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까다롭지만 매력적인, 참으로 매력적인 

글·사진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와인애호가들에게 지구촌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꼽아보라고 하면 대개 로마네 꽁띠를 지목한다. 부르고뉴의 본 로마네 마을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부르고뉴 와인이 갖는 매력이 무엇이기에 와인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는 와인애호가들이 선호하는 투어 지역이다. 최고 서열의 5대 샤토(Chateau)가 진을 치고 있고, 그에 버금가는 다른 특급 와인들 리스트도 화려하다. 드넓은 포도밭 중심에는 대개 웅장하거나 예쁜 성(城 =Chateau)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수백 년간 귀족들이 소유해 왔고, 지금까지도 최상급 와인 양조의 전통과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와인 산지다. 다수의 유명 샤토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게스트 하우스라던가 성을 개조한 호텔, 관광객들을 위한 시음장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기업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매우 체계적이기에 와인에 호기심을 갖는 관광객들을 위한 정보도 풍부하다.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 와인 사장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선 또 다른 와인 산지가 바로 부르고뉴다. 보르도와는 매우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 부르고뉴(Bourgogne =미국식으로는 버건디 Burgundy)는 지역적으로 파리와 리옹 중간에 위치한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TGV를 타고 약 1시간 30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디종(Dijon)시가 나온다. 이곳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더 들판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드넓은 포도밭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전형적인 시골 길 느낌이다. 가끔씩 포도밭 사이로 보이는 전형적인 벽돌색 모자이크 지붕이 중세 부르고뉴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연상시켜 멋스럽기까지 하다.

부르고뉴는 특히 지난 10년간 급성장한 생산지역이다. 와인애호가들에게 지구촌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꼽아보라고 하면 대개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ee-Conti)를 지목한다. 부르고뉴의 본 로마네(Vosne Romanee) 마을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약 12~1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와인은 국내의 특급 호텔에서 350만원에 판매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급 승용차에 버금가는 3000만원을 훌쩍 넘겨 유통되고 있다. 이 조차도 생산량이 매우 적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 로마네 꽁띠가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부르고뉴 와인들은 상당히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도대체 부르고뉴 와인이 갖는 매력이 무엇이길래 와인 애호가들이 이렇게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섬세하고도 매혹적인 여성스러움


▎부르고뉴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은 프랑스 전체 포도밭의 3% 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촌에서 가장 비싼 와인에 속해 수천만원 대에 판매되고 있다. 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은 장기간 숙성도 가능하다. 숙성이 더해지면서 깊고 부드러운 느낌의 기품 있고 우아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먼저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와인스타일을 간단하게 짚어 보자. 보르도 와인은 전반적으로 묵직한 느낌의 골격이 느껴지는 남성적인 스타일의 와인들이 많이 생산된다. 반면 부르고뉴의 와인들은 섬세하고도 매혹적인 여성스러움이 잘 표현되는 와인들이 많다. 보르도는 연간 생산량만 7억병이 넘지만 부르고뉴는 2억병이 채 되지 않는다. 부르고뉴는 2만8500여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생산되는데, 프랑스 전체 포도밭의 3% 수준이다. 보르도가 대부분 귀족이 포도농장과 와이너리를 운영했다면 부르고뉴는 평범한 농부들이 포도밭의 주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르도에는 귀족들의 성이 있기에 자신들의 와인 라벨에 샤토라 표기하고, 부르고뉴의 와인 라벨의 대부분은 샤토 대신 도멘(Domaine)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보르도가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면 부르고뉴는 매우 소박한 시골마을 같은 곳이다.

3~5가지의 포도 품종들을 블랜딩하여 와인을 만드는 보르도와 달리 부르고뉴는 단일 품종인 피노누아(Pinot Noir)만을 가지고 레드 와인을 만든다. 그런데 이 피노누아는 포도재배부터 시작해서 와인이 테이블 위로 올라와 서빙될 때까지 매우 까다로울 만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품종이다. 최고의 와인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이 될 수도 있는 이 피노누아의 원조가 바로 프랑스의 부르고뉴다. 와인의 달인들이 마지막으로 정복하고 싶은 곳인 만큼 이곳의 와인들은 ‘정말로 어렵지만 매우 매력적이다’ 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 의견이다.

세계 와인 메이커들을 만나면 상당수가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싶은 포도품종으로 피노누아를 꼽았다. 그만큼 제대로 된 피노누아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너무나도 민감하고 까다로워 요구하는 조건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최악의 와인이 되어버리곤 하기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반응도 매우 다채롭다. 그래서인지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와 비교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부르고뉴만의 떼루아가 만드는 특별한 맛


▎프랑스 전체 와인 생산량의 약 5%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부르고뉴의 와인들은 매해 그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제한된 생산량에 비해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부르고뉴의 피노누아는 체리, 라스베리 등과 같은 붉은 과일류, 민트, 송로버섯과 함께 기분 좋은 숲의 향기들이 느껴진다. 제브리 샹배르땡(Gevrey Chambertin)을 포함한 일부 와인에서는 동물적이면서 육감적인 향이 더해져 섹시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특징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부케를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더해 완벽에 가까울 만큼 균형감 있는 와인은 미각이 편안하고 즐겁다. 그 뒤에 입 안에서 한동안 머무르는 향기롭고도 달콤한 듯한 감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물론, 모든 와인들이 이러한 매혹을 발산하지는 않는다. 똑같은 품종을 가지고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에 따라 표현되는 와인 스타일과 풍미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자들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3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좋은 포도품종과 적당한 기후 그리고 떼루아(Terroirs, 지역적 특성)다. 부르고뉴는 이 떼루아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마이크로 기후로 인해 지역별로 태양의 노출이 달라지고 기후도 많이 달라진다. 특히 이들의 토질은 마치 집안의 정원 같다. 어떤 곳은 습하고 어떤 곳은 건조하고 거칠다. 오랜 기간 와인 메이커들이 익혀온 이들의 전통적인 기술과 철학들이 모두 이 떼루아에 속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떼루아에 따라 와인의 품질과 가치는 너무나도 달라진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포도 품종을 보면, 레드와인을 만드는 피노누아는 36% 정도로 그 명성에 비해 생산량이 매우 적다. 대신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샤도네(Chardonnay)가 전체 부르고뉴의 46%를 차지한다. 샤블리(Chablis)지역이 대표적인 생산지인데 매우 드라이하면서도 깔끔한 스타일을 만든다. 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은 장기간 숙성도 가능하다. 숙성이 더해지면서 깊고 부드러운 느낌의 기품 있고 우아한 스타일의 화이트와인을 보여준다. 알리고떼(aligote)와 세자(Cesar) 등과 같은 4~5가지의 품종들이 극소량 생산된다.

2년마다 열리는 부르고뉴 와인 축제 유명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르 그랑 쥬르 드 부르고뉴’ 와인 행사. 전세계의 와인관련 전문가 및 와인 바이어들을 초청하는데, 시골마을이 축제의 장소로 변한다.
부르고뉴에는 2년마다 한 번씩 매우 큰 와인 행사를 5일간 개최한다. ‘르 그랑 쥬르 드 부르고뉴 (Les Grands Jours de Bourgogne)’가 바로 그것이다. 1992년부터 2년마다 열리고 있는데 금년에도 3월에 개최되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와인관련 전문가 및 와인 바이어들을 초청하는 행사 때면 시골마을이 축제의 마당으로 변한다. 약 1000여개의 도메인들이 참여하고 샤블리, 마르산, 꼬뜨드뉘 등 총 15개의 세부 마을단위 지역들은 일정표에 따라 각자의 마을에서 크고 작은 시음행사들을 진행한다. 1만 여가지가 넘는 부르고뉴 전역의 와인들이 일제히 소개되고 시음을 할 수 있게 되니 떼루아별 와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와인애호가들에겐 최고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단순 관광객으로서 부르고뉴로의 와인 여행은 쉽지 않다. 까다로운 생산자들은 외지인의 방문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듯 보일 정도로 폐쇄적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나보면 매우 친근하고 소박하고 전형적인 농사꾼의 모습이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전 세계에서 와인 애호가들이 휴가를 내어 포도 수확을 도와주러 올 정도로 긴밀한 유대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좋은 부르고뉴 와인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로마네 꽁띠와 더불어 도멘 뒤가피(Domaine Dugat-Py), 도멘 르로이 (Domaine Leroy)와 같은 최고 서열의 와인 생산자들이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가격은 100만원대를 호가한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유사한 품질에서 비교적 만족할 수 있는 가격대의 와인들도 있다. 작은 와이너리들이 생산하는 쟝-쟈크 콩퓌롱(Doamine Jean-Jacqus Confuson)이라든가 도멘 오둘-꼬꺄르(Domaine Odoul-Coquard)가 그렇다. 기업 규모의 대형 생산자들은 페블레(Faiveley), 루이자도(Louis Jadot), 알베르비쇼(Albert Bichot), 도멘 드루앙(Domain Drouhin)을 선보이고 있다.

- 글·사진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201604호 (2016.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