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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식 DSD삼호 회장 

“시간 흐를수록 가치 올라가는 조경이 명품주택 조건” 

글·사진 안장원 기자
대한민국 1세대 디벨로퍼 김언식 DSD삼호 회장을 만났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디벨로퍼인 그가 다시 왕성한 활동에 나섰다.

▎김언식 회장이 사무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아파트들 사진 앞에서 디벨로퍼로서의 포부를 말하고 있다.
요즘 부동산 디벨로퍼(Developer, 개발사업 시행자)들이 분주하다. 디벨로퍼는 땅을 매입해 주택 등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의 범위가 넓다. 땅 매입부터 기획, 인·허가, 설계, 금융, 마케팅, 건설, 관리까지 사업을 총괄한다. ‘마에스트로’나 ‘코디네이터’ 등에 비유되곤 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데 그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다. 하나의 사업이 시작부터 끝까지 몇 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디벨로퍼는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파는 사람이다. 다 개발한 뒤가 아니라 개발 전에 청사진만 갖고 사업을 벌인다. ‘꿈’을 파는 셈이다. 자연히 사업 리스크가 크고 그만큼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잘못하면 ‘한탕주의’ 등의 오명을 쓰기도 한다. 소비자를 현혹해 돈벌이에만 급급하는 경우다. 부동산은 금액이 크기 때문에 장밋빛 기대가 무너지면 소비자는 상당한 경제적 손해를 입는다.

2014년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디벨로퍼의 활동 반경이 커졌다.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경기가 활황을 보일 때 주택시장을 주무르던 1세대 디벨로퍼들이 다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주택에서 벗어나 사업을 다각화하고 금융 등 다른 분야에 진출하기도 한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맥이 빠진 가운데서도 홀로 달아오른 분양시장에서 주목 받는 1세대 디벨로퍼가 있다. DSD삼호 김언식(63) 회장이다. 회사 이름 DSD(Dream Space Developer)에서부터 그의 디벨로퍼 포부가 담겨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주춤하다 다시 왕성한 활동에 나섰다.

“도심서 30분 이내 아직 주택수요 충분”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에 지은 수지자이 2차.
김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를 공급한 디벨로퍼다. 1991년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에 화서 벽산(238가구)를 처음으로 지은 데 이어 지난해까지 2만6000여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용인시 수지 LG빌리지, 용인 구성 래미안, 부산시 해운대 대우트럼프월드 마린, 고양시 일산 위시티 자이 등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아파트들을 지었다. 이들 아파트 부지를 모두 합치면 240여만㎡에 달한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주택수가 2만9000여 가구다. 신도시 하나를 세운 셈이다.

지난해 7000여 가구를 분양한 데 이어 올해 용인·고양·광주 등에 8800여 가구를 내놓을 계획이다. 용인 동천동에서 지난해 1차 1400여 가구에 이어 5월 2차 1000여 가구의 동천 자이를 분양했다. 이 단지는 1순위 평균 5.8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며 인기를 끌었다. 용인 신봉과 고양 식사동,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에서 대단지들을 계획하고 있다. 식사동과 태전동 단지는 앞서 분양된 단지의 후속작이다.

지난해 분양시장에는 52만여 가구의 엄청난 물량이 쏟아져 공급과잉 우려가 나왔다. 사업에 대한 불안감은 없을까. “주택시장이 지역별로 차별화할 것입니다. 외곽은 공급과잉 타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도심에서 가까운 지역은 아직 주택수요가 충분합니다.”

실제로 올 들어 지역에 따라 분양시장이 양극화하고 있다. 도심과 도심 인근 지역의 청약경쟁은 치열한 반면 도심에서 먼 지역에선 청약경쟁률이 높지 않다.

그가 내세우는 게 ‘도심 30분 거리’다. 강북과 강남에서 차로 30분 거리 이내는 주택수요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지역으로 보면 북쪽으로 고양, 남쪽으로 용인이 한계다. 김 회장 사업장도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요즘 견본주택에 가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파트 품질이 워낙 좋아졌다. 분양시장 열기가 식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기존 아파트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 개선돼 새 아파트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보기 좋은 타워형보다 통풍과 채광이 좋은 판상형이 인기이고 외부에 접하는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내부 역시 죽은 공간을 최대한 줄여 공간이 넓다. 단독주택 느낌이 나는 테라스를 많이 설치하기도 한다.

김 회장은 아파트에서 조경을 가장 중시한다. ‘명품 아파트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생각할 틈도 없이 ‘조경’이라고 말한다.

“건물은 세월이 흐르면 낡아지고 시대적 흐름에 뒤처집니다. 하지만 나무는 더욱 쑥쑥 자라고 숲이 우거집니다. 건물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조경 가치는 올라갑니다. 숲이나 나무가 뭡니까. 사람이 자연과 호흡하는 곳 아닙니까. 아파트 단지에서 자연을 느끼며 쾌적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이 조경입니다.”

주택시장의 트렌드 변화도 조경의 중요성을 키웠다. 자신이 직접 거주할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가 늘면서 조경을 눈 여겨 보게 됐다. 교통 등 입지여건이 비슷한 지역에서 다른 아파트와 눈에 띄게 차별화할 수 있는 요인이 조경이기도 하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세계적인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손 잡고 사업하는 것과 달리 김 회장은 조경 전문가를 찾는다. 동천자이에 미국 하버드대 조경학과장 니얼 커크우드 교수를 참여시켰다. 니얼 커크우드 교수가 연구활동과 관련 과거 동천 사업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게 인연이 됐다.

동천자이 1차는 물이 흐르는 친환경 단지(모트가든, 다이닝가든), 광교산의 숲이 감싸는 단지(힐링포레스트, 웨이브데크), 사계절 다양하게 꽃이 피는 단지(다이닝가든), 슬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단지(커뮤니티가든) 등 4가지 디자인 컨셉트가 조경에 적용됐다.

동천자이 2차는 조경면적이 1만4700여㎡로 대지면적의 37%나 되도록 설계됐다. 단지 주출입구 부근에 2000여㎡ 규모의 소공원도 조성될 예정에 있어 조경면적만 1만6700여㎡에 달한다. 광교산 자락에 들어선다는 점을 감안해 단지 내에서 사계절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단지 중앙에 중앙산책로·연못과 연계된 ‘사계절 가든’(블루밍가든, 프레쉬가든, 로맨스가든, 에버그린가든)이 조성된다. 블루밍가든에 벚꽃나무가, 프레쉬가든에 팽나무가, 로맨스 가든에 청단풍이, 에버그린가든에 소나무 등이 심겨진다.

김 회장의 조경 걸작은 2011년 세계 조경가대회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받은 일산 위시티 자이다. 이 단지는 250억 원을 들여 전국에서 구입한 소나무 2500그루를 심었다. 이 중 1500그루는 수령 100년을 넘긴 대적송이다. 소나무를 대거 심으면서 조경비용이 600억원으로 당초 사업승인 때 계획한 300억원의 두 배로 늘었다. 대개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 조경비가 60억원 안팎이다. 김 회장은 “사계절 푸르고 하늘로 뻗어 기상이 느껴지는 소나무가 조경의 백미”라고 말했다.

특히 일산 위시티 자이의 2블록 단지 조경은 부지 내 보전녹지지역을 최대한 조경에 그대로 반영해 ‘숲의 정원’ 이미지를 표현했다. 기암괴석과 분재형 수목, 폭포 등으로 석산을 만든 ‘진경산수’로 꾸몄다.

그는 1980년 ‘삼호주택’을 설립하며 주택사업의 길에 들어섰다. 삼호(三湖)라는 이름은 그가 둥지를 튼 수원에 서호 등 3개의 큰 호수가 있다는 점에서 착안됐다. 형이 수원에 갖고 있던 땅에 집을 지어보자고 한 게 주택 사업과 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김 회장은 원래 화가를 꿈꾸었다. 틈틈이 만화 등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미술대학에 들어가려다 포기했다. 김 회장은 “당시 같이 시험을 치던 사람들 가운데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쟁쟁한 인물이 많았다”며 “그들의 천재성을 보고는 자신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림에 대한 미련은 주택사업의 바탕이 됐다. 그는 입버릇처럼 “주택 사업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화가가 꿈이었던 프로볼링협회장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에 들어선 일산 위시티 자이 조경. 김언식 회장은 이 단지에 소나무 2500그루를 심었다.
디벨로퍼로서 김 회장의 이색적인 다른 이력이 볼링이다. 그는 2002년부터 15년째 한국프로볼링협회장을 맡고 있다. 그 역시 프로볼러다. 1995년 3000명이 응모해 45명이 통과한 제1회 프로테스트에서 프로 자격증을 땄다. 한국프로볼링협회가 처음 개최한 1996년 필라컵대회에서 프로볼링 사상 첫 퍼펙트 게임(300점 만점)을 기록했다.

“볼링은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스트라이크가 통쾌하고 보기 좋지만 첫 투구 후 남은 핀을 쓰러뜨리는 스페어 처리가 점수를 좌우하죠. 주택사업 역시 끝마무리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볼링은 그에게 사업가로서 투지도 키워줬다. 2007년 준공한 해운대 대우트럼프월드 마린(전용면적 158~243㎡ 232가구)는 42층으로 부산 첫 초고층 아파트다. 당시 부산 최고층은 15층이었다. 이보다 높은 층수는 인·허가가 나지 않았다. 김 회장은 관련 공무원들에게 홍콩 도심 사진을 보여주며 부산에도 초고층 건물이 필요하다고 끈질기게 설득해 당시 견고했던 15층의 ‘벽’을 깰 수 있었다. 오늘의 화려한 해운대 빌딩 숲의 시작이다.

김 회장의 디벨로퍼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00년대 초·중반 달아오른 주택경기에 힘 입어 그 역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가 가장 큰 공을 들였던 일산 식사자이가 승승장구하던 그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 아파트는 금융위기 전인 2007년 12월 분양됐다. 112만여㎡ 부지에 지어진 4683가구의 매머드급 단지다. 사업비가 3조4000억 원에 달했다.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분양이 쌓였다. 어쩔 수 없이 대대적인 할인분양을 해야 했고 사업비의 20%가 넘는 8000억원 가량을 손해봤다. 이 후유증으로 2003년 200여억원에서 2009년 1조8000여억원까지 치솟았던 연간 매출액이 2012년엔 2500여억원까지 줄었다.

김 회장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빌딩 3개를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땅은 처분하지 않았다. 그는 땅에 대한 욕심이 많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가격이 급락했을 때 대거 땅을 사들였다. 그 이후에도 벌어들인 돈은 땅에 묻었다.

“땅은 개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땅이 없으면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습니까. 땅은 유한합니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땅도 언젠가는 요긴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는 “땅에도 미인이 있다”며 “마음에 드는 땅이 있으면 낮이고 밤이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교통이 편리하면서 소음이 적고 물이 가까운 땅이 좋은 땅이라고 한다.

김 회장은 디벨로퍼로서 단맛·쓴맛을 보면서도 고집하는 원칙이 있다. 디벨로퍼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데도 멀리 하는 사업이 있다. 상가와 공공택지 사업, 주거용오피스텔 등이다. 이런 이유로 그와 함께 주택사업을 해본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그를 “개념 있는 디벨로퍼”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안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소규모 상가 외에 쇼핑몰 같은 전용상가는 짓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위례 신도시에 상가사업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집은 가격을 많이 낮추면 손해를 보기는 해도 팔 수 있어요. 안 팔리면 계속 살면 되고. 하지만 상가는 장사가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부동산이에요. 아무리 가격을 내려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업체는 팔고 나면 그만이지만 분양 받은 사람은 피눈물을 흘리는 거죠.”

상가·공공택지·오피스텔 사업은 매력 없어

김 회장은 택지지구·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선 집을 짓지 않는다. 공공택지는 계획적으로 개발돼 필지마다 지을 수 있는 주택형과 층수 등이 정해져 있다. 분양가도 저렴해 ‘신도시 불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택수요자들에게 인기 있는 주거지다. 분양성공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추첨을 통해 공급되는데 경쟁률이 수백대 1이 나오기 일쑤다.

김 회장은 “공공택지 주택사업은 주어진 공식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개발사업의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공공택지에선 조경·단지배치 등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어서다.

그가 선호하는 개발방식은 도시개발사업이다. 넓은 지역에 대규모 단지를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요즘 부동산 시장의 ‘핫 아이템’이 주거용 오피스텔이다. 저금리로 인해 은행이자보다 나은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이 뜨면서 주목 받고 있다. 청약경쟁률이 인기지역 아파트 못지 않다. 대형건설사까지 주거용 오피스텔 건설에 뛰어들어 분양이 크게 늘었다. 김 회장은 “오피스텔은 원래 업무시설인데 주거용이 허용되면서 도시 난개발을 부추기고 주택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아파트 품질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면서도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없다. 브랜드가 주택가치를 올리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인데 ‘래미안’, ‘힐스테이트’, ‘자이’ 등 이미 시장가치가 인정된 브랜드를 넘어설 자신이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남은 땅의 주택사업이 끝나면 도심 개발을 할 계획이다. 고령화, 인구 감소 등으로 도시확장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위성도시들이 비어가는 데서 예상할 수 있듯 앞으로 도심 재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글·사진 안장원 기자

201607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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