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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상수경영(上手經營)’(3) 

사나운 개는 빨리 내쳐라 

'인사(人事)가 곧 만사(萬事)’라고 한다. 조그만 술집이건 대기업이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많아도 사나운 개 하나만 있으면 조직이 무너지는 법이다.

▎유형화의 천재였던 한비자. 그는 간신, 군주에 대한 위협, 국가 보존의 원칙, 망국의 징조와 관련해 여러 유형을 제시했다. / 사진:한길사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말이 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는 뜻이다. 개와 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 이유를 한비자(韓非子)가 설명한다.

춘추시대 송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술 빚는 솜씨가 뛰어나고 양을 속이지 않았으며 손님들에게도 늘 친절했다. 그런데도 영 장사가 되지 않았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는 지혜롭다고 소문난 마을 노인에게 까닭을 물었다.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집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라오.”

고개를 갸우뚱한 그가 재차 캐묻자 노인이 설명했다.

“사나운 개가 손님들을 보고 짖어대고 술심부름하는 아이들이 놀라 달아나는 판인데 누가 올 수 있겠소? 그러니 술이 팔리지 못하고 쉬어버릴 수밖에.”

『한비자』 ‘외저설(外儲說)’ 편에 나오는 얘기다. 조정 안에 간신배가 버티고 있으면 현량한 신하가 군주에게 바른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개와 술을 빌려 설명한 것이다.

한비자의 지적대로 조직이 바르게 돌아가려면 사나운 개를 없애야 한다. ‘인사(人事)가 곧 만사(萬事)’라고 하는 이유도 다른 게 아니다. 사나운 개 하나가 중요한 길목을 막아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계속 방치하면 생명을 잃게까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그만 술집이건 대기업이건, 나아가 국가를 경영하는데도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많아도 그런 사나운 개 하나만 있으면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예부터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문제는 사나운 개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주인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며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나운 개일수록 주인에게는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고 배를 드러내 보이며 아양을 떠는 데 능숙하다.

한비자는 탁월한 혜안으로 이 점을 지적한다. 말로 남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한 ‘세난(說難)’ 편에서 한비자는 신하가 어떻게 하면 군주의 뜻을 살펴 환심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상대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일하고자 할 때는 공명정대하다고 격려해 그 일을 하게 한다. 상대가 속으로 천하다고 느껴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는 그 의도를 적극 칭찬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유감이라고 말해준다. 상대가 자신이 내린 결단이 아주 과감했다고 생각할 때는 굳이 그의 실수를 끄집어내 화나게 할 필요가 없다. 또 상대가 자신의 계획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실패한 경우를 꼬집어 곤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하가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는 얘기지만 군주 입장에서는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한비자의 이 말은 역설적으로 군주가 신하의 말을 가려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군주는 총기가 무뎌지지 않도록 늘 스스로 채찍질해야 한다. 군주가 판단력을 잃고 사람을 잘못 쓰는 바람에 나라가 망한 예는 역사상 부지기수다.

신하의 말을 두려워한 현종

그런 교훈을 말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당(唐) 현종(제위 712~756년)이다. 당 현종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좋은 의견을 받아들여 이른바 ‘개원의치(開元之治)’라는 전성기를 이끌어 낸 성군이었다. 스스로 쿠데타로 권좌에 오르고 반란을 진압해 왕권을 공고히 한 만큼 창업과 수성을 동시에 이뤄낸 경험을 살려 옳고 그름을 냉철하게 판단했다.

개원 후반기에는 한휴(韓休)를 재상으로 기용했는데 한휴는 성품이 강직해 현종의 잘못을 면전에서 지적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종은 사냥을 나갔다 좀 늦을라치면 깜짝 놀라 “한휴가 알면 어쩌지”라고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는 한 신하가 “한휴가 조정에 들어온 뒤로 폐하께서는 단 하루도 즐겁게 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시면서도 왜 그를 내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현종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 전임 재상은 매사에 내 뜻을 따랐지만 정사를 끝낸 뒤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한휴는 내 앞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해도 자리에 누우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

얼마나 어진 임금인가? 심지어 황후의 제부 장손흔이 어사대부 이걸을 두들겨 패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현종은 장손흔을 쳐 죽이게 명령하고 이걸에게 사과를 했을 정도였다.

훌륭한 임금이 훌륭한 신하의 말을 두려워한다는 점은 당 태종의 경우와도 닮았다. 어느 날 태종이 매 한 마리를 헌상받고 매우 좋아하면서 이를 팔 위에 올려놓고 놀고 있었다. 그러다 멀리서 명재상 위징(魏徵)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몹시 긴장하며 매를 서둘러 품속에 감췄다. 위징이 알면 또 잔소리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위징은 매를 감춘 것을 알고 일부러 정무를 보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고 매는 태종의 품속에서 질식사하고 말았다.

태종도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종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첩 양귀비와 도교에 빠져 충정 어린 직언은 물리치고 오직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결국 아첨을 잘하는 무리들만 왕의 주변을 에워싸게 됐다. 그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임보(李林甫)였다.

이임보는 현종의 눈치를 살피고 온갖 감언이설로 비위를 맞춰 현종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현종은 거기에 속아 충신 장구령(張九齡)을 내쫓고 대신 이임보를 재상 자리에 앉혔다. 그가 19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는 사이 나라를 걱정하는 대신들은 모조리 자리에서 쫓겨나고 간신 소인배들만 조정에 우글거렸다.

이임보는 재상으로서 황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충신들이 올리는 간언들은 그 어느 것도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뿐만 아니라 황제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인물들은 아예 얼씬도 못 하게 막았다.

이임보의 구밀복검

어느 날 현종이 물었다. “요즘 엄정지(嚴挺之)가 보이지 않는군.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엄정지는 이임보가 지방으로 내쫓아버린 충신이었다. 이임보는 엄정지가 다시 중앙 요직에 기용될까 두려워 음모를 꾸몄다. 그는 엄정지를 위하는 척하며 편지를 썼다. “황제가 그대의 근황을 궁금해하시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폐하를 배알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우선 신병을 핑계 대고 상경하고 싶다는 상소를 올리는 게 좋겠소.”

이에 속은 엄정지가 그대로 상소를 올리자 이임보는 현종에게 아룄다. “아무래도 늙고 몸도 약한 것 같아 중책을 맡기기 어려울 듯하옵니다. 한가한 자리에 보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결국 엄정지는 요직에 발탁되지 못했고, 나중에야 이임보의 농간을 알아차린 엄정지는 울화병이 나 죽고 말았다.

이처럼 이임보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친근하게 굴었다. 그가 자신을 믿도록 후원해주고는 결정적인 순간 뒤에서 발목을 잡았다. 여기서 “말은 달콤하게 하나 배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이임보의 집 서재는 ‘언월당’이라고 불렸다. 그는 언월당에 불을 밝히고 밤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일이 잦았는데, 그럴 때마다 다음 날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죄를 뒤집어쓰고 죽거나 옥에 갇히곤 했다. 그래서 조정의 모든 사람이 언월당에 불이 밝혀져 있는지 살피며 겁을 냈다. 페르시아 출신의 장수인 안녹산마저도 그러한 이임보를 두려워해서 이임보가 죽은 뒤에야 음험한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안녹산 역시 이임보 못지않은 사나운 개였다. 안녹산은 뚱뚱하고 배가 많이 튀어나왔다. 하루는 현종이 농담으로 “그대 배 속엔 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그리도 튀어나왔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녹산은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이 가득 차 있을 따름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현종은 크게 기뻐하며 양귀비로 하여금 양아들로 삼게 했다. 국가의 대들보가 될 것이라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 안녹산이 부하 장수 사사명과 함께 15만 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안사의 난(755년)’이다. 안녹산의 대군이 장안으로 진격해 와 현종이 쓰촨(四川)성으로 달아날 때 백성들이 수레를 막고 간신들의 틈바구니에서 놀아난 황제를 비난했다. 하지만 현종은 사나운 개를 없애지 못해 손님들을 다 쫓아버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탄식하는 수밖에 없었다.

752년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양국충이 우상(右相)이 된다. 두려울 게 없어진 양국충은 40여 개 관직을 스스로 겸임하고 공공연히 뇌물을 받는 등 사리사욕 채우기에 몰두했다. 이에 ‘양국충 토벌’을 명분으로 안사의 난이 발발하자 양국충은 현종과 함께 쓰촨성으로 피난을 가면서 장안의 백성들에게는 한마디도 알리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민중과 성난 군인들이 양국충을 잡아 처형했다. 그러고도 소요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현종은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해야 했다. 이와 함께 조정 대신들은 황태자 이형에게 황제의 보위를 넘기라는 주청(사실상 압력)을 올렸다. 현종은 이를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황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쓰촨성 청두에 머물며 말년을 보냈다.

어진 황제였던 현종이 판단력을 잃고 사나운 개를 몰라본 과오는 그에게서 황제 자리를 빼앗는 결과로만 이어진 게 아니다. 이후 당나라는 세력을 확대한 지방 제후들에게 권력을 빼앗겨 결국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나운 개를 물리칠 수 있을까? 사나운 개가 꼬리를 감추고 있을 때 알아보는 방법은 없을까? 유사이래 간신을 멀리하고 충신을 가까이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는 게 제왕들의 오랜 과제였나 보다. 중국 역사에서도 그런 노하우를 밝힌 책이 여러 권인데 병법서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육도(六韜)』도 그중 하나다. 주(周)나라 태공망(太公望)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폭넓게 들으면 밝아진다

『육도』에서 태공망은 사람을 가벼이 믿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면서 사람됨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문제를 내 이해의 정도를 살핀다.
둘째, 꼬치꼬치 캐물어 반응을 살핀다.
셋째, 간접적 탐색으로 충성을 살핀다.
넷째, 솔직담백한 말로 덕행을 살핀다.
다섯째, 재무 일로 청렴과 정직을 살핀다.
여섯째, 여색을 미끼로 품행을 살핀다.
일곱째, 어려운 상황에서 용기를 살핀다.
여덟째, 술에 취한 자세를 살핀다.”

공자 역시 사람을 판단하는 아홉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장자(莊子)』 (잡편(雜編)] ‘열어구(列禦寇)’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자는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산천보다 험하고 하늘보다 알기 어렵다. 자연에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아침, 저녁의 변화가 있듯, 사람은 외모 속에 감정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겉은 진실해 보이면서 마음이 교활한 사람이 있고, 겉은 어른스러워 보이는데 속은 치졸한 사람이 있으며, 겉은 부드러워 보이면서 속이 강직한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면서 속으로는 게으른 사람이 있으며, 겉으로 너그러워 보이면서 속이 조급한 사람이 있다. 목마른 사람처럼 의를 찾는 사람은 뜨거운 불 속에서도 의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홉 가지 사람 보는 법을 제시한다.

“첫째, 멀리 놓고 부리면서 그 충성됨을 살핀다.
둘째, 가까이 놓고 부리면서 그의 공경함을 본다.
셋째, 번거로운 일을 시켜서 재능을 살핀다.
넷째, 뜻밖의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본다.
다섯째, 갑작스러운 약속을 해서 그 신용을 살핀다.
여섯째, 재물을 맡겨봄으로써 그의 어짐을 본다.
일곱째, 위태로운 일을 알려 그 절의를 살핀다.
여덟째, 술에 취하게 해 그 절도를 본다.
아홉째, 남녀가 섞여 있게 해 그 절의를 살핀다.”

이 아홉 가지 시험을 다 마치면 못난 자를 가려낼 수가 있다.

과연 이 정도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성인(聖人)이 요즘 세상에 존재할는지 모르지만 한두 가지 테스트만으로도 미심쩍은 부분을 짚고 넘어갈 수는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분명한 것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귀를 활짝 열고 있어야만 그 조직이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부와 칭찬의 소리는 미꾸라지처럼 작고 미끄러워서 아무리 작은 틈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지만, 약이 되는 쓴소리는 보석의 원석처럼 크고 투박해 어지간히 크게 열린 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당 태종에게 들려준 위징의 말을 마음속에 담아둘 일이다. 태종이 위징에게 어떻게 해야 명군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위징은 말했다.

“폭넓게 들으면 밝아지고 편협하게 들으면 어두워집니다(兼聽則明 偏聽則暗).”

여러 사람의 말을 폭넓게 들을 수 있어야 사나운 개 한 마리가 꼬리 치는 것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의 지론도 그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세상에 완전한 흰 털을 가진 여우는 없다. 하지만 여우 털로 완벽하게 흰 옷을 만들 수는 있다. 이것은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여러 사람의 힘을 쓸 수 있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쓸 수 있다면 성인의 지혜도 두렵지 않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105호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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