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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5) 남주현 엔엑스 대표 

AI가 제어하는 최적의 에너지 흐름 

장진원 기자
전기를 아껴 쓰자고 포스터 붙이던 시절은 끝났다. 남주현 대표가 설립한 엔엑스(NX)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다. 관련 비즈니스에서 유일무이한 시장 지배자가 되겠다는 목표다.

▎남주현 대표가 2014년 창업한 엔엑스는 에너지 효을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제어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서울 신촌 연세대 캠퍼스는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와 제어가 가능하다. 캠퍼스 내 곳곳에 설치된 6만여 개에 달하는 센서와 하드웨어 덕분이다. 학내 구석구석에 새로운 센서를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건물 안팎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위치, 콘센트, 조명, 냉난방 제어장치 등이 센서와 하드웨어 역할을 한다. 각각의 센서와 하드웨어가 모은 에너지 사용 정보들이 빅데이터로 쌓이고, 이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으로 최적의 에너지 흐름을 만들어낸다.

매일매일 쉴 새 없이 쌓이는 데이터는 사람의 관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에너지 최적화 솔루션을 찾아내는 기초가 된다. 리모컨을 들고 캠퍼스 이곳저곳을 누비며 관리하는 솔루션이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셈이다. 전력 등 에너지 사용이 최적화되니 전기료도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연세대 캠퍼스에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곳은 울산광역시에 본사를 둔 엔엑스(NX)다. 지난 2014년 남주현 대표가 창업한 NX는 ‘에너지 최적화’를 내건 스타트업이다. 창업 후 10여 년간 빌딩, 공장, 창고 등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기술 개발에 몰두해왔다. 연세대에 설치한 6만여 개 센서와 하드웨어는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현재 NX는 연세대를 비롯해 전국 10개 대학에 자체 개발한 ‘엔브릭스(enbrix)’ 시스템을 설치해 적용하고 있다. 엔브릭스는 AICBM(AI, IoT, Cloud, Bigdata, Mobile)으로 에너지를 완벽히 관리·제어하는 솔루션으로, NX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칭한 서비스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남 대표를 직접 만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 관리 비즈니스에 대해 물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개발자 출신인가.

맞다. 2000년대 초반 IT 붐이 엄청날 당시, 나도 서울 테헤란로 어딘가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금융사의 백엔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어느 날인가 3일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에 퇴근하려 사당역에 앉아 있었는데, 발뒤꿈치를 들고 엄청난 속도로 걷는 사람들을 보곤 충격을 받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더라. 서울도 좋고 일도 좋지만 조금만 더 느리게 살자는 마음으로 울산에 내려왔다.

울산이 고향인가.

고향은 부산이고 울산에서 대학을 나왔다. 울산엔 전혀 연고가 없는데, 현대그룹에 입사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울산으로 갔다. 당시만 해도 4학년 선배들은 졸업만 하면 바로 대기업에 취업했다. 나는 95학번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터지고 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대기업 취업은 고사하고 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덕에 IT 붐을 타고 개발자로 취업할 수 있었다. 대기업 일감을 받는 시스템통합(SI) 회사였는데, 당시 연봉 2500만원을 받을 정도로 대우도 좋았다. 최장 6일 밤을 새웠을 정도로 기계처럼 코딩하던 시절이었다.

울산에 내려와 곧바로 창업에 나섰나.

잠깐 머리 식히려 내려온 게 다였다. 그러다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전자공학과에 다니던 친구가 만든 로봇을 보고 나서다. 미로를 찾는 마이크로로봇이었는데, 프로그램을 짜서 다운로드하니 로봇이 구동하더라. 이거다 싶었다. 3개 팀장을 겸직하고 60명을 지휘하며 잘나갔던 직장 생활을 접고 울산에 딱 하나 있는 하드웨어 회사에 들어갔다. 연봉도 반으로 깎였다. 사장 1명에 내가 부사장이었는데, 대기업 프로젝트를 직접 수주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드는 SI 작업이었다. 사장도 나도 비즈니스는 전혀 몰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다 2006년, 31살에 처음 독립에 나섰다.

삼십 대 초반 창업가는 지금도 젊은 나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공장 바닥에 종이 박스를 깔고 자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당시 통신 3사의 중계기들을 원격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납품했다.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동남아와 일본에도 수출했다. 혼자서 펌웨어, 프런트엔드, 백엔드까지 다 개발했다. 10명이 할 일을 혼자 하니 경쟁력도 빠르게 키워갈 수 있었다.

현재 아이템은 어떻게 도전하게 됐나.

첫 창업 후 2011년 무렵까지 사업은 순항했다. 서울과 달리 울산 지역에는 우리 같은 IT 기업이 거의 없었다. 역량이 되니 일감이 몰렸다. 그런데 사업이라기보다는 프리랜서에 가까운, 프로젝트 수주에만 급급한 현실이 이어졌다. 2011년 즈음 콘센트 제조사에 다니던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대기전력을 차단해주는 콘센트를 만드는 친구였다. 지금은 자체 스위치가 달린 콘센트가 많지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전국의 콘센트 대기전력을 합치면 전체 전기 소비량의 6%에 달한다고 한다. 발전소 하나 정도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콘센트를 설치해도, 실제 가정에선 가구 등에 가려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다룬다는 걸 알고 있던 후배가 ‘무선으로 제어되는 대기전력 차단 콘센트’를 의뢰한 거였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에너지 비즈니스가 시작된 것 같다.

후배 제안에 따라 당시 많이 쓰던 PDA나 웹상에서 제어하는 제품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줬다. 의뢰한 회사도 대만족이었다. 내겐 양산 능력이 없으니, 제조사가 판매분만큼 내게 로열티를 주는 모델이었다. 2013년 코엑스에서 열린 에너지대전에서도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엄청나게 팔렸을 것 같다.

놀라운 사실은 그다음부터였다. 그렇게 혁신적인 제품을 거의 못 팔았다. 소비자는 있는 콘센트 그냥 쓰지, 대기전력 차단 콘센트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 전기료가 너무 싸니, 대기전력이 조금 낭비되더라도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기술이라고 시장에서 다 먹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대기업에서 하청을 받는 SI 일감이 아니라 내 아이템으로 승부하려면 반드시 시장의 수요를 읽어야만 했다.

그래도 에너지 관리라는 사업 아이템을 얻지 않았나.


▎최영찬 대표(좌)와 남주현 대표가 울산 엔엑스 본사에서 만나 포즈를 취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현재 비즈니스 모델의 단초가 된 건 분명하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콘센트, 스위치, 조명이 너무 많더라. 10년 후에는 모든 게 네트워크와 모바일 기반이 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벽과 천장에 이미 고정돼 있는 장치들을 무선망으로 컨트롤할 수 있으면 어떨까. 그게 가능하다면 어떤 비즈니스든 발은 디딜 수 있겠다는 아디이어가 떠올랐다. 콘센트는 이미 개발했고 조명과 스위치에도 적용해보자, 다양하게 개발해보자 마음먹었다. 네트워크는 이미 꿰고 있으니 콘센트, 스위치, 조명을 엑세스 포인트로 삼겠다는, 지극히 개발자적인 아이디어였다. 이후 극단적인 에너지 절감 시스템으로 방향을 잡았다. 통신중계기 위주였던 기존 사업도 완전히 접었다. 2014년 엔엑스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재창업했다. NX는 ‘New Energy Experience’라는 의미다.

현재 주력 서비스인 엔브릭스를 소개해달라.

빌딩 한 채를 생각해보자. 건물주는 한국전력에서 검침해 고지하는 총전기량만 알 뿐이다. 반면 엔브릭스를 활용하면 콘센트, 조명, 냉난방기 등 각각에서 에너지를 얼마나 쓰는지 세부적으로 알게 된다. 촘촘한 에너지 신경망 덕분이다. 사용량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지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가령 건물 내 비슷한 공간에서도 에너지 활용 차이가 크다. 이중창이 설치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우리 솔루션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 창호를 교체하는 게 장기적으로 에너지 관리와 절약에 유리하다.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17만 개에 달하는 엑세스 포인트를 깐 결과, 엔브릭스로 에너지 제어와 관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대학에 주력하고 있다. 이유가 있나.

현재 매출의 70%가 대학에서 나온다. 지난 2018년 광주대학교에 엔브릭스 하드웨어 약 7400개를 설치했다. 연세대에 설치한 6만 개는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최근 한양대에도 4만5000개를 설치했고, 서울대와도 논의 중이다. 우리 시스템과 솔루션 구축을 완료한 대학이 현재 10곳이다. 앞으로 전국 400여 개 대학 중 300개 대학에 엔브릭스 시스템을 적용하는 게 목표다. 대학은 소규모 도시와 같다. 지은 지 100년 된 건물이 있는가 하면 신축 건물까지 한데 모여 있다. 에너지 관점에선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실험이 가능하다. 대학에 성공적으로 시스템을 적용한 실적을 바탕으로 도시 공공시설에 디바이스 17만 개를 설치하고 340개 빌딩에 엔브릭스 솔루션을 구축했다. 대학이라는 니치마켓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분야에서 유일한 사업자이자 시장 지배자가 될 수 있다.

유일한 시장 지배자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엔브릭스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모든 고객과 건물은 환경이 제각각이다. 고객에게 극단적인 에너지 절약과 제어를 실증하려면 측정, 즉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전기 사용량이 건물 안 어디에서 얼마나 줄었는지를 정확한 데이터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무기다. 단순히 전기 사용량을 몇 퍼센트 줄였다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아가 쌓인 에너지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효율을 달성하도록 자동 제어한다. 화재 발생 등 안전 관련 이슈가 발생하기 전에 예측해 사전에 경고하고, 사고가 나면 즉각 전력을 차단하는 등 복합적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서 대응한다. 고객 입장에선 전문가 수백 명이 24시간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관리하는 것과 같다.

고객의 반응은 어떤가.

방금 내 휴대폰으로 사무실 조명을 껐다. 우리 시스템상에선 이런 사소한 작동 하나하나가 모두 데이터로 남는다. 센서에 모인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빅데이터로 쌓이고, 이를 AI가 분석해 최적의 효율을 이끌어낸다. 공간별, 센서별로 에너지 효율이 몇 퍼센트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어떤 공간에서 5%, 전체적으로 32%를 줄였다”는 식의 세세한 데이터다. 이걸 전기요금 고지서와 함께 주니 우리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한 대학의 전기요금 납부를 대행하는 은행이 우리에게 직접 연락해 “전기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줄었느냐”고 문의한 적이 있을 정도다.

해외 진출도 성공했다고 들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서 전 세계 핵심 ‘에너지 매니지먼트 키플레이어’ 20개사를 선정했는데, 한국에선 우리가 유일하다. 처음엔 우리가 뽑힌 것도 몰랐다. 덕분에 외국에서도 투자 의향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2020년에는 인도 동부 웨스트벵골 주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 에너지 절감 사업에 참여했다. 국영기업인 웨스트벵골 도시개발공사(WBHIDCO)와 AICBM 기반 에너지 효율화 및 스마트시티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지상 7층 연면적 8500㎡, 700여 명이 상주하는 WBHIDCO 사옥의 에너지 절감 사업을 수주했다.

향후 성장 전략은.

지난 10년간 17만 개 디바이스로 우리 비즈니스의 가능성과 우수함을 증명했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는데, 올해 4월 기준 이미 200억원 수주에 성공했다. 2025년 실적을 바탕으로 2026년 3분기 즈음 IPO도 추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B2C로 확장하려 한다. 엔브릭스 경량화 버전 개발도 이미 끝냈다. 소상공인 위주로 시작하고, 2028년부터 공공주택, 즉 아파트 시장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공장 같은 제조 현장도 ESG와 탄소중립 규제 때문에 에너지 모니터링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시스템 준비도 완료한 상태다. 유일무이한 에너지 제어·효율화 부문 톱 플레이어, 상장 후 1~2년 안에 유니콘이 될거라 확신한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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