜드가 온라인 쇼핑 확대로 수년 전부터 서서히 몰락하다가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맞아 주저앉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정그룹은 지난 3월 23일 캐주얼 브랜드 니(NII)의 매각을 발표됐다. 1999년 탄생한 브랜드 니는 22년 동안 이어진 업계 ‘장수 브랜드’ 중 하나다. 인기가 정점에 달한 2000년대에는 차태현·정우성·빅뱅 등 당대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할 만큼 ‘핫’한 브랜드였다.

그러나 로드숍을 중심으로 성장한 니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다. 세정그룹은 경기 불황과 전반적인 영캐주얼 패션 시장의 침체,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오프라인 매장의 타격 등을 매각 결정 이유로 들었다. 니 매각 자문사는 쿠시먼앤드워크필드로 선정했다. 세정그룹 관계자는 “어덜트 패션 브랜드인 웰메이드와 올리비아로렌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온라인 채널로 확장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동춘상회에도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장수 브랜드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한 니가 온라인 사업 경쟁에 밀린다는 평가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 속에서 오래된 브랜드라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제 협상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매각 비용에 대한 온도 차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벌써부터 매각 불발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에 대해 세정그룹 관계자는 “2010년대 영캐주얼의 고전과 1세대 캐주얼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 가는 시기에도 니는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MZ 세대를 겨낭한 스트리트 캐주얼로 재도약하는 저력을 보였다”며 “그동안 쌓아온 고객층과 브랜드 잠재력을 바탕으로 리브랜딩하고 온라인 유통 채널을 전략적으로 구축하면 앞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자세한 진행 상황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니 매각은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칼바람 부는 로드숍 브랜드


▎서울 중구에 위치한 미쏘 명동매장.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패션 브랜드들의 매각 소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해 11월 여성복 사업부를 통째로 매물로 내놨다. 이랜드 여성복 사업부에는 미쏘·로엠·에블린·클라비스·더블유나인·이앤씨 등 6개 브랜드가 포함됐다. 이랜드 측은 “SPA 브랜드인 스파오와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 브랜드를 정리하는 차원”이라고 발표했다.

이랜드는 지난해 여성복 사업부 매각과 관련해 삼성증권을 재무자문사로 선정하고, 투자자를 본격적으로 찾았다. 그러나 결과는 매각 불발로 이어졌다. 결국 이랜드는 지난달 29일, 여성복 사업부 매각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랜드 측은 “매각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조건 등 여러 상황이 맞아야 하는데 적합한 대상을 찾지 못한 데다 올들어 여성복 사업부의 매출 실적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분석은 달랐다. 이랜드가 지난 3월 25일 예비입찰을 진행했지만 참여한 기업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 그만큼 패션업계에서 로드숍을 기반으로 한 패션 브랜드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 기준 이랜드 여성사업부의 6개 브랜드의 연 매출은 3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여성복 업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매출 대부분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와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된 지난해에는 매출이 고꾸라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추정이다. 실제 2019년 이랜드 여성복 사업부 매출은 2936억원이었지만 이중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이랜드 측은 매각에 나설 때 ‘전국 500여개 매장’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그만큼 오프라인 중심의 매출 구조라는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앞서 이랜드는 지난해 여성복 사업부 가운데 이앤씨만 매각하려 했지만 이 역시도 실패한 바 있다.

브랜드 매각에 실패 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패션 기업도 있다. 카파코리아는 지난 1월 회생절차에 들어섰다. 카파코리아는 지난해 스포츠 브랜드 카파를 매각하고자 했다. 1차 우선협상대상자인 밀레와 최종 협상 단계까지 갔으나 인수금액에 대한 양 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매각이 결렬됐다. 이후 카파코리아는 채무조정 목적으로 회생을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

카파코리아는 매년 누적된 적자에 허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카파코리아는 2017년 영업손실 52억8096억원을 기록했다. 오프라인 점포 정리 등으로 2018년 영업손실 13억229만원을 기록해 적자 폭을 줄이기도 했지만 2019년에 다시 26억7336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경영을 이어왔다. 부채도 상당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카파코리아의 단기차입금만 262억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카파코리아가 매각에 실패한 스포츠 브랜드 '카파(KAPPA)'. / 사진:카파
브랜드 싸움에서 플랫폼 싸움으로


패션 브랜드 매물이 외면받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M&A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카카오는 최근 여성 온라인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인수했고, 신세계의 SSG닷컴은 ‘W컨셉’을 인수했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업계에선 과거 ‘브랜드’에만 집중한 패션 사업이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의 경쟁력을 누가 확보했느냐로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션 시장에서 브랜드라는 콘텐트보다는 얼마나 편리한 온라인 플랫폼을 지니고 있는지가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며 “최근 대기업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인수가 잇따르는 것만 봐도 주도권이 옮겨간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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