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선택과 포기 

 

카페에서 주문하려고 차림표를 보고 한참 동안 서 있다. 새로운 기획안의 방향을 잡으려고 며칠째 같은 파일을 여닫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라테를 마실지, 비빔냉면을 먹을지 물냉면을 먹을지, 10년 후 송두리째 변할 세상에 대비해야 할지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에 대비해야 할지…. 슈퍼에서 흰 우유 하나를 고를 때도 고칼슘, 락토, DHA, 유기농, 저지방 등 흰 우유 수십 종과 싸워야 한다. 1+1 프로모션이 걸려 있으면 더 혼란에 빠진다. 이 갑갑한 질문에 답하려고 많은 사람이 수십, 수백 번 갈등하고 산다. 답을 내기가 참 어렵다. ‘빼기’가 그렇게 어렵다.

이제 스마트한 인공지능이 내 각종 패턴과 취향, 시장 흐름에 대한 과거 데이터로 알아서 쓱쓱 분석하고 쿨하게 결정해줬으면 좋겠는데 인공지능의 추천을 따라도 후회할 확률이 좀 낮을 뿐이지 실패하기도 한다. 결국 선택의 최종 몫은 나에게 있다.

가방을 하나 만든다고 치자.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튼튼하고 더 편리해야 한다. 짐을 메고 다닐 때 어깨가 아프지 않게 더 큰 쿠션을 넣어볼까? 그럼 어깨끈이 불필요하게 커지고 그 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지고 가격도 올라갈 텐데?

사람들 눈에 조금 더 들려면 차별화해야 한다. 눈에 잘 띄는 큰 로고나 그래픽, 장식과 스터드 등을 추가해볼까? 그럼 유행도 타고 걸리적거리고 가격도 올라갈 텐데?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가방 하나를 만들면서 수많은 고민을 한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포켓 하나, 뚜껑 하나도 새롭거나 더 뛰어나게 만들어야겠다는 고민 끝에 힘겹게 탄생한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뭔가가 계속 생겨난다. 물론 없어지는 것도 많지만 총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발전하고 정보가 많아질수록 결정장애는 더 심해진다.

‘결정’이라는 뜻의 ‘decision’은 라틴어 cis, cid에서 온 단어다. 이는 ‘자르다’, ‘죽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영전략의 대가인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을 세운다는 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흔히 듣는 ‘선택과 집중’에서 집중이 어려운 것은 수많은 것을 선택한 채 다 집중하겠다는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케팅 바이블 중 하나인 『포지셔닝』의 저자 잭 트라우트도 브랜드 콘셉트를 잘 포지셔닝하기 위해선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라고 했다.

더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자 욕구지만 빼는 것은 훈련이다. 디자인 일을 할 때도 더하기, 덧칠하기는 비교적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빼기’다. 포기한다는 것이 보통은 끈기 없어 보이고 패배감을 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나는 요즘 이 단어가 참 좋다. ‘포기’, 삭삭 포기하는 능력을 키우자.

*사족 : 한때 나의 뮤즈였던 탁재훈이 예전에 예능에서 얘기했던 그의 멋진 좌우명이 생각난다. “안 되면 말고. ”


- 이의현 로우로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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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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