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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ORBES KOREA AGENDA 부자의 품격② -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행복 

강신우 화란조경 대표 

글 염지현 기자 사진 공정식 객원기자
나눔은 품격있는 부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실천하는 강신우 대표는 “나눌수록 스스로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4일 동대구역에서 강신우(60) 화란조경 대표이사를 만났다. 큰 체구에 짧게 자른 스포츠 머리가 눈에 띈다. 그는 검정색 등산복 차림에 흙먼지가 뿌옇게 쌓인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건설 현장을 누비다보니 작업복이 편하다”고 강 대표는 말했다.

평소에도 시장에서 2만~3만원짜리 옷을 사 입는다고 덧붙였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영남대 원예과를 졸업한 그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적성이 맞지 않아 3년만에 뒤 그만뒀다. 1983년 화란조경을 세우고 조경사업을 시작했다. 돈을 벌면서 농장을 샀다. 현재 경상도 곳곳에 5개 농장을 갖고 있다. 최근엔 대구의 한 조경회사를 인수해 사업 규모를 키웠다.

열심히 번 돈은 남과 나눈다. 강 대표의 나눔은 이미 대구시에서 유명하다. 1999년부터 대구 지하철역에서 ‘밥퍼’ 봉사활동을 했다. 15년 동안 월요일마다 200~300명의 노숙자와 독거 노인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 초기엔 경제적인 지원이나 자원 봉사자들이 없었다.

쌀과 음식 재료를 사는 일부터 식사 준비에 필요한 모든 일이 그의 몫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300명에게 밥을 퍼주는 일이다. “군대 조리실에서 쓰는 대형 밥솥 3곳에 밥을 짓습니다. 말이 300그릇이죠. 두세 시간 푸다보면 어깨가 뻐근해서 팔이 안 펴집니다. 특히 더운 여름날이 힘들어요. 밥솥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강 대표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 1998년 불교 신자인 그는 인도에 한 달간 성지순례를 떠났다. 여행길에 들른 곳이 인도 갠지스 강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시신이 화장돼 강에 뿌려집니다. 강물 한쪽에선 사람들이 목욕하고 수영을 즐기고 있어요.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삶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언제가는 죽을텐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대구 지하철역에서 그 답을 찾았다. 하루는 그가 자주 찾는 대구시 수성구 파동 법왕사의 공양주 보살이 “저녁 8시에 지하철역으로 나와 보라”고 말했다. 저녁에 도착한 지하철역 입구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수많은 노숙인이 줄을 서 있었다. 긴 줄 끝에 공양주 보살과 스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노숙인에게 식사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 순간 강 대표는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았다. 이후 두 팔 걷어부치고 봉사활동을 다녔다.

그는 “노숙인이 된 한 중소기업 CEO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슈트를 빼입은 한 중년 남성이 공짜 밥을 먹기 위해 노숙인 뒤에 줄을 서더라고요. 매주 찾아올 때마다 옷은 조금씩 해어졌어요. 몇 달 후에는 정장을 벗고 낡은 츄리닝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를 불러다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눴어요.

갑자기 회사가 망해서 갈 곳이 없다고 했어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진심으로 얘기했어요.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1년 지나서 그가 쌀 한포대를 싣고 찾아 왔어요. 몸과 마음이 지쳤을때 따뜻한 밥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하더군요.”

밥퍼 봉사활동 이외에도 그는 12년째 장애인 생활시설인 정토마을 안락원과 연화원의 장애인들을 보살핀다. 한 달에 한번은 목욕탕을 통째로 빌려 80여명의 장애인을 목욕시킨다. 일년에 한 두차례는 이들을 데리고 산과 들로 여행을 다녀온다.

강 대표는 주로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돕는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는 나눔의 손길이 많습니다. 이에 비해 노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낮은 편이에요. 목욕탕을 빌리는 것도 일이에요. 정신지체장애인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목욕탕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안 빌려줍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요. 초기에 밥퍼 봉사활동을 다닐 때도 4~5명이 시작했어요. 지금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원 봉사자도 늘었고요.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가 딱 한번 나눔을 포기할 뻔한 일이 있었다. 화란조경은 2006년 수주 규모로 전국 17위에 올랐다. 회사 키우는 재미를 느낄때 동업했던 지인이 부도를 내고 사라졌다. 그해 12월 26일 회사는 부도 처리 됐다. 그가 떠안은 빚은 51억원에 이르렀다.

“현금 흐름이 막히니까 빠져나갈 재간이 없더군요. 농약과 소주병을 들고 산으로 올라 갔어요. 눈이 내리는 데 추운지도 모르겠더군요. 한참 술을 마시다 고개를 드니까 환한 달 속으로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농장 담보로 돈 빌리고, 갖고 있던 건물도 팔고요.”

당시 그에게 봉사 활동은 큰 힘이 됐다. “평소처럼 봉사활동을 다녔어요. 참 신기하죠. 노숙인들이 따뜻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다시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생기는 거에요. 마음은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거같습니다.” 앞으로 강 대표는 청도 농장에 노인요양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독거 노인들이 마음 편안히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나머지 재산도 두 자녀에게 집 한채씩만 남기고 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강 대표의 사무실에는 ‘無慾淸淨(무욕청정)’이라고 적힌 큰 액자가 걸려있다. 한 자선사업가가 죽기 전에 강 대표에게 전해주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분도 다른 분에게 액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욕심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나눔 활동을 하는 분을 찾아서 액자를 물려줄 생각입니다.”

201304호 (201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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