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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대기자의 ‘CEO의 서재를 위한 비즈니스 고전’(4) 

‘통치론’으로 국가와 정부를 분리했던 최초의 사상가, 존 로크 『교육론』 

기업인의 서가에 비즈니스와 무관해 보이는 영국의 철학자·정치 사상가 존 로크(1632~1704)의 『교육론』(1693)이 꽂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기업인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아등바등 기업을 하는 이유는, 자식이 있건 없건 결국 후세를 위해서가 아닐까. 『교육론』은 자녀 교육 고민을 적어도 일부 해결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교육론』을 읽는다면 영어권 사람들보다 그들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혜안(insight)을 챙길 수 있다. 그들이 받은 교육, 그들의 가치관의 배경에는 『교육론』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론』은 존 로크가, 막 태어난 아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고심하는 어느 귀족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책이다. 그 귀족 친구는 지주 출신 정치인인 에드워드 클라크(1650~1710)였다. 1684년에 클라크의 요청을 받고 존 로크는 1691년까지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이 유포돼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지인들은 책으로 출간해야 한다고 로크를 압박했다. 출간 후 로크는 5회에 걸쳐 수정·보완했다. 『교육론』은 체계적인 철학서는 아니다. 원래 친구에게 보낸 편지였기에 그저 편하게 읽으면 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Sound mind in a sound body)’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를 짧지만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교육론』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신체 건강, 습관, 상벌(賞罰), 예절, 가정교육, 아버지의 권위, 아이의 기질, 아이의 자유와 버릇없음, 울음, 아이의 겁과 용기, 잔인한 행동, 호기심, 게으름, 일의 강제, 장난감, 거짓말과 변명, 덕성, 지혜, 예절, 학습, 단정한 몸가짐, 손을 쓰는 일, 해외 여행.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가 어린이용 도서로 『이솝 우화』를 권했다. “로마 사람들은 수영과 글쓰기를 동격으로 취급할 정도로 수영을 필수로 생각했다”며 모든 어린이가 수영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공예나 정원 가꾸기 같은 직업(trade)을 하나씩 배워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아이를 너무 따뜻하게 입히거나 감싸지 말라”고도 했는데 이는 이튼학교(Eton College)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로크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사상가로서 모든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녀 교육 문제를 깊이 성찰했던 것 같다. ‘보채는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에게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어떤 물건이든 자기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라고 부모가 인정하는 것만 주어진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은 주되 한 번이라도 떼를 쓰면서 요구하는 물건은 절대로 주지 말라. 그래야 아이는 그 물건이 없어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얻기 위해 큰 소리로 울거나 투정 부리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들이 울며 보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결코 주어서는 안 된다.”

존 로크는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1689)으로 미국혁명·독립전쟁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군주론』(1532)을 쓴 마키아 벨리(1469~1527)를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의 아버지(father of classical liberalism)’인 존 로크가 우리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로크는 또 『관용론(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1689)으로 종교나 이념이 달라도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로크는 원제가 ‘교육에 대한 몇 가지 생각((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인 『교육론』을 네덜란드 망명 중일 때 썼다. 그는 『교육론』을 “사람의 마음은 ‘빈 서판(blank slate)이다”라는 주장으로 유명한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동시에 작업했다.

18세기는 로크를 『교육론』의 저자로 기억했다. 『인간 오성론』보다 훨씬 인기였다. 『교육론』은 출간 후 1세기 동안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이론서였다. 『교육론』은 유럽 대륙의 장자크 루소(1712~1778),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1746~1827), 몬테소리(1870~1952)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존 로크의 『교육론』의 한글판 표지.
로크를 ‘영국 근대교육의 아버지’에서 더 나아가 ‘세계 근대교육의 아버지’로 부를 만하다. 일차적으로 17세기 영국의 귀족 교육, 엘리트 교육을 위한 책이 대중 교육, 국민 교육의 원천 중 하나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교육론』의 한글판 추천사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 책은 전형적인 귀족 가정의 자녀들을 ‘신사(gentleman)’로 키우기 위한 ‘자녀 교육 지침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교육론』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진보적인 이론을 설파했다. 로크는 어린이도 이성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다만 어린이의 이성은 성인에 비해 미발달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로크는 어린이가 어른과 마찬가지로 천부(天賦) 이성을 마음에 간직한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어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아이가 부모와 부모의 지시를 존중하게 만들려면 부모 자신도 아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크는 라틴어가 중시되는 시대에, 라틴어보다 영어로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라틴어보다 현대 외국어, 지리, 역사, 수학, 민법, 철학, 자연과학 등 실용 지식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 읽어도 건질 것이 많은 책이다. 부모들의 자식 걱정은 17세기 영국이나 21세기 한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부모들이 시공을 초월해 같은 잘못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딸아이를 새 드레스와 화려한 모자로 한껏 치장해 놓고는 그 어머니가 ‘우리 어린 여왕님’이니 ‘우리 공주님’이니 하고 부르는 것은 그 딸아이가 공주병이 들도록 만드는 게 아니겠는가?”

“최근에 많은 사람이 내게 상담을 해왔는데, 그들은 자기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요즘 청년들이 너무 일찍부터 타락하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일부 부모들은 (어이없게도) 아이는 어떤 일에서도 기가 꺾여서는 안 되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조각가 리처드 웨스트마코트 (1775~1856년)가 형상화한 존 로크.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UCL)에 있는 ‘존 로크’ 상이다./사진:스티븐 딕슨
하지만 아이들의 기를 죽이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로크는 다음과 같은 관찰로 추가 의견을 제시한다. “버릇없이 날뛰는 아이들 중에는 그래도 활기와 기상은 살아 있어서 바른 길로 인도하면 때로는 유능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낙담한 정신들, 겁먹고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한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무언가를 성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로크의 시대에도 부모들은 아이들과 친구처럼 잘 지내다가도 아이들이 크면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왜일까. 부모들이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크에 따르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들이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로 자식을 대해야 한다. 자식들이 컸을 때는 권위를 버리고 자식의 친구가 돼야 한다. 로크는 “세월이 흐르면 아이들에게 허용되는 자유의 범위와 정도, 즉 자유도(自由度)도 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뿐만 아니라 로크의 시대에도 반대로 하는 부모가 많았다.

『논어』에 친숙한 최고경영자는 존 로크의 『교육론』을 읽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존 로크의 『교육론』을 읽어보니 공맹지도(孔孟之道)와 많이 비슷하다.’ 『교육론』의 목표는 결국 젠틀맨을 만드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君子)는 영어로 보통 젠틀맨으로 번역된다.

『교육론』의 한글판 추천사에서 조순 전 부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1578년 42세의 이율곡이 『격몽요결(擊蒙要訣: 학습의 지침서)』이라는 교육론을 썼는데, 간결한 문체로 쓰인 율곡의 교육론의 목적은 젊은이들이 사회를 이끌 군자(君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로크의 목적과 비슷해서 두 교육론을 비교하면 두 나라 전통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겠지만 『교육론』, 『논어』, 『격몽요결』의 핵심은 도덕이다. 로크는 교육의 목표가 도덕 교육(moral education)이라고 주장했다. 로크가 생각한 교육은, 아는 게 많은 사람이나 학자를 만드는 교육이 아니었다.

덕(德), 교육을 고민한 로크

로크도 공자·율곡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덕(德, virtue)을 교육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적·윤리적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인격적 능력’이다. 덕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크에 따르면 이성의 힘으로 자제력을 발휘해 욕구를 억눌러야 한다.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성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존엄과 덕성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는 하지 않도록 아이에게 올바른 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로크는 그의 대선배 공자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육체 모두를 중시했다. 지식에 앞서 덕성과 지혜, 좋은 성품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로크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암기식 교육을 강요하지 말고 체벌을 가하지 말고 칭찬과 모범과 사례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벌 문제에 대해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벌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체벌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다. 따라서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모든 온건한 방법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극단적인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사실 잘 살펴보면 체벌이 필요한 경우란 거의 없다.”

로크의 주장에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시대적인 한계, 로크의 개인 성향에서 유래된 한계도 있었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억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로크는 여아(女兒)나 저소득층 교육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한 것이 없다. 그의 주된 관심 대상은 귀족이나 중산층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왕자, 귀족과 일반 신사의 아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크는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을 탐구했지만, 『교육론』은 의외로 ‘민족주의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교육론』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탄생에 교육철학적 바탕을 제공했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소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다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회피할 수 없는 의무이며,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과 그의 가축들을 어떤 점에서 구별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한 국가의 복지와 번영은 자녀 교육에 크게 달려 있다.”

시대마다 교육의 강조점이 바뀐다. 요즘은 리더십 교육이 중시된다. 리더는 젠틀맨·군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리더는 오늘과 내일의 먹을거리를 만들며 그 자신이 큰 부자가 되는 사람이다. 큰 부자가 되어 모교에 기부해 후배 리더들의 양성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21세기형 리더를 키우는 산실 중 하나는 미국 스탠퍼드대다. 전 스탠퍼드대 총장이며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의 회장인 존 헤네시가 스탠퍼드대 교육 방침을 요약한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Leadership Matters)』를 보면 교육의 핵심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10대 요소는 겸손·진정성·봉사·공감·용기·협업·혁신·호기심·스토리텔링·유산이다. 공자나 로크의 생각과 대동소이하다.


※ 김환영은… 중앙일보플러스 대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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