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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3) 

유명 철학자 존 페리 『미루기의 기술』 

존 페리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40년 동안 가르쳤다. 그도 평생 미루는 버릇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1995년 ‘구조화된 미루기’라는 에세이를 온라인에 올렸고 반응이 좋았다. 2012년 이 에세이를 단행본 『미루기의 기술』로 출간했다.

호감과 친근감은 신뢰 못지않게 비즈니스에서 주요 성공 요인이다. 최고경영자(CEO) 사무실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이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협상을 술술 풀리게 만들 수 있다. ‘당신도 이 책 읽었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라고 서로 주고받으며 말이다.

『미루기의 기술』 같은 책은 어떤 반응을 부를까. ‘이 사람 혹시 미루는 버릇이 있는 게으른 사람 아냐? 같이 사업하면 안 되겠네!’라고 상대편이 속으로 생각하게 만들까. 그럴 수도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호감도가 급상승할 수도 있다.


▎빌 클린턴 제42대 미국 대통령 / 사진:백악관
‘CEO procrastination’을 구글 검색창에 쳐보면 검색 결과가 182만 개나 나온다. 그만큼 미루는 버릇으로 고생하는 CEO가 많다. 좋은 소식이 있다. 미루기가 불치(不治)의 습관이라고 해도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루기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미루기 ‘덕분에’ 역사 속에서 빛나는 인물이 꽤 된다.

빌 클린턴 제42대 미국 대통령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빅토르 위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루기의 달인’ 중 한 명이다. 클린턴은 연설 몇 분 전에 원고를 완성하는 등 미루는 버릇이 심각했다. 앨 고어 부통령이 그를 ‘시한(時限) 장애인(punctually challenged)’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미루기 대처법으로 ‘5분 규칙’이 유명

미국에서는 ‘미루기(procrastination)’를 상당히 중요한 개인·사회 현상으로 다룬다. ‘미루기쟁이(procrastinator)’는 스트레스나 죄책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본다. 미루는 버릇이 심한 경우에는 상담 치료를 받기도 한다. CEO나 사원들의 미루기 버릇은 사업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심리학이나 뇌의학에서도 연구 주제로 다룬다.

캐나다 캘거리대 피어스 스틸(심리학) 교수가 2만4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가끔씩이라도 미루기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95%였다. 만성(chronic) 미루기로 고생하는 사람은 25%였다. 미루는 버릇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학에서다.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미 대학생 중 50~75%가량은 자신에게 미루는 버릇이 있다고 응답한다. 그들은 미루는 버릇 때문에 시험 준비, 과제물 제출, 졸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루는 버릇의 원인은 무엇일까. ‘게을러서 그런 거지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라는 반응에도 일리가 있다. 안 그런 경우도 많다. 학문이 발전하면서 미루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훨씬 따뜻한 대접을 받게 됐다. 심리학자들은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심리,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perfectionism), 자신감 결여 등을 미루는 버릇의 심리적 요인으로 파악한다. 전두엽 이상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할 일 목록(to-do list)’ 활용 등 미루기 대처법이 많다. 미루기 퇴치를 약속하는 앱(app)도 많이 나왔다. 많은 사람이 효험을 본 미루기 해결 솔루션으로 ‘5분 규칙(five-minute rule)’이 있다. 인스타그램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케빈 시스트롬은 ‘5분 규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뭔가 하기 싫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적어도 5분 동안 한다고 여러분 자신과 딜(deal)을 하라. 5분이 지나면 여러분은 결국 그 일 전체를 하게 된다.(If you don’t want to do something, make a deal with yourself to do at least five minutes of it. After five minutes, you’ll end up doing the whole thing.)”

간단해 보이는 ‘5분 규칙’이 의외로 잘 먹히는 이유는 ‘미완성 효과’라고도 불리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다음과 같이 ‘자이가르닉 효과’를 정의한다. “완료한 일보다 완료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는 심리적인 성향(the psychological tendency to remember an uncompleted task rather than a completed one).” 하다 만 일을 뇌리에서 빼내는 게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괴롭기 때문에 그 일을 결국 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시작이 반이다.(Well begun is half done.)’라는 말도 결국 ‘5분 규칙’, ‘자이가르닉 효과’와 밀접하다.

『미루기의 기술』의 저자인 존 페리(76)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100편이 넘는 논문과 단행본을 펴낸 철학자다. 언어철학·심리철학 등의 분야에서 알아주는 학자다. 그는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관한 대화(A Dialogue on Personal Identity and Immortality)』 (1978), 『선, 악, 신의 존재에 관한 대화(Dialogue on Good, Evil and the Existence of God)』(1999), 『참고와 성찰(Reference and Reflexivity)』(2001)과 같은 ‘무시무시’해 보이는 주제의 책을 썼다.

스탠퍼드대에서 40년 동안 가르쳤다. 하지만 그도 평생 미루는 버릇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는 1995년 ‘구조화된 미루기(Structured Procrastination)’라는 에세이를 온라인에 올려놨다. 반응이 좋았다. “삶이 바뀌었다”는 감사 편지도 받았다.

이 에세이를 단행본 『미루기의 기술(The Art of Procrastination)』로 출간한 것은 한참 뒤인 2012년이다. 영문판 92쪽, 국문판 178쪽인 얇은 책이지만 17년이 걸린 것이다. 이 책 자체가 페리 교수에게 미루는 버릇이 있다는 증거다.

언어철학·심리철학 등 분야에서 알아주는 학자


▎『미루기의 기술』의 한글판.
페리 교수가 오해를 피하고 확실하게 해두려는 것이 있다. 그가 미루기가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명백히 미루기는 결함이라는 것. 하지만 미루기 버릇이 고쳐지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 뜰 때까지 미루기에서 해방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루기의 기술』이라는 이 책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루기 극복(Overcoming Procrastination)’이나 ‘미루기 탈출(Escaping from Procrastination)’이 아니다. 페리 교수는 미루기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달콤하게 약속하는 게 아니다.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루기쟁이는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페리 교수는 예상한다. 대신 그는 대체적으로 ‘나쁜’ 미루기를 ‘일부’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역설한다.

우선 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루기에는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루기쟁이는 결코 게으름쟁이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미루기쟁이는 없다. 그들도 항상 뭔가 하고 있다. 페리 교수는 ‘미루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은 성과를 내고 존경받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페리 교수가 제안하는 것은 ‘구조화된 미루기, 체계적인 미루기’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룰 때도 시간을 조직적·계획적으로 관리하며 활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뭔가를 미룰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뭔가 ‘딴짓’을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딴짓의 질(quality)을 높이자는 구상이다. 페리 교수는 “시간을 허비하지는 말자”고 제안한다. 미루고자 하는 일 대신 화장실 청소, 빨래, 잔디 깎기 등 무엇이든지 유용한 일을 하자는 것이다.

미루는 버릇을 없애려면 할 일을 줄이라는 게 상식이다. 페리 교수는 반대로 ‘할 일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데드라인이 공포스러운 속도로 다가오는 시급한 일이 있다고 하자. 내일이 시험이거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짓을 하는 ‘강심장’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마음에 트릭을 써야 한다. 이런 식의 ‘자기기만(Self-deception)’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급하다. 당장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고 우크라이나 말을 공부해야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마음을 속이면 당장 시험공부, 원고 쓰기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게 페리 교수의 주장이다.

『미루기의 기술』은 페리 교수 자신의 체험에서 나왔다. 젊은 시절 그는 강의 준비는 뒤로 미루고 학생회관에서 학생들과 탁구 치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덕분에 그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교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페리 교수는 미루기쟁이와 비(非)미루기쟁이는 정리 정돈법도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화성에서 온 남성과 금성에서 온 여성이 사랑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미루기 ‘재주’ 혹은 ‘저주’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은 속속들이 다르다. 페리 교수는 미루기쟁이는 서류함·파일 정돈보다는 큰 책상에 할 일과 관련된 자료를 펼쳐놓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페리 교수 체험에서 나온 『미루기의 기술』

페리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손녀의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www.structuredprocrastination.com)를 개설했다.

토머스 제퍼슨(1743~1826) 제3대 미국 대통령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절대로 내일로 미루지 말라(Never put off till tomorrow what you can do today.)”고 했다. 미국 작가 나폴리언 힐(1883~1970)은 “미루기는 그저께까지 했어야 할 일을 모레로 미루는 나쁜 버릇이다(Procrastination is the bad habit of putting off until the day after tomorrow what should have been done the day before yesterday.)”라고 했다. 영국 극작가·시인 에드워드 영(1683~1765)은 “미루기는 시간 도둑이다(Procrastination is the thief of time.)”라고 말했다.

유머와 사회 풍자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은 이렇게 말했다. “모레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Never put off until tomorrow what you can do the day after tomorrow.)” 페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이면 사라질 일은 절대 오늘 하지 마라.(Never do today any task that may disappear by tomorrow.)”

제퍼슨·힐·영의 말은 미루기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경청해야 한다. 트웨인과 페리의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도 있다. 뭐든지 지나치게 미리미리 빨리빨리 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다. 즉 ‘미미미리쟁이 (precrastinator)’다. 남들은 뭐든지 빨리 해내는 ‘미리미리쟁이’를 부러워한다. ‘미루기쟁이’ 못지않게 ‘미리미리쟁이’들도 남모를 고민이 많다.

심각한 미루기 못지않게 그 반대도 문제라는 것을 인지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로전봄 교수와 동료 학자들이 2014년 ‘프리크래스티네이션(precrastination, 미리 하기)’이라는 학술 신조어를 만들었다.

페리 교수의 미루기 연구는 2011년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을 받았다. 문학상 분야에서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상이다. ‘이그 노벨상’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상의 취지를 설명한다. “이 그 노벨상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업적을 기린다.(The Ig Nobel Prizes honor achievements that first make people laugh and then make them think.)”

미국에서는 ‘미루기’와 ‘미리 하기’를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 실 없는 사람들이네’, ‘할 일 참 없는가 보다’, ‘학자 수가 너무 많은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미루기’와 ‘미리 하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고 그들의 고민을 해소해야 한다면 학계가 나서는 게 옳다.

페리 교수는 1943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났다. 미국철학회 회장을 지냈고, 돈칼리지(Doane College·학사)와 코넬대(박사)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전공 분야는 논리학·언어철학·형이상학·심리철학이다. 『미루기의 기술』은 “무엇보다 인생을 즐기시라.(Above all, enjoy life.)”로 끝난다. ‘미루기’이건 ‘미리 하기’이건 모든 것이 다 인생을 위한 것 아니겠는가.


※ 김환영은… 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905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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