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의미 있는 숫자들과 음악 

2020년은 쥐띠 해다. 우리가 십이지(十二支)를 통해 매해에 이름을 붙인 결과, 그렇게 되었다. 지지(地支) 혹은 십이지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한자문화권에 전해져 내려오는 역법으로, 동일한 지지는 12년 주기로 찾아오며, 찾아오는 시점은 입춘이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사카텐만구(大阪天満宮) 신사 안의 12지신상. / 사진:wikipedia
12개 지지에 쥐, 소, 호랑이 등 동물들이 대응된 것은 십이지가 등장한 후 한참 뒤 일이었다. 동물 리스트는 나라마다 조금 다르다. 예를 들면 태국과 베트남 등에서는 토끼를 고양이로, 돼지를 코끼리로 대체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해에 해당하는 동물로 띠를 기억한다. 자신과 타인의 성격을 설명할 때 띠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12간지는 하루의 시간 구분 혹은 측정에도 쓰인다. 십이시(十二時)는 하루를 12개로 나누어 십이지의 이름을 붙여 만든 시간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이십사시(二十四時)는 십이시의 간격을 반으로 줄인 것이다.

별자리로 세계를 인식하는 유럽인도 특이하게 12라는 숫자에 관심을 보였다. 고대 유럽의 지식인들이 12가 아닌 다른 숫자만큼의 별자리를 인지하여 정리하긴 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역시 12별자리다. 12라는 숫자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일까. 황도 12궁으로 알려진 12별자리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2별자리 역시 어떤 이들에는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2지지에 동물의 이름표가 붙었던 이유는 뭘까. 고대사회 인구의 절대 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에게, 그들이 잘 알고 있는 동물들을 대응시키는 작업은 주어진 현상을 추상적 숫자로만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기억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기억을 돕는(anamnestic) 효율적 방법이었을 것이다.

숫자만 붙은 어떤 현상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월화수목금토일’이 없고 1(요)일, 2(요)일, 3(요)일 등으로만 날짜를 센다고 생각해보자. 일주일 개념이 있는 한 7일 다음에 다시 1일이 와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 달을 30일 혹은 31일로 세는 것과 충돌한다. 달의 개념도 없애야 할까. 없애면 365일을 7진법으로 재구성해야 하는데, 365 나누기 7 하면 ‘52.142…’ 값을 얻는다. 달이 있는 것이 나아 보인다. 명칭 문제 외에, 시간 단위를 다르게 정하는 문제도 있다. 다르게 정할 수 있을까. 역사적 사례가 있긴 했다. 대혁명기의 프랑스에서 1793년부터 1805년까지 12년 동안 일주일이 10일이었다.

‘월화수목금토일파타치조썬나다라홍…’과 같이 모든 나날들에 숫자가 아닌, ‘월화수목금토일’이라는 반복되는 패턴도 없이 서로 다른 이름을 부여한다고 치자. 반복되는 주기가 없으니 356개 혹은 (1년이 없다면) 그 이상의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들을 외울 수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월화수목금토일’을 처음으로 외우게 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월화수목금토일’만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인간의 세계에서 인식의 기초는 반복의 확인이다.

음악의 기초적 재료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이다. 이 음들 대신에 ‘ 1, 2, 3, 4, 5, 6, 7’이라는 숫자만 주어졌다고 상상해보자.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교 학생들은 안익태 애국가의 계명도 배운다. ‘솔도시라 도솔미솔 도레미파미레…’. 계명이 없다면 아이들은 ‘51761535123432…’의 수열로 배워야 한다. 이런 상황을 겪은 바 없어 이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을 경우 어떨지 잘 모르겠다. 잘 배워지고 잘 기억될까.

인간 기억 속 저장가능 개체 수는 7±2


▎1794년의 프랑스 공화국의 달력. 프랑스 화가 필리베르-루이 드뷔쿠르(1755~1831)의 작품.
‘도, 레, 미, 파, 솔, 라, 시’는 근대 서양의 장음계다. 이름이 붙은 요소의 수가 7개여서 7음음계라고도 한다. 한국 등 아시아의 전통음계에서는 음의 수가 대체로 5개였다. ‘황태중임남’ 혹은 ‘궁상각치우’ 대신에 ‘1, 2, 3, 4, 5’라는 숫자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역시 좀 이상할 것이다. 피아노 건반을 보자. ‘도, 레, 미, 파, 솔, 라, 시’는 하얀 건반들로 연주한다. 검은 건반들까지 포함하면 12개 음이 있다. ‘도, 도#, 레, 레#, 미, 파, 파#, 솔, 솔#, 라, 라#, 시’. 12라는 숫자다! 이 12개 음열 대신에 ‘1, 2, 3…12’의 수열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가정해보자. 12개 음으로 작곡된 선율을 수열로만 배우고 기억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서로 다른 12개 음이 존재하는 음높이 공간을 우리는 옥타브(octave)라고 부른다. 옥타브가 있음으로 해서 ‘시’다음에 ‘도’가 다시 나온다. 이것은 우리가 음계에서 7진법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요일 다음에 월요일이 다시 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것도 우리가 요일이라는 구분법에서 일종의 7진법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9다음에는 무조건 10이 나오는가? 십진법의 맥락에서만 그렇다. 옥타브는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일종의 진법이다. 옥타브가 없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도, 레, 미, 파, 솔, 라, 시, 터, 로, 가, 차, 용, 끼, 싸, 바, 놀, 문, 컥, 텅…’. 무수히 많지만 서로 다른 음들의 집단. 이런 무질서 상황에서는 음악을 만들 수 없다. 음악은 옥타브와 함께 ‘도, 레, 미, 파, 솔, 라, 시’와 같은 진법으로서의 음계가 있어야 만들 수 있고 들릴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각 음에 의미가 있었다. 이 음들은 원래 그레고리오 성가인 ‘성 요한 찬가’의 가사에서 첫머리를 따와 만들어졌다. 가사는 이렇다. “Ut Queant laxis resonare fibris Mira gestorum famuli tuorum, Solve polluti labii reatum Sancte Joannes.” (“당신의 종이 당신 업적의 훌륭함을 편안한 목소리로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우리 입술의 죄를 씻어주소서, 성 요한이여.”) 라틴어 가사의 첫머리인 ‘우트(Ut)’를 포함해 가사를 구성하는 알파벳 집단들인 ‘레(re)’, ‘미(Mi)’, ‘파(fa)’, ‘솔(Sol)’, ‘라(la)’ (위 가사에서 강조된 알파벳들)에 ‘시(ti 혹은 si)’가 첨가되고 발음 편의상 우트(Ut) 대신 하느님이란 뜻의 ‘Do(Dominus)’가 대신 쓰여 만들어졌다. ‘우트(Ut)’는 발음해보면 알겠지만, 이른바 닫힌 음이라 무한한 권능을 가지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계명으로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오늘날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음들을 통해 위 가사 속 단어가 제공하는 종교적 의미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각 이름은 표음문자처럼 의미가 없는, 음악의 재료 혹은 요소들이다.

하루가 24시간이 되고 일주일이 7일이 된 것 따위의 일들과, 한 옥타브의 내부를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장음계로 채우는 일은 모두 인간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그 결정을 후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따랐던 것이다. 결정 과정에서 인간은 관련된 자연현상의 특성을 고려해야 했다. 예를 들면, 1년을 421일로 임의적으로 산정할 수 없었다. 1년이 365일이 된 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돈다는 사실을 감안한 결과다.

한 옥타브 안에 7개 음만 허락하는 일도 어떤 자연적 특성을 고려해 얻어진 결과일까. 영리한 음악가들이 인간의 심리라는 독특한 자연현상을 (암묵적으로) 알아낸 결과가 아닐까. ‘밀러의 법칙’ 혹은 ‘마법의 수’ 개념이 이런 앎을 표현한다고 가정되어져 왔다. 미국 인지심리학자 조지 A. 밀러에 따르면 인간의 평균적 작업기억 속에 저장할 수 있는 개체 수는 ‘7±2’이다. 이것은 마법의 수인 7에 2를 더하거나 빼서 얻어지는 숫자들, 즉 5에서 9에 이르는 숫자들이 가리키는 만큼의 정보를 우리가 잘 처리한다는, 정보처리에 대한 우리 능력의 한계를 가리키는 이야기다. 인간 심리를 조망하는 이 법칙에 따르면 일주일이 7일인데는 인간의 지각 능력에 대한 (암묵적인) 고려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 옥타브 내에 7음음계가 현재 우세한 것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한 옥타브 내 12개가 넘는 음들로 작곡된 음악, 이를테면 아르놀트 쇤베르크 같은 현대음악가의 12음음악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잘 처리하지 못하는 걸까? 12음음악은 쇤베르크가 1923년에 창안한 것으로, 한 옥타브 내에 12음을 평등하게 사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확실히 이 기법에 따라 작곡된 12음음악은 듣기 어렵고 기억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 어려움은 양질의 문화적 교육을 한다고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닌 듯하다. 사실 인간에게는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한계가 있다. 인간은 그 한계 내에서 즐기고 감동하고 배우고 이해하는 존재인 것 같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명제는 멋져 보이나, 현실에서는 우리 종의 분명한 한계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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