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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을 나온 CEO[4] 채은미 - “유리천장? 느껴보지 못했다” 

 

최은경 포브스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청양의 해’가 밝은지 한 달이 지났다. 연초 다짐이 흐트러지기 시작할 때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한결 같은 일과를 지켜온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대표에게 새해라는 시간의 분절은 중요하지 않다.

▎채 대표는 사무실에서도 수시로 영어를 접하지만 규칙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영어학원을 찾는다.
국내 취항 항공사 최연소 부장, 한국인 최초 ‘페덱스’ 북태평양 임원, 외국계 특송기업 첫 여성 지사장. 채은미(52) 페덱스코리아 대표가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따라붙는 수식어다. 세계 최대 항공 특송업체 페덱스의 한국법인 지사장을 맡은 지 9년. 그가 승승장구하는 비결이 알고 싶어졌다.

어스름한 새벽, 채 대표가 집을 나섰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서다. 영어학원에서 한 시간 정도 회화와 토론 수업을 하고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에 출근하면 8시가 좀 넘는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는 국내 일간지, 경제지와 영자신문을 섭렵한다. 1월 19일 만난 채 대표는 “습관이 들어 힘든 줄 모른다”며 웃었다.

채 대표에게 영어는 업무 전문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외국인 직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영어학원은 좀 다른 의미가 있다. 자기계발의 공간이다. 업무를 위해 영어를 배우지만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것. 그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1등석 승객담당 업무를 맡았다. “밤낮이 바뀌어 생활이 불규칙하고 저에게 투자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고민끝에 1년 뒤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들어간 화물 항공사 플라잉 타이거가 1991년 페덱스에 인수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는 국제 포럼에서 유창하게 연설을 할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 ‘외국에서 살다 왔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서울 토박이에요. 오랫동안, 매일, 조금씩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나 봅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닌 지 30년째지만 현지인이 아니라면 꾸준히 공부해야 해요.”

30년 동안 새벽 영어학원 출석


영어학원을 다닌 것은 대학생 때부터다. 그때부터 이미 세계를 무대로 일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사회인이 되면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기 마련이지만 채 대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에 매진했다. “글로벌 특송기업에서 영어는 필수잖아요. 국제무역, 관세, 물류 관련 업무지식은 물론 국제 정책 동향에다 요즘은 바이오나 정보기술(IT) 같은 특정산업과 관련된 전문용어도 알아야 하니까요.”

일본 지역 고객서비스 부서장으로 일할 때는 퇴근 후에 시간을 내서 일본어를 배웠다. “처음에 언어장벽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일본어 실력이 늘자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었지요.” 일본어는 우선 단어를 익히고 비즈니스 업무와 관련된 표현을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30년 동안 새벽에 영어공부를 해 온 채 대표는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게 된 것도 꽤 오래 전부터다. “페덱스의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홍콩에 있어요. 홍콩과 한국의 시차가 1시간 이니까 한국에서 1~2시간 일찍 업무를 시작하면 홍콩보다 2~3시간 앞서는 셈이죠. 그렇게 습관을 들였더니 더 여유 있고 심도 깊게 업무를 볼 수 있더라고요.”

그는 중요한 일은 오전에 한다. 하루 중 가장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라 그렇단다. ‘아침 두 시간이 오후 네 시간과 같다.’그의 오랜 철칙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저는 늘 조직에 열정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페덱스의 기업문화도 그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페덱스에는 독특한 ‘PSP 경영철학’이 있다. People(사람), Service(서비스), Profit(이익)을 가리키는 이 말은 기업의 내부 고객인 임직원이 회사에 만족하면 그것이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회사에 더 큰 이익을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페덱스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GFT(Guaranteed Fair Treatment)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모든 직원이 나이·성별·인종·학력에 관계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하는 제도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조사를 요청하고 재심의를 받을 수 있다. 상급자를 뛰어넘어 그 위 상급자에게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어 소원 수리 제도로도 불린다. 또 페덱스는 사내에 공석이 생기면 내부 지원자를 우선적으로 모집해 승진과 부서 이전의 기회를 준다. 채 대표는 “페덱스의 이사급 임원과 관리직의 75%가 일반 사원 출신”이라며 “현장직 직원도 임원, 사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 대표 역시 28세에 사내 모집 공고에 지원해 최연소 부장 타이틀을 얻었다.

840명 직원 이름 다 외워

긴밀한 소통은 채 대표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그는 “오랜기간 지사장으로 있는 이유가 직원들에게 늘 귀 기울인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채 대표는 840명 직원의 이름을 다 외우고 수시로 현장을 찾아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연말에는 일일이 손으로 쓴 연하장을 전 직원의 집으로 발송했다. 아무리 바빠도 신입사원과 식사 자리나 정년퇴임식에는 꼭 참석한다. “직원들이 회사에 더 애착을 느끼고 업무에 동기부여를 갖게하는 것이 제 임무니까요.” 직원들과 벽을 허물기 위해 사장실 문도 없앴다. “개인 상담, 업무 협의 뭐든 환영입니다.” 채 대표 특유의 스킨십 경영 덕분인지 페덱스코리아의 이직률은 3% 미만으로 업계 평균 보다 눈에 띄게 낮다.

페덱스는 여성들에게도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꼽힌다. “여성이라고 인사에서 차별하는 일은 없어요. ‘유리천장’이오? 저는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사급 임원의 40%, 관리직의 30%가 여성입니다.” 채 대표는 여성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긍정적 사고와 자신감을 꼽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위축되지 말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면 많은 여성 리더가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또 계속해서 공부해 전문성을 갖추라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에 일과 육아를 함께했던 ‘원조 워킹맘’이었다. “잦은 해외 출장과 대학원 공부로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하루 5분이라도 꼭 대화 하려고 했습니다.” 채 대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걸 알지만 직장에서는 프로답게 일하고 가족과 있을 때는 아내와 엄마로서 노력해야 한다”며 “가족, 회사, 사회가 그런 워킹맘의 고충을 좀 더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랜 자기계발로 쌓은 그의 전문성과 소통능력은 올해 역시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페덱스코리아는 1월 7일 항공 특송업계 최초로 항공사 부문 종합인증우수업체(AEO) 인증을 획득했다. AEO 인증은 법규준수도, 내부 통제시스템, 재무건전성, 안전관리 4가지 분야에서 모두 적정 기준 이상 점수를 받은 기업에 주어진다. 채 대표는 “이번 인증으로 한국과 AEO 인증 상호협정을 체결한 외국에서 화물 통관 시 서류제출 간소화, 통관 신속화 등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됐다”며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물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헬스케어 관련 수요가 늘면서 이를 겨냥한 센스어웨어 서비스도 선보였다. 채 대표는 “화물의 온도, 압력을 실시간으로 점검해 알려주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늘어난 전자상거래 역시 페덱스코리아에 호재다. “지난해 미국에서 블랙 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페덱스를 통해 2억9000만 건의 전자상거래 물품이 배송됐습니다. 전년보다 8.8% 증가한 수치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자상거래는 지난해 처음으로 북미지역 거래 규모를 넘어섰어요.” 해외직구 열풍도 반가운 소식이다. 2014년 상반기 해외직구 규모는 7583억원으로 2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8.5% 늘었다. 역직구로 알려진 국내 전자상거래 수출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해외직구 품목이 다양해지고 한류 열풍으로 역직구가 늘면서 페덱스 본사에서도 한국 지사를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회사 측은 정확한 매출액을 밝힐 순 없지만 2000년 한국 법인 설립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에게 앞으로 목표를 묻자 “한해 한해 새로운 것을 배우다 보니 8년이 후딱 지나갔다”며 “올해 역시 신속하고 정확하게 물품을 배달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일하는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며 회사 쪽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 글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2호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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