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나는 계획이 없었다 

 

올해 가장 많이 구전된 최고의 유행어 하나를 꼽으라면 영화 [기생충]에 나온 송강호의 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인 것 같다.
올해 가장 많이 구전된 최고의 유행어 하나를 꼽으라면 영화 [기생충]에 나온 송강호의 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인 것 같다. 대사처럼 계획대로만 끝까지 갔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영화 속의 모든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매년 나의 살 빼기 계획, 기술 연마 계획, 일본어 계획도 성공한 적이 없다.

평소에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들도 올해는 GPS가 고장 난 내비게이션 같았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은 오늘날 시대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캐릭터 같았다. 병마는 더 얘기하기도 싫고 마이너스 경제, 무역전쟁과 환경문제까지 예상과 계획에 없던, 가슴 울렁대는 뉴스들은 차고 넘쳤다.

이럴 거면 그냥 계획 없이 살아보자.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인간은 무의식 상태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불교에서 득도의 경지에 올랐을 때가 바로 ‘무념무상’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라 비교조차 하지 않는 상태.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장난감 기타를 받아들고 기뻐할 때와 비슷하다. ‘No plan is the best plan’이라는 말도 있다.

여행 갈 때 첫날은 어느 숙소에서 자고 블로그 추천 맛집에서 밥 먹고 랜드마크에 가서 사진 찍고 둘째 날은…. 이렇게 갔던 여행보다 더 특별했던 경험은 길을 잃어 헤매다가 모르는 이에게 길을 묻고, 밥집인지 술집인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갔던 가게들이 늘 인상 깊었다.

전화기도 터지지 않고 살아 있는 곰이 캠핑장까지 내려왔었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의 완전 무계획 캠핑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이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구글 지도에 찍어놓고 찾아간, 빗소리를 멜로디로 바꿔주는 빗물 배수관보다 옆 건물에서 수백 종류의 맥주를 파는 작은 가게를 계획 없이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정말 행복했다. (아마 가게 앞에 앉아서 맥주 4병을 먹어서 그랬는지도…) 그 이후론 도시만 정하고 계획 없이 여행을 가곤 한다.


물론 여러 명이 모여 역할을 나누고 움직이려면 사전 계획 공유는 필수다. 그럴 때는 앞으로 할 일을 ‘시차 순’으로 두는 것보다 ‘우선순위 순’으로 두면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여행 계획을 1일 차, 2일 차로 나눠 짜지 않고 노는 게 우선인지 휴식이 우선인지 정하고, 나아가 무념무상으로 일단 짐부터 싸보는 것이다. 내년 계획을 분기별로 짜는 것보다 사업의 우선순위 먼저 나열하고 그냥 ‘Just do it’ 하는 것이 나에게는 2021년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계획대로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본질은 ‘우선순위가 서 있는가’이다.

- 이의현 로우로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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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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