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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4) 이진호 슈퍼메이커즈 대표 

데이터로 움직이는 반찬가게 

장진원 기자
사장님과 이모님들 손맛이 좌우하는 반찬가게는 전국에 약 2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 규모도 5조원대에 달한다. 이진호 슈퍼메이커즈 대표는 플랫폼이 대세인 커머스 시장에서 오프라인 반찬가게 ‘슈퍼키친’을 선보이며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진호 슈퍼메이커즈 대표가 슈퍼키친의 신메뉴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과거 골목골목, 동네 한편을 지키던 작은 빵집, 세탁소, 구멍가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대기업 브랜드가 익숙한 베이커리 전문점, 중앙 설비에서 관리하는 세탁 프랜차이즈, 역시 대기업이 내놓은 프랜차이즈 편의점 등이 대세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골목상권 침해나 소상공인 권리에 앞서 소비·소득 기준, 위생 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관리형 브랜드로 전환되는 게 일반적이다. 소비자들도 이런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진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형 브랜드로 소비자 수요가 집중되는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반찬가게는 어떨까. 한 동네에도 몇 개씩 있는 반찬가게는 아직까지 시장을 장악한 리딩 브랜드가 없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장악한 최근 골목상권에서 매우 보기 드문 영역 중 하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반찬 시장 규모는 약 5조원으로 추산된다. 반찬을 가정에서 만들어 먹지 않고 ‘사다 먹는다’는 인식 자체가 자리 잡은 지도 돌이켜보면 얼마 되지 않았다. 시나브로 5조원대 거대 시장으로 성장한 반찬가게는 여전히 가게 사장님들의 손맛이 사업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이다.

개인화·영세화된 국내 반찬가게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이가 있다. 이진호 슈퍼메이커즈 대표다. 2017년 6월 ‘슈퍼키친’ 1호점 문을 연 이래,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1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반찬가게를 갖췄다. 사장님과 이모님들의 손맛 대신, 경기도 부천에 매일 최대 10만 팩을 생산할 수 있는 센트럴키친을 세웠다. 최대 500개 이상 매장 운영이 가능한 생산 규모다. 기존에 없는 반찬가게의 가능성을 알아본 투자자들의 누적투자액만 500억원이 넘는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이 대표를 직접 만나 슈퍼키친의 성장과 반찬 시장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젊은 남성 CEO의 반찬 시장 도전이 이색적이다. 창업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은행과 증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프라이빗뱅커(PB)로 일했다. 업무 특성상 자산가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꼭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있겠구나’ 싶었다. 조금씩 창업에 대한 꿈을 꾸게 됐다.

슈퍼메이커즈 창업이 처음이 아니었나.

2011년 대학 과 선배와 덤앤더머스를 공동 창업했다. 국내 최초로 정기 배달 서비스를 구현한 스타트업이다. 우유, 생수에서부터 아침식단, 빵, 과일, 이유식, 신선식품에 이르기까지 2000개가 넘는 신선상품을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서비스였다. 이 회사를 2014년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이 인수했다. 이후 계약기간인 3년 반 동안 배민프레시와 배민찬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했다. 근로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서 바로 슈퍼메이커즈(오프라인 매장명 슈퍼키친)를 창업했다. 내가 직접 만든 서비스에 고객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짜릿함을 잊을 수 없었다.

반찬이라는 아이템은 어떻게 찾게 됐나.

덤앤더머스는 신선제품을 새벽 배송하는 서비스로, 지금의 컬리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배민이 인수한 후에는 반찬 배달로 바뀌면서 반찬 시장을 접하게 됐다. 당시 반찬가게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그런 서비스를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배민찬을 운영하면서 이미 집 앞 오프라인 시장이 너무 크다는 진실을 알게 됐다. 동네 반찬가게가 너무 많았다. 동네와 집 앞에 매장이 있으니, 자가용을 끌고 마트에 가야 하는 수고도 들지 않았다. 남편이 배민찬 COO인데도, 아내마저 동네 반찬가게를 애용하더라.

이유가 뭔가? 단순히 맛이 좋아서인가.

주부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가령 ‘내일 아침에 아이들에게 뭘 먹여야 하나’가 큰 숙제다. 반찬은 신선식품이 대다수니 유통기한과 소비기한도 짧아야 한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접점이 집 앞에 있으니 얼마나 좋겠나. 반찬가게는 오프라인 접점이 반드시 필요한 업종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전에는 그저 모바일과 플랫폼에만 관심을 쏟았다. 대기업이 유일하게 손대지 못한 업종이 반찬가게라는 걸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대기업도 어려운데, 스타트업은 더 어렵지 않나.

기존 영업 방식을 상수에 뒀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찬가게는 사장님과 이모님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모델이다. 우리는 ‘반찬가게는 왜 브랜드가 없을까’부터 고민했고, 매장 내 조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동네 반찬가게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고 조리사도 말이 좋아 이모님이지 대부분 아마추어다. 메뉴 개발도 원가관리도 어렵다. 그러니 이 기능, 즉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기로 했다. 판매는 판매 전담이, 제조는 전문가가 중앙에서 집중하는 방식이다. 신제품 개발(R&D), 원가와 품질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업형 반찬가게가 통할 거라 생각했다.

슈퍼키친은 매장 내 조리가 없나.

그렇다. 모든 제품(반찬)은 경기도 부천 본사에 있는 센트럴키친에서 만든다. 전문 셰프와 R&D 팀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동네 반찬가게가 제공하기 어려운 반찬을 만들고 싶었다. 식습관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밑반찬 위주였다면, 요즘은 메인 음식 한 가지를 먹고 다음 날엔 다른 음식을 즐기는 추세다. 동네 반찬가게에서는 이런 트렌드에 대응하기 어렵다.

센트럴키친의 장점은 무엇인가.

제일 강조하고 싶은 점은 위생이다. 동네 반찬가게의 위생이 불량하다기보다는, 위생 기준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슈퍼키친에서 판매하는 모든 반찬은 식품 제조 허가와 품질 기준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반찬가게라기보다 신선식품 편의점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실제로 슈퍼키친은 판매 직원 1인, 심지어 심야에는 무인 운영도 가능하다. 반면 동네 반찬가게는 원칙적으로 즉석판매식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유통 자체가 어렵다. 센트럴키친에선 매일 300여 종이 넘는 반찬 팩을 동시 생산하고 모든 제품에 대한 품질 컨트롤이 가능하다. 대량 제조와 판매가 이뤄지니 원가경쟁력이 확보되고, 어떤 매장에서나 동일한 품질과 맛을 유지할 수 있다. 개인 사업장에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다. 지난해 3월에는 HACCP 인증도 완료했다. 품질실험실에서 매일 균질 테스트를 하는 반찬가게는 우리밖에 없다.

조리시설이 없는 반찬가게라는 콘셉트가 획기적이다. 처음부터 센트럴키친을 생각했나.

창업 전 시장조사를 위해 유명한 반찬가게를 찾았는데,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당황한 기억이 있다. 위생관리가 가능한 전문 시설과 설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기다. 주방이 없는 반찬가게는 우리밖에 없다. 다른 반찬 프랜차이즈도 개별 매장에서 독립적으로 조리한다. 우리는 앞서 말한 대로 신선식품 편의점이다. 매장에선 조리하지 않으니 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다.

대규모 설비를 갖추는 게 스타트업으로선 쉽지 않았을 텐데.


▎최영찬 대표와 이진호 대표가 슈퍼키친에서 판매되고 있는 반찬을 소개하고 있다.
당연히 자본이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창업 초기부터 판매 채널, 즉 오프라인 매장이 없으면 어려운 구조였다. 현재 센트럴키친은 세 번째다. 작은 규모로 시작해 투자를 받으면서 제조 규모와 매장 수를 2인 3각처럼 함께 늘려나갔다. 처음부터 고정비를 너무 크게 잡으면 투자 회수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정 기간 동안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면서 확장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어찌 보면 스타트업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만약 처음부터 큰 투자를 받아 시작했다면 시행착오를 더 많이 겪었을 수도 있다.

센트럴키친 외에 기업형 반찬가게가 갖는 강점이 또 있나.

ICT 기술을 적용한 통합 운영 시스템이다. 발주에서 생산, 물류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한다. 핵심은 폐기율 감소다. 반찬은 소비기한이 아주 짧은데, 이런 제품이 매장마다 150~200개가량 깔린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니 데이터로 관리하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어렵다. 우리는 사업 초기부터 자체 시스템을 개발해서 발주와 생산, 출고, 판매가 연계되도록 했다. 2023년 100호점을 넘긴 데 이어 올해 200호점, 2025년까지 350호점 등 빠른 속도로 매장을 늘릴 수 있는 배경이다. 매장에 고객이 원하는 재고가 없으면 편의점 같은 제품 판매가 불가능하다. 계속 데이터를 쌓아가 수요 예측을 정교화하는 게 우리의 숙제이자 강점이다. 실제로 슈퍼키친 고객의 80%가 재구매 고객이다. 제품 폐기율도 2%대로 경쟁업체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만큼 수요층이 탄탄하고 소비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라는 뜻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슈퍼키친이 동네 반찬가게보다 나은 점은 뭔가.

우리 제품이 더 안전하다는 차별화는 명확하다. 또 동일한 스펙이면 우리 제품 가격이 더 쌀 수밖에 없다. 반찬이라는 품목은 같지만, 업종은 사실 완전히 다르다고 봐도 된다. 슈퍼키친은 모든 원재료와 영양 성분, 유통기한 등을 법적 기준에 맞춰 정확히 명기한다. 동네 반찬가게들은 그럴 의무가 없다. 제품명과 가격, 중량만 표기하면 된다. 반찬 시장이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맛은 어떤가. 소비자가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일 것 같은데.

사실 맛은 너무 주관적인 영역이다. 사람마다 맛있게 느끼는 지점이 제각각이다. 획일적으로 슈퍼키친 반찬 맛이 다른 반찬가게보다 낫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보는 건 객관적 기준, 즉 레시피와 식재료다. 일관적인 제조 방식 덕분에 남보다 좋은 재료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 균일한 맛과 품질이 가능한 이유다. 물론 객관적으로 맛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전문가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매장은 대부분 직영인가.


창업 초기에는 직영점 운영이 원칙이었다.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이다 보니 유통,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가맹점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센트럴키친의 생산 캐파가 500개 매장을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고, 실제로 그 정도 매장을 확보하기 위해선 가맹점 확보가 필수다. 창업 초기보다 높아진 시장 수요와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고. 유통 등 관리 면에서 준비가 됐다는 판단이다. 많은 고객에게 슈퍼키친을 알리고, 여기서 얻은 수익과 투자로 스케일업해가는 과정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가맹점주 입장에서 사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조리 공간과 인력이 없어도 되니 33㎡(10평) 내외 소규모 매장과 판매사원 1인 정도면 충분하다. 자체 조사 결과, 기존 반찬가게의 영업이익률이 5% 미만인 데 비해, 슈퍼키친은 15% 이상이다. 매년 꾸준히 매장 수와 매장 당 매출, 고객 구매단가가 성장하고 있다. 2021년 2800만원이었던 매장당 월 매출은 2023년 3000만원대까지 커졌다. 3000세대 정도가 확보된 아파트 단지 인근이라면 어디든 영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런 곳이 전국에 너무 많다.

시장의 성장을 어느 정도까지 보나.

국내 가정대용식(HMR) 시장의 전체 규모를 약 7조8000억원 수준으로 본다. 이 중 전국에 2만 개 이상 있는 반찬가게가 약 5조원 규모다. 파편화된 시장이면서도 대기업이 주도하는 레토르트·냉동 HMR 시장보다 훨씬 크다. 우리 같은 냉장 반찬은 약 2조~2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하는데,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다. 국내 산업 중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는 몇 안 되는 분야가 바로 반찬 시장이다. 일본은 HMR 시장 규모가 90조원에 달한다. 일본의 반찬 시장이 성장한 배경이 저성장· 고물가였다. 외식비가 너무 비싸고, 직접 조리해 먹어도 비싸긴 마찬가지니 HMR 시장이 확 컸다. 안타깝지만 우리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

향후 사업 목표와 비전은.

슈퍼키친을 반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현재의 100개 매장 정도로는 어렵다. 브랜드를 더 알리고 가맹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매장을 기반으로 모바일 서비스도 강화해야 한다. 현재도 전화 주문과 배달은 가능하다. 앞으로는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배송과 식단 정기 배송, 식자재·완제품 등 HMR 퀵커머스 플랫폼으로 확대해나가겠다.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모바일로 서비스하는 데이터 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김상선 기자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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