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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 외로움과의 정면 승부 

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52) 

노유선 기자
지난 2019년 포브스코리아 2030 파워리더로 선정됐던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를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수많은 스타트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트레바리는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윤 대표는 “사실상 재창업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와 함께 트레바리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세상에 외로움이 짙어질수록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며 “트레바리는 지성과 우정을 함께 파는 회사”라고 말했다.
‘외로움’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건 지난 2018년. 당시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만들어 고독 문제 대응에 앞장섰다. 이후 2021년 일본도 관방부 산하에 고독·고립 담당실(장관급)을 신설해 외로움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영국, 일본에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도 외로움 퇴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1월 WHO는 외로움을 심각한 세계 보건 위협 요소로 규정하고 전담 국제위원회를 세웠다. WHO는 외로움이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고른 분포를 나타낸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노인 4명 중 1명이 외로움을 느끼며 청소년 5~15%가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제에 천착한 국내 스타트업이 바로 트레바리(trevari)다. 윤수영(36) 트레바리 대표는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슬기로운 사람)에게 외로움은 더욱더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자살률은 외로움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오래도록 풀어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수익성에 급급한 나머지 손쉽게 엑시트를 택하는 벤처·스타트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2018년 말 설립된 트레바리는 멘털 헬스케어 기업이 아니다.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조성하는 등 유료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업계에서는 모임을 주선한다는 뜻에서 ‘듀레바리(듀오+트레바리)’로 불리기도 한다. 외로움과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윤 대표의 포부는 회사 미션으로도 알 수 있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든다’는 것이 트레바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윤 대표는 “세상의 무지와 외로움을 해결하고자 창업에 도전했다”며 “트레바리는 지성과 우정을 판매하는 기업”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정부도 해결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밝힌 트레바리는 탄생과 동시에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9년 포브스코리아가 윤 대표를 2030 파워리더로 선정한 이유다. 하지만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방점을 둔 트레바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하 코로나)의 영향을 결코 피해갈 수 없었다. 비대면 소통 문화가 강화하면서 트레바리를 찾는 사람은 급속하게 줄었다. 윤 대표는 “2020년부터 3년간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며 “버티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후 윤 대표는 엔데믹에 맞춰 대대적인 재창업에 들어갔다. 절치부심한 덕분에 지난해 매출액은 50억원으로 뛰었다. 2022년 40억3000만원과 비교해 큰 폭으로 오른 수치다. 지난 4월 기준 누적 유료 가입자(멤버)는 10만 명이고, 운영 중인 클럽(모임)은 약 400개에 달한다. 지난 4월 11일 서울 강남에 있는 트레바리 사무실에서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이 윤 대표를 만나 창업 여정과 위기 극복 과정, 미래 성장 전략 등을 물었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우)와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외로움이란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업이 나서야 한다”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트레바리는 클럽제로 운영된다. 문학, 철학, 재테크, 커리어, 영화, 과학 등 다양한 주제의 클럽이 클럽장 주도하에 4개월간 진행된다. 클럽장이 없는 클럽도 있지만 가입자 다수가 클럽장이 있는 클럽을 선호한다. 클럽장면면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나경원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세연 전 국회의원 등이 트레바리 클럽을 이끌었다. 클럽 멤버들은 한 달에 한 번 트레바리 오프라인 아지트에서 독서 모임을 가진다. 적어도 한 달에 책 한 권은 읽는 셈이다.

트레바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임에 앞서 400자 독후감을 제출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멤버십 비용은 클럽당 30만원 안팎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독후감을 제출하지 못하면 비용을 지불했어도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타이트한 운영 방식에 대해 윤 대표는 “최근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독후감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새로운 필터링 시스템을 모색하는 중”이라며 더욱 치밀한 트레바리를 예고했다.

다른 업체와 비교해 트레바리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퀄리티 컨트롤이 뛰어나다. 클럽 하나당 품이 많이 들어간다. IT(정보기술) 서비스와 정책만 만들어놓고 유저가 알아서 모임을 만들게 하는 플랫폼도 있다. 하지만 트레바리는 콘텐트 기획도 직접 하고 클럽장도 발품 팔아 섭외한다. 둘째, 높은 신뢰도다. 트레바리에 가면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나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멤버들에게 주고자 노력한다.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모임 아닌가. 멤버십 비용과 독후감 작성이란 허들을 넘은 멤버들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토론 수준이 질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독서, 좋은 사람과의 교류, 나의 성장이 선순환하는 곳이 트레바리다. 이른바 ‘트렌디한 사람들의 여가 생활’이라 볼 수 있다.

클럽장 선정 기준이 있다면.

‘롱텀 앤드 라지 스케일(Long term & Large scale)’이란 트레바리만의 기준이 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많아지면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준만 적용하면 클럽이 다채롭지 않고 트레바리가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트렌드를 리딩하는 사람이라면 내부 토론을 거쳐 클럽장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클럽장이 없는 클럽에서는 ‘파트너’가 클럽을 진행한다. 파트너는 트레바리 정식 직원은 아니고 파트타임으로 참여해 클럽이 열릴 때마다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클럽장이 없어도 퀄리티 컨트롤이 가능한 이유다.

지성과 우정을 판매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세상에 외로움이란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친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우정이 싹틀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 트레바리다. 사람들은 연결돼 있어야 외로움을 덜 느끼지 않나. 그런데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호모사피엔스에게 자기 계발과 성장은 인생 전반에 필수적인 요소다. 트레바리는 사람을 바꿔놓는다.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고, 혼자라면 쓰지 않았을 독후감을 쓰며, 혼자라면 공유하지 않았을 자기 의견을 개진한다. 기업이라면 마땅히 이윤을 증대해야 하겠지만 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이윤을 얻고 싶다.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인가.

원래 창업 전부터 독서 모임을 꾸준히 했다고 들었다.

2010년부터 5년간 해왔다. 만나서 술만 마시던 친구들끼리 죄책감을 덜고자 ‘책 먼저 읽고 술 마시자’고 제안한 것이 시초였다. 만날 때마다 책 읽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모임에 체계가 잡히고 애착이 생겼다.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면서 리더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다 201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모바일 콘텐트 기획자로 입사했는데, IT 트렌드 리서치를 맡으면서 세상의 변화에 경악했다. 격하게 표현하자면, 기술이 세상을 먹어 치우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었다. 기술 발전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과연 나는 파도에 떠밀려가지 않고 능숙하게 다음 파도로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역으로 가겠다’고 외치며 다분히 아날로그적 비즈니스인 트레바리를 택했다.

트레바리는 무슨 뜻인가.

순우리말로 ‘트집 잡다’라는 뜻이다. 매사, 남의 말에 삐딱하게 구는 사람을 안 좋게 부르는 말이다. 트레바리를 사명으로 정한 이유는 한국에는 남의 말을 잘 듣고 수용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좀 삐딱해져야 한다. 인류의 지적 도약은 대개 좀 삐딱한 사람들이 이뤄내지 않았나. 오늘날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도 삐딱한 사람 아닌가. 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좀 벗어나 한계점을 넘어섰을 때 위대한 기업이 탄생한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발칙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인류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

트렌디한 사람들의 여가 생활

코로나를 극복한 게 아니라 그냥 버텨냈다고 했다.

트레바리의 본질은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다. 온라인 모임으로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직접적인 연결과 유대 관계’가 핵심 포인트다. 오프라인 모임 기반인 트레바리로서는 코로나를 극복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오픈하긴 했지만 그리 유의미한 실적이 나오진 않았다. 오프라인 고객 경험에 대한 고집을 두고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쿠팡의 사례를 보면 본질에 대한 집념은 옳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쿠팡의 물류 서비스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나. 약 10년 동안 쿠팡이 난도 높은 물류 서비스 개선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자 이를 질책하는 여론도 상당했다. 쿠팡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물류에 힘쓴 건 결국 잘한 일로 평가받는다.

최근 어떤 주제의 독서 모임이 인기인가.

개인 역량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먹고사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트렌드가 있다. 한동안 재테크 붐이 일었지만 2021년 무렵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업에 힘을 주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부의 파이프라인을 다양하게 만드는 방법을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모임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요즘엔 부업보다 현업에서 개인 역량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부업으로 원하는 수익을 확보하기가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서 문화는 어떠한가.

‘쓸모 있음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강하다. ‘이 책을 읽으면 당장 내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는 듯하다. 쓸데없는 독서를 하지 않으려는 게 요즘 한국의 독서 문화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독서만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도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코로나 같은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대책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다. 서비스의 질적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게 우선이다. 이건 팬데믹과 무관하게 트레바리가 갈 길이다. 아직 트레바리 퀄리티가 내 기대치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본다. 천천히, 탄탄하게 성장하는 것이 트레바리의 방향성이다. 마케팅 분야에 전체 매출액의 3~4%밖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다. 다만 오프라인 모임 장소를 유연하게 활용해 팬데믹과 같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수익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트레바리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공간을 다양화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현재는 종로 안국동과 강남 역삼동에 있는 트레바리 아지트가 오프라인 모임 장소로 쓰인다.

독서 커뮤니티 대표다. 내 인생의 책을 꼽는다면.

헨리 키신저의『리더십』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 국무장관을 했던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글로벌 리더 6명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전 대통령,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 싱가포르의 리콴유 초대 총리,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수상,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총리 등의 리더십이 담겨 있다. 이들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 국가 운영을 맡아 고난을 극복했다. 요즘 트레바리의 비전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은데, 이토록 어려운 순간에도 리더십을 발휘한 이들을 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김익환 -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2022년 2조214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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